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고졸취업 신화]경단녀에 치이고 기업도 등돌려

입력 2014. 4. 21. 09:13 수정 2014. 4. 2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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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 하는데 새 정부 들어 뭔가 계속 바뀌는 것 같다. 정부의 최상위 목표가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것인데, 이 수치에 너무 연연해서 취업의 질, 안정성은 좀 등한시된다. 일관성 있는 지원이 아쉽다." 최창원 국립 구미전자공고 마이스터부장의 아쉬움 섞인 토로다.지난 정부에서 유독 고졸 채용을 강조했다. 그 결과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가 활성화됐고 취업률도 높아졌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찬밥이다. 초점이 경력단절 여성을 중심으로 한 시간제 일자리로 바뀌면서부터다.정권 따라 오락가락하니 취직한 이들이나 졸업 앞둔 학생들 맘이 편치 않다. '고졸 신화'는 진정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MB정부 고졸 인재 장려 정책 정권 바뀌자 신기루로 '스르르'

# 삼성중공업은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졸업생 50명을 뽑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해 첫 졸업생 중 30명, 올해엔 20명으로 줄였다. 유병주 거제공고 마이스터부장이 읍소도 하고 항의도 해봤지만 인사 담당자에게선 "졸업생을 뽑아봤더니 2~3년 있다가 군대를 가는 경우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갔다 와도 2년 공백을 다른 사람으로 메우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 부장은 "졸업생 실력을 제대로 키워 회사로 보내겠다고 해도 군 문제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 할 말이 없어진다. MB 정권 때는 대통령도 고졸취업을 장려하니 공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정부 눈치를 봤는데 지금 정권이 바뀌면서 눈치를 안 봐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고 씁쓸해했다.

# 박찬형 씨(가명·19)는 올해 2월 마이스터고 졸업 후 기계 부품 공장에 취직했다. 기계에 들어갈 조그만 부품을 조립하는 라인에 배치 받았다. 매일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6시까지 출근, 하루 12시간 단순 노동을 반복했다. 집에서 1시간 거리인 공장까지 출근하려면 적어도 5시에는 나와야 했다. 박 씨는 "수작업으로 볼펜 심 끼우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만 했다"고 회상했다. 성실히 일한다고 뭔가 더 배울 수 있는 게 없었고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월급 120만원에서 교통비와 점심값을 제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90만원도 채 안 됐다. 취직 전 학교에서 회사 설명회 때 듣던 정보와는 딴판이었다.

견디지 못한 박 씨는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박 씨는 "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3학년 말에 좋지 않은 회사라도 취업시키는 경우가 꽤 많다. 그래서 회사에 취업하고도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마음속으로 다 이직을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기 두려워서 그냥 다니는 친구들이 대다수다. 고졸취업 장려한다지만 이게 실상이다"라고 말했다.

유례없는 청년실업을 고졸취업 신화로 해결해보겠다던 청사진이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고졸 채용은 MB정부 때 주안점을 둔 고용 방책이었다.

마이스터고졸 이직·퇴사율 증가 병역문제·급여·직무불만족 ↑ 중기 취업생 77% "이직 계획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야간상고 출신이지만 나도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느냐"며 고졸취업을 적극 장려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과잉 학력자보다 현장에서 바로 쓸 실무형 인재를 뽑고 싶다는 욕구를 내비쳤다. 그 결과 고교 졸업생 취업률은 2011년 23.3%, 2012년 29.2%, 2013년 30.2%로 점점 높아졌다. 독일 교육 체계를 벤치마킹해 기업 맞춤형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로 출범한 마이스터고 역시 취업률이 90%에 달했다. 국립 구미전자공고의 경우 2년 연속 100% 취업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박근혜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재진출을 적극적으로 돕는 시간제 일자리 사업에 역점을 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고졸취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95개 공공기관의 올해 고졸 채용 인원은 총 1933명으로 2012년 2508명, 지난해 2512명에 비해 대폭 줄었다.

