[리뷰] '역린', 선택과 집중 아쉬운 100억 대작

김지혜 기자 2014. 4. 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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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 김지혜 기자] 정조(正祖, 1752 ~ 1800)는 조선 시대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 중 한 명이다. 실록에 기록된 정사부터 야사, 연의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드마라는 수차례 만들어졌다.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은 정조 즉위 초기에 일어난 정유역변을 소재로 한다. 정유역변은 1777년 실제로 일어난 일로 자객이 왕을 암살하기 위해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까지 침투한 사건이다.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역모가 세 가지나 돼 삼대모역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흥미로운 사건에 허구를 더한 영화 '역린'이 지난 22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배우 현빈의 군 제대 후 복귀작, 방송가의 '마이더스 손'으로 불린 이재규 PD의 첫 영화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왕 암살 역모를 그린 하룻밤의 이야기는 영화의 소재로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역린'은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아쉬움을 자아낸다. 상영시간은 2시간 15분에 이르지만, 이 시간 동안 왕을 죽이려는 인물들의 음모를 흥미롭게 풀어내지도, 개혁가 정조의 이상을 제대로 조명하지도 못했다.

'역린'은 웅장한 궁의 곳곳을 비추며 1775년과 1777년에 걸친 조선왕조실록의 문구를 인용한다.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진 갈등과 당파 싸움의 치열함 등을 배경으로 전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탓에 정조(현빈)는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핵심 세력을 등에 업은 노론의 음모는 끊이질 않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정순왕후(한지민)와도 묘한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조를 모시는 내시 상책(정재영)은 왕을 노리는 어둠의 세력이 있음을 직감하고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24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의 긴장감 살리기 위해 역순 구성을 택했다. 시간대별 인물의 동선과 감정변화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초·중반 지지부진한 전개로 효과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영화는 약 1시간 동안 정조와 상책, 살수와 월혜, 정순황후와 혜경궁 홍씨 등의 유대 및 대립 관계를 부각하며 역모의 밑바탕을 깐다. 그러나 본격적인 갈등이 벌어지기까지 불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나열했다. 만약 드라마였다면 이같은 점층적 전개가 나쁘지 않겠지만, 120분 내외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영화에서는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현빈, 정재영, 조정석, 조재현, 박성웅, 김성령, 한지민, 정은채 등이 수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오히려 멀티캐스팅이 암(暗)으로 작용했다. 정조를 둘러싸고 있는 캐릭터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핵심축이 되어야 할 정조는 때때로 주변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영화 중반 이후 드러나는 러브 라인은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방해해 사족에 가깝게 느껴진다. 또 다른 두 인물의 비밀도 극적인 장치로 쓰이지 못하고 오히려 클라이맥스의 갈등이 분산되는 느낌이다.

감독은 정조의 번민와 상책의 고뇌와 살수의 꿈, 정순왕후의 야망을 동시에 아우르려 했으나 욕심이 과해보인다. 선택과 집중의 묘가 아쉽다. 또 긴박한 흐름을 뚝뚝 끊는 편집도 다소 아쉽다.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관객의 마음을 뺏는 인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현빈의 정조는 남성미와 근엄함을 강조했지만, 생동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그린 시나리오의 탓이 커 보인다.

왕의 숨턱을 조이는 정순왕후 역의 한지민은 사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연기로 가장 팽팽해야 할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립을 헐겁게 만들어버렸다.

'역린'은 제작비 100억을 투입한 대작이다. 기존 사극의 스케일을 뛰어넘은 화려한 촬영과 역동적인 액션 등에서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화려한 포장과 장식은 내용품이 부실한 탓에 제 빛을 발하진 못한다. 4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5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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