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의 미스터 쇼'에서는 볼수 없는 수컷들의 울부짖음

2014. 4. 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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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중·남고·공대' 놀이문화와 은밀한 공감 나누는'낮고 굵은' 수다가 펼쳐진다…남자들, TV로 헤쳐 모여!

<우정의 무대> 이후 처음이었다. TV 스피커에서 이렇게 낮고 굵은 방청객 함성이 터져나온 것은. "널~ 사랑해, 죽는 날까지" 플라워의 멤버 고유진이 남성들의 노래방 애창곡 1순위인 <엔드리스>(Endless)를 부르며 등장하자 방청객 250명이 목 놓아 떼창을 한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차원의 오글거림을 선보이는 이 낯 뜨거운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4월9일 '남자들만의 소셜 클럽'을 지향하는 <나는 남자다>(KBS) 파일럿이 떴다. 이보다 앞선 4월4~5일, 이번에는 노는 방법을 잊어버린 중년 남성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미스터 피터팬>(KBS)은 "어른인 척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가슴 한켠에는 소년이 남아 있는" 중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남성 콘텐츠를 내세운 두 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은 그동안 여성들이 주도했던 TV 예능 프로그램 판도에 새로운 경향을 제시할까. 남성들을 전면에 세운 프로그램이 연이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받지 못한 수컷들의 울부짖음

TV에서 남자들의 수다가 늘었다. <나는 남자다>는 그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층에서 배제돼온 남성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청객은 남중·남고·공대 출신의 남자들로만 채워졌다. 유재석·노홍철·임원희 등 메인 진행자 외에 게스트조차 방청객과 같은 계보로 여성이 배제된 환경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제국의 아이들 멤버 임시완이다. 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해온 이들이 나름의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호출되자 "어차피 여기 남자밖에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마음껏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너네 왜 볼링공이 무거운지 알아? 네 손길에 날아가버릴까봐." 이성에게 했던 가장 부끄러운 말을 고백하는 코너에서 한 방청객이 "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실수담을 토해낸다. <고해> <서시> <시스 곤>(She's gone) 등 노래방에서 남자들이 핏대 세워 부르지만 여자들은 첫 소절만 나오면 아연실색하며 도망간다는 그 노래처럼, 이해받지 못한 수컷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한 "냄새 자체가 다른" 현장이다.

<미스터 피터팬>의 출연진은 41살부터 47살까지, 신동엽·윤종신·한재석·김경호·정만식 등 "술만 좋아하고 놀 줄 모르는 아저씨들"이 모였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 마련된 아지트에 공간을 꾸밀 개인 소장품을 들고 한 명씩 모이는데, 한재석이 스틱스, 주다스 프리스트, 레드 재플린 등 오랜 록 밴드의 음반이 담긴 박스를 꺼내자 출연자들은 "주다스 프리스트 멤버 다 외워?" 유치한 질문을 던지며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바통을 넘겼다. 지난 몇 년의 예능 프로그램을 돌이켜보면 그렇다. <여걸식스> <골드미스가 간다> 등 2000년대 중·후반 예능은 여성 출연자가 주도했다. 이후 <1박2일> 등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는 여행 버라이어티가 등장하며 남성 출연자 위주로 방송이 꾸려졌다. 이어서 최근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나 혼자 산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수컷 집단'이 예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일상적 일터를 벗어난 공간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남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하고, 남성 세계가 궁금했던 여성 시청층을 공략했다. 이런 전략은 케이블·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도 비슷한 경향으로 나타났는데, <마녀사냥>(JTBC), (tvN) 등은 여성 시청자를 수용하면서도 남성들의 이야기를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른바 '남자를 알려주마'를 내세운 콘텐츠들이다. <나는 남자다>와 <미스터 피터팬>은 좀더 남자에게로 영역을 확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는 남자다>는 방송에 앞서 "여자들은 보지 마라"는 '위험한'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어른 아이' 남성들의 문화적 부상