삼성중공업처럼 대기업들의 채용 규모 역시 축소 일로다. 그 자리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나채이 수도전기공고 부장은 "그나마 삼성전자나 현대차, 포스코 등 5대 그룹 정도는 큰 변동이 없는데 그 아래 기업들부터는 채용 인원이 대폭 줄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승희 전 부산자동차고 교장은 "정치적 논리를 앞세우기보다 도와주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 하는데 새 정부 들어 다른 실적을 위해서 계속 정책이 바뀌는 건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MB정부 대표 상품인 마이스터고도 이런 기류에 휩쓸려 어두운 분위기다. 제도 도입 후 최초 선정된 학교 21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취업률은 첫 졸업생 배출 후 지난 2년간 큰 변화가 없었지만 1년 내 퇴사, 이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지난해 4월 기준 1기 마이스터고 졸업생 중 1년 이내에 이직·퇴사한 비율 추정치는 평균 14.8%(무응답한 5곳 제외)로 나타났다. 응답 학교 가운데 5곳이 '10% 미만', 5곳이 '10% 이상~20% 미만', 5곳이 '20% 이상~30% 미만', 1곳이 '30% 이상'이라고 답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난해 4월 기준 마이스터고 1기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90.3%.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시행 의지에 따라 열 명 중 아홉 명이 일단 취업에는 성공했으나,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적지 않은 학생들이 직장을 떠난 셈이다.

졸업생 A씨는 "많은 졸업생들이 취업 시즌이 돼 학교에서 밀어내기 식으로 직장에 들여보내다 보니 입사해서도 방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마이스터고 1기 졸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직 계획이 있다'는 의견이 57.5%였으며, 종사자 수 99명 이하인 기업에 근무하는 졸업생의 77%가 이직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또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10년, 2011년, 2012년)' 자료에 따르면 고졸 초기 경력자들의 자발적인 직장 유지 비율은 57.4%로 대졸자(82.2%)나 전문대졸자(76.9%)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특히 당장의 경제 상황으로 현재 직장을 유지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상당수다.

향후 경단녀 위주 정책이 펼쳐지면서 고졸취업 지원 축소가 본격화되면 그나마 잘 갖춰뒀던 제도의 추진동력이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최창원 구미전자공고 마이스터부장은 "지금 정부의 목표가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것인데, 이 수치에 너무 연연해서 취업의 질, 안정성은 좀 등한시되고 있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는 일시적으로 고용률을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청년들의 경우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해야 하는데 청년취업에 맞는 정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졸취업 신화를 이어가려면 어떤 건 장려하고 어떤 건 고쳐야 할까.

우선 발목 잡는 요소부터 살펴보면 21개 마이스터고 교사들은 졸업생들이 조기 이직·퇴사하는 원인으로 병역 문제, 급여 수준, 직무, 근로 환경 불만족, 대학 진학을 꼽았다.

정부,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필요 기업, 고졸 경력 개발 전략 갖춰야 학교, 신뢰받는 인력양성 초점둬야

특히 군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다. 공기업·대기업은 입사 후 군 문제로 휴·복직 신청이 가능한 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입대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퇴사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취업한 전국 마이스터고 졸업생 3017명 중 45.7%가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이들은 병역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입대를 연기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퇴사가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향후 잠재적인 퇴사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직·퇴사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업들도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고졸 출신들을 더 이상 뽑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산업 육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군 복무 대신 병무청장이 선정한 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제조, 생산 인력으로 4월 기준 현역 1만336명과 보충역 5537명 등 총 1만5873명이 근무 중이다.

문제는 이 숫자가 많지 않고 그나마 정원도 점차 줄일 계획이라는 점이다. 산업체에 배정되는 현역병은 내년까지 연간 4000명 수준으로 유지한 후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감축된다.

