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 분노하는 가족들] 책임자 없고 요구엔 미적대고.. 가족들 분노의 행진

진도 2014. 4. 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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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우리는 청와대 앞에 드러눕는 것밖에 없습니다. 청와대로 갑시다!"

20일 오전 1시쯤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앞에 실종자 가족 일부가 나와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도 이 상황을 보여줍시다. 청와대로 가실 분들은 지금 체육관 앞으로 나갑시다"고 했다. 곧바로 자리에 앉아 있던 실종자 가족 100여명이 일어나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마련하지 못한 가족들은 "걸어서라도 가겠다"며 500여m를 걸어갔고, 전경 400여명이 앞길을 막았다. 욕설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정홍원 국무총리가 나섰지만 가족들은 두 사람을 둘러싸고 "인양을 하겠다는 건지 제대로 구조하겠다는 건지 대안을 제시하라"고 소리쳤다. 가족들은 한 시간가량 정 총리 차량을 포위했다. 이인선 경찰청 차장이 "이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지금 시간이 몇 시입니까"라며 가족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가족들은 "애들이 죽어가는데 몇 시냐는 말이 나오느냐"며 이 차장을 밀어냈다. 이들은 진도대교 부근까지 9㎞를 걸어가 길을 막은 경찰과 대치하다 해산했다. 이번 소동은 8시간가량 이어졌다.

가족들이 가두행진까지 시도한 건 정부의 어설픈 구조 대책과 약속 불이행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19일 오징어 채낚기 어선 10여 척을 구조 현장에 투입했다. 오징어 채낚기 어선은 눈이 부실 만큼 밝은 집어등이 있어 구조에 꼭 필요하다고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 첫날부터 주장해 왔다. 실종자 가족 김모(48)씨는 오징어 채낚기 어선 동원령 뉴스를 보고 "어떻게 경찰 생각이 실종자 가족만도 못한가. 그나마 가족이 합당한 제안을 하면 즉시 실행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왜 이제 와서 투입하나"라고 했다. 가족들은 사고 첫날부터 물속에서 장시간 작업할 수 있는 '머구리'(전신무쇠잠수복) 동원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머구리를 동원한 것도 사흘이나 지난 19일이었다.

가족들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민간 잠수부 역시 사고 첫날부터 투입하라고 요구했지만 사고 발생 48시간이 지난 뒤부터 투입됐다. 한 실종자 가족은 "결국 우리 말대로 할 거였으면 왜 그렇게 시간을 끌었느냐. 그동안 우리 애들은 죽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팽목항에서 실종자 생환 및 시신 인양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20일 "정부가 어제 오후 전문가와 가족 대표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로 해놓고 약속 시간엔 비전문가를 불렀다. 결국 3~4시간을 기다리다 허탕을 쳤다"며 "인양의 장·단점, 인양 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들으려 했지만,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고 했다.

또 해경 관계자가 19일 브리핑에서 "생존자가 있을 경우 산소마스크를 씌워 데리고 나올 것"이라고 하자 가족들은 "산소마스크 착용 교육도 안 받은 우리 아이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살아올 수 있다면 그 방법을 믿어주겠다"고 비판했다.

가족들은 또 현장 책임자가 매일 바뀌고 있다고 항의했다. 최상환 해경 차장은 17일 오후 "모든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라고 했지만 19일 오후 3시쯤 "현장에 가는 게 낫겠다"며 김광준 해경기획조정관에게 자리를 넘기고 팽목항으로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이 50구를 넘을 때까지 정부가 합동 장례식 여부에 대해 정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은 것도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합동 안치실, 합동 분향소를 인원에 상관없이 가족들이 원하는 기간까지 설치하기로 했고, 장례 절차는 가족들이 제시하는 시설과 방법대로 하겠다"고 20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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