"나 이거 하고 싶은데?" <미스터 피터팬>에서 5인의 피터팬은 철봉,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풀피리, 무선조종 자동차, 연날리기 동호회 등 아저씨들의 놀이문화 탐사에 나섰다. 아지트에서 머리를 맞댄 결과 무선조종 자동차 동호회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실제 자동차를 축소한 작은 자동차들을 보며 아저씨들은 박수 치며 탄성을 터트린다. 도시 외곽의 작은 실내 경주장에서 그들은 모두 아빠, 남편, 사회인으로서의 신분을 벗고 맘에 쏙 드는 장난감을 발견한 소년으로 돌아갔다. <미스터 피터팬>을 연출한 오현숙 PD는 "여전히 고무줄 끊고 가는 것 같은, 신기하고 재밌는 것을 찾으면 지금도 가슴 설레는 40대 남성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남성들의 놀이 혹은 비밀 등 공감 코드를 내세운 '남자들의 TV'는 최근의 사회문화적 경향을 반영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키덜트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주목했다. <미스터 피터팬>이 타기팅한 1970년대생 '소년 남자'들은 문화적으로 문제적인 세대다. 2014년 경제·문화 트렌드를 전망한 보고서들은 하나같이 놀이문화에 뛰어든 남성, 소비시장의 키워드로 떠오른 중년 남성, '어른 아이'를 지향하는 남성을 조명했다. <대한민국 40대 리포트>(함영훈 외)는 이들을 베이비부머 세대와 88만원 세대 등 주변 세대에 낀 한때의 'X세대', 하지만 지금은 잊혀진 세대(forgotten generation)라며 'F세대'라고 지칭한다. "진보적 이데올로기와 함께 폭발적인 대중문화 세례를 동시에 받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와 소비사회의 새로운 욕망을 보여주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로 꼽는다. <트렌드코리아 2014>(김난도 외)는 여기에 "안정을 갖출 시기지만 여전히 흔들리고(fragile), 놀이와 재미(fun)를 추구하는 영원한 피터팬(forever peter pan)"이라는 해석까지 더해 이들을 정의했다.

<라이프트렌드 2014>(김용섭)는 "개인적인 위안과 행복을 추구하고 자신을 더 가꾸며 즐거운 경험을 많이 누리고자 하는" 경향의 남성이 늘고 있음을 짚었다. "지하상가 가서 코디해서 맞춘 거예요. 오늘을 위해서 샀어요. 겁나 멋있어서." 인터넷을 떠도는 '공대 남자 공식'을 고스란히 따르는 <나는 남자다> 방청객도 방송 출연을 위해 단장하고 나온다. 새로운 스타일과 취향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남성이 늘었다. 1996년 한 광고회사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남자가 여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제품은 단 하나, 바로 술"과 비교하면, 오늘의 남성은 20년 전에는 존재 자체가 미미했던 신인류들이다. 헨릭 베일가드는 <트렌드를 읽는 기술>에서 "관찰의 대상이 되고 새로운 스타일을 수용하는 트렌드 결정자는 개인적 네트워크 범위 안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기존의 여론 주도자에 비해 세력 범위 확산의 차원에서 더 월등"하다고 지적한다. 여전히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3040 여성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남성들은 사회문화적 변화의 물결에 생동을 더하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객체화 대상에 대한 주의를

이승한 TV평론가는 이에 더해 TV를 보는 데 익숙한 남성 인구가 늘어난 것도 남자들의 TV 등장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남성 콘텐츠를 들고나온 프로그램들이 호출한 세대는 청소년기부터 TV를 봐왔던 이들이다." TV 앞에 앉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던 남자들이 예능·드라마 등 여성 시청자 중심의 콘텐츠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부들처럼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드는 중년 남성의 증가 현상을 두고 한때 '드라저씨'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스코리아> <별에서 온 그대>의 주요 시청층 중 3040 남성이 높은 점유율을 보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예컨대 <미스코리아>의 경우 1~6회 연령대별 평균 시청 점유율 중 40대 남자가 16.5%(수도권 기준, TNmS 조사 결과)로 가장 많은 시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별에서 온 그대>는 1~15회 평균 시청률 성별·연령대별 조사 결과 40대 남성 시청자가 12.9%를 차지했는데, 20대 여성 시청률보다 근소한 차이로 더 높은 수치다. 40대 남성들이 20대 여성보다 많이 TV 앞에 앉기 시작했다면 2030 남성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TV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모바일·웹 등 TV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져 TV 콘텐츠를 소비하는 남성 인구가 많아진 점" 또한 남성에게 공감을 유도하는 예능이 등장한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승한 평론가는 "남성들이 새로운 객체화 대상이 될 수 있음은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비평했다. 그동안 어린이와 여성의 대상화에 대해서는 언제나 약한 존재 혹은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객체화하는 주체였던 남성이 그 대상이 되었을 때, 아무도 그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비난의 단어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케이블이나 종편에서 방송 수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말하지 못한 것들이 TV에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제까지 없었던 소재 중 가장 수위를 높이기 쉬운 것이 남자들 이야기다. 갈 곳 없는 남자들, 설 곳 없는 남자들이라는 인상, 남성 집단에서 오래 지내온 남자들에게 가진 고정관념 등이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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