이학노 원주의료고 교사는 "현재 산업기능요원 병역 특례는 산업체 신청 기업이 한정돼 있고 그 기업 내에서도 정원이 제한돼 있어 결원이 나야 새로 들어갈 수 있다. 인원을 늘린다고 해도 수급이 제한적"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회사를 다니며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힘든 상황이다. 중소기업이 많다 보니 대학 진학 지원은 어림없고 낮은 연봉, 승진 차별 등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이학노 교사는 "학생들은 졸업 1년 차에 대부분 연봉 2000만원(세전)을 기대하는데 대다수 기업들이 규모가 작아서 그리 받기 쉽지 않다. 또 그런 기업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을 올려주기도 쉽지 않아 결국 중도에 퇴사하는 경우가 있다. 또 대부분 지방에 산재해 있는 공단으로 취업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기숙사가 없는 기업도 많아서 학생이 직접 집도 구하고 집세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비용이 그만큼 더 많이 들기 때문에 퇴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광호 공주대 사범대 상업정보교육과 교수는 "기업 내에서 고졸취업생들의 승진 기회를 공정하게 줘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더불어 기업에서 '선취업 후 대학 진학'을 실행해주고 기업과 학생이 윈윈하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뭔가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가 기업에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당장 급하니까 고졸 인력을 채용해 저임금, 단순근로만 시키다 보니 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졌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병욱 충남대 기계공학교육과 교수는 "중소기업의 60%가 한계임금을 주고 일을 시키는데 그럴 때 고숙련 노동이 아니라 저기술 저숙련 노동을 시키다 보니 학생들도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뛰쳐나가기 일쑤다. 숙련이 덜 돼 있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충북 진천 CJ제일제당 공장에서는 대전 동아마이스터고 3학년 A씨가 청년 인턴 공개 모집을 통해 입사했으나 선배들의 강압, 12시간 노동 등 열악한 근무 환경을 못 견디고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들려온다.

대안은 없을까.

전문가,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정부도 마이스터고 50개 선정 사업 등 고졸취업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카드를 펼쳐 줄 것을 요구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군대 문제의 경우 특기병 제도가 있다. 취업한 학생들이 군대에 가서도 동일한 직무를 하게 도와 경력단절 현상을 막는 제도다. 점차 많은 학생이 이 제도 혜택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자기가 하던 일을 군대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정책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의 분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승희 전 부산자동차고 교장은 "학교는 산업체에 신뢰감을 줄 좋은 인력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졸업시키는 게 기본 원칙이고 학생들을 키우는 데는 소홀했다. 마이스터고가 되면서 많이 고쳐지기는 했지만, 산업체에 신뢰감 줄 실력 있는 학생을 키우는 게 학교의 역할이다. 취업률에만 집착하는데, 그것보다 좋은 아이들을 산업체가 믿고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용량 동아마이스터고 교감은 "우리나라 정서상 학력을 권장하는 분위기 때문에 취업 후에도 현장에서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 금오공고 신화 사례처럼 고등학교만 나와도 기능올림픽 우승자, 기술 명장 반열에 오르면 임원 대우를 받는 식으로 사회 인식이 다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역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이 받은 학생들의 직업 경로와 경력 개발을 하고 전략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업 차원의 활성 전략이 부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유무에 따라 앞으로의 성과가 달라질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생보다도 더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받을 때도 있는데 그 학생들의 직업 능력을 먼저 기업이 더 개발하려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그런 기업 측의 전략이 보강돼야 한다." 이병욱 교수의 의견이다.

김종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마이스터고지원센터 소장은 "최근 정부 차원에서 NQF(National Quality Fraim work·국가역량체계) 구축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직업 능력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학벌 등이 아니라 실제 인재의 역량을 제대로 검증, 관리해 인력을 채용할 때 이 정보를 보고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NQF가 제대로 구축되면 학력 때문에 차별받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자연스레 고졸 학생들의 취업도 원활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수호(팀장)·류지민·서은내 기자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53호(04.16~04.2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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