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으뜸 봄나물! 지칭개로 만든 콩가루 된장국

구성 이세정 입력 2014. 4. 18. 16:26 수정 2014. 4. 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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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요리칼럼

겨우내 낙엽만 수북하던 산기슭에 연보랏빛 현호색과 백색의 까치무릇이 단아한 자태로 피어나면 4월은 어느새 이만치 다가와 있습니다. 바람결 까칠해도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꽃마중 가기 좋은 날, 풍부한 비타민과 무기질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봄나물 거두기에도 좋을 때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야생초일지라도 밭에 돋아나 지천으로 번지면 천덕꾸러기로 여겨지는데, 왕성한 번식력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지칭개도 예외가 아닙니다.

들녘이나 밭가에 여러 자생초들과 무리지어 살아가는 지칭개는 가을에 싹을 틔워 뿌리잎으로 겨울을 나는 두해살이풀입니다. 비슷한 습성을 지닌 냉이ㆍ꽃다지처럼 방석 모양으로 바닥에 낮게 깔린 채 혹독한 추위를 견딥니다. 얼었던 땅이 녹고 햇살이 따사로워지는 이른 봄부터 꽃대가 올라오기 전까지 뿌리째 캐면 좋은 국거리가 됩니다. 뿌리잎은 뒷면에 뽀얀 털이 빽빽해 색깔은 쑥에 가깝고, 깃꼴로 잘게 갈라지는 잎은 언뜻 보면 크게 자란 냉이와 생김이 비슷합니다. 늦은 봄에 피는 연보라색 꽃은 엉겅퀴와 꼭 닮았지만, 지칭개는 엉겅퀴와 달리 잎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없습니다. 꽃이 필 무렵이면 뿌리에서 자란 잎은 사라지고 줄기는 1m 가까이 곧게 일어서 어릴 때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그래서 꽃만 기억하고 있으면 나물거리는 발치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꽃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약재로 사용하는 지칭개는 소화불량ㆍ위염ㆍ종기ㆍ외상출혈 등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지칭개라는 이름은 잎과 뿌리를 짓찧어 즙을 내 상처 부위에 발랐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웬만큼 우려내어선 쓴맛이 가시질 않아 먹기도 전에 지쳐버려 지칭개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쓴맛이 강한 풀입니다. 쌉쌀한 맛으로 입맛 돋우는 씀바귀나 머위ㆍ고들빼기 하곤 조금 다른 쓴맛입니다.

시골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칭개국을 끓였던 적이 있습니다. 물에 담가 이틀 동안 우려내었는데도 국을 끓여 한 숟갈 떠 넣고는 질겁했습니다. 쌉쌀한 맛이 아니라 지독하게 쓴맛이었는데, 세상에 그런 쓴맛이 없습니다. 몇 년이 지나 콩가루를 묻혀 된장국을 끓이면 냉잇국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이야기에 솔깃해 다시 시도해보았지만 쓴맛은 여전했습니다. 더는 끓여볼 엄두가 나질 않던 지칭개국은 어머니 연배 되는 분들께 비결을 듣고 나서야 감을 잡았습니다.

지칭개에 담긴 지독한 쓴맛을 감칠맛으로 바꾸기 위한 방법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른 봄에 겨울을 난 싹을 뿌리째 캐서 흙을 털어내고 돌이나 칼등으로 짓이기듯 찧은 다음 물에 담가 우려냅니다. 뿌리를 세로로 잘라보면 중심부에 보랏빛이 감도는 단단한 심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쓴맛의 주범입니다. 이 부분을 칼로 도려내거나 짓이겨 물에 우려내야 합니다. 쓴물이 충분히 빠졌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우려내려고 담가보면 노르스름한 물이 또 배어나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우려냅니다. 짓이긴 풀을 오랜 시간 우려내면 진국은 다 빠져나갈 것 같지만 쓴맛만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푹 끓여도 물크러지지 않고 시래기 나물국처럼 씹히는 맛이 진해 건더기를 넉넉하게 넣어 끓이면 맨 입에 국만 한 그릇 비워도 든든해집니다.

제 맛을 내려면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끓을 때 뚜껑을 열지 않아야 합니다. 콩나물 비린내처럼 지칭개국이 끓을 때 뚜껑을 열면 쓴맛이 받친다고 합니다. 버리는 셈 치고 한 번쯤 열어보고 싶었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비법을 굳이 시험해볼 것은 아니라 뚜껑도 생각도 꾹 닫은 채 끓입니다. 콩가루 넣은 국물에 열을 가하면 부글거리며 끓어 넘치기 쉬운데 끓기 시작할 때 약불로 낮춰놓든가 아예 시작부터 불의 세기를 약하게 하면 맘 졸이지 않아도 됩니다. 콩가루 없이 멸치와 된장만으로 국물을 내어도 구수하고, 조갯살을 넣으면 한결 깊은 맛이 납니다.

뭉쳤던 근육이 사르르 풀어지는 것 같은 지칭개 콩가루된장국은 한 마디로 봄에 먹는 나물국 중에 으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지칭개된장국이 어떤 맛이냐고 물어오면 전해들은 말을 흉내 내어 대답합니다.

"냉잇국은 저리가라야." 이맘 때 거두면 뿌리가 조금 굵직해도 질기지 않고, 부피가 커서 나물바구니도 금방 채워집니다. 거둠이 많으면 쓴맛을 충분히 우려내 콩가루에 묻히거나 된장을 약간 버무려 냉동 보관해도 됩니다. 냉이도 이런 방법으로 갈무리해놓으면 냉동실에 오래 묵혀도 잡내가 덜 배이고 조리하기도 간편합니다.

지칭개로 국을 끓여 맛을 볼 때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일어납니다. 제대로 맛이 날까, 혹시나 쓴맛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잠깐 동안이지만 조마조마하다가 입 안 가득 구수한 향이 퍼지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수수한 나물국에 담기는 소박한 행복, 새봄에 만나보세요.

<재료 준비>다듬은 지칭개 300g, 물 9컵, 국물멸치 12개, 다시마 사방 5㎝ 4장, 된장 5~6큰술, 날콩가루 10큰술, 홍고추 1개, 대파 1뿌리

<만드는 방법>

1. 뿌리째 캔 지칭개는 뿌리 틈새에 박힌 흙을 털어내 깨끗이 씻어 건진다.

2. 뿌리가 굵직하면 세로로 반을 가르고 심지 부분을 칼등으로 짓이겨 물에 담가 바락바락 주물러 쓴맛을 우려낸다. 거칠게 주무르다 보면 잎이 부서지므로 체에 담아 물을 갈아주며 씻는다.

3. 좀 더 쓴맛이 우러나도록 하룻밤 물에 담가놓았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주물러 헹구어 건져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뺀다.

4. 물기를 적당히 털어낸 지칭개에 날콩가루를 넣어 골고루 묻힌다.

5. 다시마와 멸치를 넣어 끓이다가 부르르 끓어오르면 다시마 건져내고 좀 더 끓여서 멸치 건져내고, 된장을 풀어 넣어 국물이 팔팔 끓으면 콩가루에 묻힌 지칭개를 넣는다.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이고 끓는 도중에 뚜껑을 열지 않는다.

6. 충분히 끓으면 홍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 털어내어 채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썰어 넣는다.

글을 쓴 자운(紫雲)은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ㆍ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 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 http://blog.naver.com/jaun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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