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위기의 증권맨 '인생 2막' 향해 다시 뛴다

한동훈·강광우·김창영기자 입력 2014. 4. 18. 18:03 수정 2014. 4. 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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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 후 계약직으로.. 부티크 차리고.. 직접 전업투자 ..업계 불황에 구조조정 광풍.. 이르면 30대에 거리 내몰려"나와 가족 위해 변신해야죠"증권업 떠나 새로운 사업도남은 직원들은 항상 불안감.. 인맥·경력관리등 미리 대비

오전8시.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대신증권 마이스터클럽 지점에 직원들이 출근한다. 직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특별한 점이 눈에 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주름살이 많은 직원들뿐이다.

 구조조정의 칼날이 휘몰아치는 증권업계에서 지난해 11월 대신증권은 퇴직자들을 상대로 신선한 시도를 했다. 마이스터클럽을 열어 대신증권 계열사 대표를 지낸 퇴직자부터 임원, 영업점 지점장을 역임한 직원들에게 상임고문이라는 직함을 주고 개인 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증권사 퇴직자들에게 인생 2막의 무대를 열어준 것이다. 현재는 13명의 퇴직자들이 상임고문으로 일하면서 수십년간 쌓아온 고객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식 트레이딩, 금융투자상품 판매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대신증권 방배·사당지점을 거쳐 정년퇴임을 한 후 지난해 11월부터 마이스터클럽으로 출근하는 신경식(58) 상임고문은 "현직에 있을 때는 승진하려고 회사의 목표를 위해 살아왔지만 지금은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해 일한다"면서 "지금은 일한다는 것 자체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황 악화로 증권업계에 구조조정 폭풍이 몰아치자 현직에서 밀려난 증권맨들이 생존을 위한 변신에 나서며 인생 2막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한때는 하루에도 수십억원을 주무르며 세간의 부러움을 산 그들이지만 이제는 예전의 명성을 뒤로 하고 혹독한 생계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업계에서 밀려난 대다수 증권맨들의 인생 후반전은 녹록지 않다. 최근 한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7명을 뽑는 영업사원 모집에 50대의 지점장 출신 지원자가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원자 35명 가운데 2명이 명예퇴직한 지점장 출신이었다. 지난해 영업지점장을 끝으로 증권가를 떠난 박정훈(가명)씨는 이달 지점장이 아닌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지점장 재직 당시 1억원에 가까웠던 연봉은 월 기본급 120만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개인 역량에 따라 벌어들인 수익의 30~7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하니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고객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만 한다. 6개월 계약직인 탓에 연장을 하려면 실적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 증권사 지점에서 11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한 정수원(가명)씨는 현재 투자권유대행인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투자권유대행인은 특정 증권사와 투자권유 위탁계약을 맺고 금융투자상품을 파는 일종의 전문판매인이다. 100만원이 채 안 되는 기본급에 상품을 판매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는다. 원래는 퇴직금으로 창업을 시도했지만 확신이 없어 일단 투자권유대행인으로 1년만 근무하기로 아내와 합의했다. 그가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증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전업투자자로 나서 인생에 승부를 거는 경우도 있다. 증권사 지점에서 7년간 근무했던 김수형(가명)씨는 고객 돈을 가지고 주식매매를 통해 성과를 내자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투자자로 나섰다. 김씨는 "구조조정 불안에 시달리며 월급을 받느니 차라리 일찌감치 전업투자자로 나서 내 돈을 불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였던 장씨도 3년 전 회사를 나와 서울시 도곡동 인근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렸다. 자신과 지인들의 돈을 모아 15억원가량을 운용한다. 펀드시장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매년 연봉이 만족할 만큼 오르지 않자 일명 '부티크(개인이 하는 투자자문 및 운용사)'로 전업한 것이다.

 하지만 제도권을 뛰쳐나와 실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장씨는 "전에는 회사의 시스템과 자본을 지원 받아 펀드를 운용했지만 지금은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며 "나올 때는 포부가 컸지만 지금은 힘든 게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불확실한 증권업계를 미련 없이 떠나는 사례도 있다. 구조조정의 여파가 몰아치기 전에 업계를 떠나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난달 증권사를 퇴사한 유모씨는 다음달로 예정된 홍보 대행사 개업 준비에 한창이다. 유씨는 "증권사에서 홍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홍보와 연계된 사업을 구상했다"며 "정들었던 증권업을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지난 4년간 홍보 분야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장으로서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증권업계를 떠나는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남아 있는 직원들도 불안을 달고 살기는 매한가지다. 남의 일이 아니고 언제든지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업종 자체가 워낙 변동성이 큰데다 최근 증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남은 직원들도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일부 직원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부지런히 쌓아 타이밍만 맞으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려는 등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한 펀드매니저는 미래를 대비해 투자자문사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자문사에 들어가려면 일부 지분투자가 필수적이어서 아내 몰래 비자금을 지금까지 4,000원만원가량 빼돌려 차명으로 운용하고 있다. 운용사에서 잘릴 경우에 대비해 자문사에 들어갈 자본금을 미리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도 일부에 해당할 뿐 대다수 증권맨들은 대비책 마련에 소극적인 편이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증언이다. '설마 나는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겠지'하는 심리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에게는 은퇴와 노후를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을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대신증권 마이스터클럽에서 근무하는 이철호(57·가명) 상임고문은 "증권사에 있는 월급쟁이들 중 정년까지 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노후를 대비하기도 어렵고 부를 축적한 사람도 사실상 많지 않다"며 "증권사 자체가 투기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증권사에 다닌다고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안정적으로 대처하기는 우리도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증권맨들도 자신의 제2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조조정 리스크나 은퇴 이후의 삶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곧바로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해 생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부지런히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모 한국투자증권 은퇴설계연구소 소장은 "대개 증권맨들은 일반인들보다 연금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개인연금 상품에는 대부분 가입된 상태"라며 "다만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잃을 경우 생계비가 끊기기 때문에 회사를 나와도 바로 다른 증권사나 투자자문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평소에 인맥을 잘 쌓고 경력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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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강광우·김창영기자 hoon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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