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침몰> 20년前 회귀 대한민국..'진짜' 시스템을 구축하라

2014. 4.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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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의 침몰로 대한민국도 같이 '침몰'했다. 수백명이 실종 상태에 있고 온 국민의 마음도 얼어버렸다.

첨단 문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현실은 '미개' 수준이다.

가라앉은 선체 진입을 서둘러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번 사고는 부실투성이인 2014년 대한민국의 자화상 격이다. 세월호의 무리한 증축, 시설점검 미비, 무리한 운항, 선장의 도주 그리고 무능한 정부….

수백명 목숨을 앗아갔던 1970년 남영호,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을 겪고도,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젊음을 미처 꽃피우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막지 못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는 대형 인명 사고를 낸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발생해 '안전 대한민국'이라는 정부 구호가 허언임을 알렸다.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매뉴얼을 손질하거나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식의 단편적인 대증요법으로는 비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 20년 前으로 회귀한 대한민국…이번 참사는 '숙성형 사고'

이번 참사는 사고 원인과 피해를 키운 대처 방법 등을 봤을 때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였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국민의 정서이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93년 구포역 열차 전복, 아시아나기 목포공항 추락과 서해 훼리호 침몰에 이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아직도 국민의 뇌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일 이번 참사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여러 원인이 겹쳐 일어난 '숙성형 사고(Incubated Accident)'라고 규정했다.

숙성형 사고는 후진국형 사고의 전형으로, 한 가지 충격 요소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돌발적인 재난인 '정상사고'(Normal Accident)와 구분된다.

어떤 행위가 사회적인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위험에 대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에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그런 관행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숙성형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숙성형 사고의 공통점은 비용을 줄이려고 위험을 피하려 하지 않았고, 기관 간 정보 공유가 안 됐으며,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제대로 된 대응 시스템이 없다 보니 응급조치나 사후 수습도 엉망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20여년 전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숙성형 사고들이 이어졌고, 그동안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사고를 보니 그때와 같아 보인다"고 했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방재연구실장은 "이번 사고는 효율적인 것만 생각하다 보니 '이런 것은 대충 넘어가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안전 의식 부재라는 사회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김상호 상지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자 문제는 무사 안일주의"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당장 이상이 없으니까 하던 대로 하던 게 문제가 됐다"며 "선박 회사나 항공사 등 많은 인명을 다루는 회사가 이번 일을 계기로 매뉴얼을 강화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매뉴얼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자가점검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국가 위기대응 시스템 이대론 안 된다…공무원 의식 개조해야

이번 참사의 원인과 대처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위기대응 체계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다.

위기 대응 체계가 너무나 부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책상에서 제도만 만들어놓고 이를 운영할 실질적인 역량이 떨어지는 '후진국형 정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명오 시립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흔히 대형 사고가 터지면 언론은 '안전불감증 문제'라고 하지만 국민을 교육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사고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 내실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는 위기 예방 기능에만 지나치게 역량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참사에서 나타나듯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위험이나 재난 관리에 관한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최근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이지만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규제를 엄하게 하는 '가외성(Redundancy)의 원칙'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에도 평상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출항을 금지하거나 선장이 프로토콜을 안 지키면 항해 면허를 취소하는 등 엄하게 규제하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이영재 한국방재안전학회장은 사고 수습에 나선 정부 대응체계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사고 이후 안전행정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해양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꾸려졌지만 역할 분담이 잘못된 것 같다"며 "이번 사고는 해상사고인 만큼 총괄적으로 상황 통제를 하는 것은 해수부에서 하고 중대본은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중대본의 발표 내용이 해양경찰이 파악한 내용과 맞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고 비판했다.

◇ 총체적 부실에 대처하는 자세 절실

사고의 원인이나 이후 미숙한 대처의 책임이 구속된 이준석 세월호 선장에게 쏠린 나머지 시스템 구축을 소홀히 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영욱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언론 보도를 보면 사회에 '누구 하나가 잘못됐고 나는 괜찮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 같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선장이 잘못했다' 하고 끝내버리면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는 데 민심이 모여야지, 누구를 처벌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라고 조언하고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며, 법률·제도적인 정비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가 제대로 된 선장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건 전 국민이 다 안다"며 "그러나 선장에게 무기징역형을 내리자고 하기 전에 선장이라면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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