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선후배' 씁쓸한 정찬헌·정근우 벤치클리어링

데일리안 2014. 4.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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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 정근우-정찬헌 벤치클리어링(MBC 스포츠 플러스 화면캡처)

한화 정근우(32)가 LG 투수 정찬헌(24)으로부터 2연속 사구를 얻어맞아 양 팀 선수들 간에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한화는 20일 대전구장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LG와의 홈경기서 치열한 난타전 끝에 9-8 신승했다.

하지만 경기 진행이 매끄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6회와 8회, 두 차례에 걸친 위협성 투구가 경기를 지켜본 팬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LG 구원투수 정찬헌은 5-7로 뒤지던 6회 마운드 올라 정근우의 등을 맞혔다. 당시 1사 3루 위기였던 데다가 풀카운트 접전이었기 때문에 정찬헌의 투구를 고의로 보기는 어렵다. 정근우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사과 등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후배의 반응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LG 선수들도 예민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LG는 김태균을 유격수 앞 병살코스 땅볼로 유도하며 이닝을 마치는 듯 보였지만 1루수 정성훈이 유격수 오지환의 송구를 잡지 못했고, 추가 실점을 내주고 말았다. 당시 1루 주자 정근우는 2루를 파고들며 깊숙이 슬라이딩했고, 이 과정에서 오지환의 발을 건드렸다. 이후 이닝이 끝나자 LG 고참 이병규는 정근우를 강하게 쏘아붙였다.

결국 정근우와 정찬헌이 두 번째 마주한 8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정찬헌은 2구째 빠른 직구를 다시 한 번 정근우의 등에 꽂아 넣었고,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와 한데 뒤엉켰다. 경기는 약 8분간 중단됐고, 주심은 고의성을 인정해 정찬헌을 퇴장 조치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선수들 간의 동료의식 또는 한국 특유의 선후배 문화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한국 야구에서는 후배 투수가 선배 타자를 맞혔을 때 모자를 벗는 등 사과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한국은 예로부터 선후배간의 위계질서와 '한 식구' 문화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사구에 고의성이 없었다면 가볍게 모자를 벗어 사과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선수들이 뒤엉킨 가운데 LG 투수 우규민의 도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보다도 흥분한 우규민은 곧장 정근우에게 달려가 삿대질하며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규민은 정근우보다 2년 후배다. 결국 LG 입단 동기인 한화 이용규가 우규민을 뜯어말리며 더 이상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선후배 문화'는 언제나 뜨거운 화두다.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구타와 심부름, 강압적인 억누름 등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KIA에 몸 담았던 외국인 투수 소사는 "후배가 선배를 존중하고 따르는 문화라면 이는 야구 내적으로도 좋은 시너지로 연결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외국에서 활약 중인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도 예의가 바르고 팀에 잘 녹아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찬호는 물론, 박지성과 류현진 등이 대표적이다.

시계를 잠시 '전설' 양준혁의 은퇴 경기가 열렸던 2010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SK와 삼성은 정규시즌 1위 자리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사실상의 1위 결정전이었다. 경기 전부터 양 팀 더그아웃에는 비장한 각오가 엿보였다.

하지만 SK 선발 투수였던 김광현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양준혁이 타석에 등장하자 모자를 벗고 대선배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때만큼은 냉혹한 승부사 김성근 전 감독도 묵묵히 장면을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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