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이라도 내 새끼 품어주고 보내줘야지"

박용근 기자 2014. 4. 2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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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부패만 안됐으면 해요. 딱 한번이라도 내 새끼 품어주고 보내줘야지, 엄마가 어떻게 그냥 보내"

20일 새벽 큰 딸이 실종한 뒤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청와대로 가겠다며 무작정 나선 김모씨(44)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차가운 새벽이었지만 김씨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걸었다. 그는 진도체육관에 지쳐 쓰러져있다가 다른 가족들이 체육관을 나서자 정신 없이 따라 나섰다. 함께 나온 김씨의 둘째 딸은 엄마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줬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나흘 째인 19일 오후 11시 전남 진도군 실내 체육관에서 머물던 실종자 가족들은 참다 못해 일어섰다. "청와대로 올라갈 사람들을 모은다"는 말이 돌았다. 진척 없는 구조작업에 지친 가족들은 "1분에 1명씩 죽어가고 있는데, 책임자는 연결도 안된다. 청와대에서 드러눕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내에서 사망자 시신이 처음 수습됐다는 소식이 때마침 전해졌다. "청와대에 가는 것 왜 보고 안했어" 사복 경찰의 전화기 통화를 무심코 듣던 한 실종자 가족이 벌떡 일어서서 경찰의 전화기를 뺏어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통화는 끊어졌다. 실종자 가족들이 흥분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버스를 수배했고 대표 70여명은 버스를 나눠 탔다. 경찰이 급히 막아 섰다. 체육관에 남아있던 가족까지 합세해 300여명이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새벽 빗속을 걸으며 실종된 가족의 이름을 부르거나, "정부는 살인자" 등의 구호를 사방에서 외쳤다. 처음엔 행진을 허용하던 경찰도 진도대교 2.6㎞를 앞두고는 시위대를 다시 막아 섰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들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2시 45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동차 유리창에 붙어 "애들은 꺼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눈물을 쏟았다. 승용차 뒷자리에 앉은 총리는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가족들은 동이 튼 뒤인 오전 6시가 지난 뒤에야 총리의 차에서 물러났다.

한 50대 남성은 "그냥 길만 열어주면 된다. 우리 애들은 5일이나 차가운 물 속에 있다. 지금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주먹을 쥐었다. 또 다른 남성은 쉰 목소리로 "추위에 여기 나온 사람들 다 쓰러져도 배 속에 있는 아이들만큼 춥지는 않다. 애들 살려달라는 것 아니다. 조금만 빨리 꺼내달라는 거다"며 눈물을 연신 훔쳤다.

한 여성은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애들 목소리 안 들리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요. 추워요. 꺼내주세요. 이 음성이 안 들리나요. 왜 길을 막아요. 모든 지원 다해 준다고 해놓고 왜 안되는 거예요."

경찰은 "어두워서 행진은 위험하다"며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가족 대표 한 사람이 외쳤다. "우리가 데모하는 것 아닙니다. 여기서 안 되니까 청와대로 가겠다는 겁니다. 대통령은 해결해 주실 겁니다. 우리는 하나도 안 위험하니까 위험에 빠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나 생각해 주세요."

오전 7시쯤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애들이 울고 있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울기 시작했다. 길을 막던 여경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행진은 짧게 끝났다.

팽목항 상황실에선 속속 수습된 사망자의 이름이 불렸다. 한 남성은 "이제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 마음 단단히 먹고 있어"라며 기력을 다해 처져있는 아내를 다독였다. 시위대는 20일 오전 10시 30분쯤 해산했다. 미증유의 참사 앞에 정부는 실종자들을 구해내지도, 남은 사람을 위로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김여란 기자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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