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박용식, 무대인사 불러달라고 했는데"

2014. 4. 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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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조경이,이정민 기자]

▲ 오광록

영화 < 시선 > 에서 세속적이고 탐욕적인 선교사 조요한 역의 배우 오광록이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배우 오광록이 32년 만에 영화 < 시선 > 으로 생애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 시선 > 은 < 별들의 고향 > < 바람 불어 좋은 날 > < 바보 선언 > 등 198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름잡던 이장호 감독이 19년 만에 선을 보인 작품으로, 해외여행 중 피랍된 한국인 9인이 생사의 갈림길에 내몰리는 과정을 그렸다. 오광록은 극 중에서 날라리 선교사 조요한 역을 연기했다.

"감독님이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하시는데 저를 선택해서 정말 가슴이 뛰고 설?어요. 제가 20대 시절 감독님의 영화 < 바람 불어 좋은 날 > < 바보 선언 > 등의 작품을 참 좋아했거든요.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를 받고, 미처 읽지도 않고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개런티는... 제 하루 일당의 반나절쯤에 해당하는 금액? 아주 사소하게 받았습니다."

이장호 감독은 < 시선 > 에서 오광록의 열연을 굉장히 호평한 바 있다. 언론시사회와 매 인터뷰마다 "40년 만에 배우를 존경하기는 처음"이라며 극찬했다. 이장호 감독의 말처럼 오광록은 < 시선 > 에서 32년 연기파배우의 관록을 고스란히 묻어냈다.

조요한은 해외선교를 하러 온 기독교인들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챙긴다. 그러던 그가 반군세력에게 붙잡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왜 세속적인 껍데기를 걸치고 속을 보이지 않았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배교냐 순교냐의 갈등,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표현해 낸 오광록은 실제로 기독교인이 아니다.

"이 영화가 종교적으로 편협하게 흐르는 것을 막고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독교인인 감독님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셨어요. 촬영 전날 늘 촬영감독, 조감독, 배우들이 모여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대본도 수정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편협한 부분은 다 쳐냈고요. 기독교인 반, 비기독교인 반이 함께 일구어낸 영화입니다."

지뢰 매설됐던 분쟁지역에서 촬영..."이겨내야 했다"

▲ 오광록

"박용식 선생님이 길거리 음식을 드시고 체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안색도 안 좋고 식사도 잘 못 하셨어요. 그때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먼저 입국한 선생님의 몸 상태가 계속 나빠져 입원했고, 이후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 이정민

선교지를 방문해 통역도 하는 선교사 역할인 만큼 오광록은 출연 배우들 중에 유일하게 크메르어를 구사해야 했다. 그는 "언어가 최우선이니까 한국에서부터 공부를 해 갔는데, 현장에서도 계속 대본이 수정돼서 크메르어를 다시 고쳐서 외워야 했다"며 "촬영 내내 나에게만 주어진 숙명처럼 대사를 외웠고, 이 때문에 수면 시간이 하루 2, 3시간밖에 안 됐지만, 그래도 성취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국경의 분쟁지역에서 영화의 90%가량을 찍은 < 시선 > 의 촬영현장은 너무도 열악했다. 알려진 것처럼, < 시선 > 에서 장로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박용식은 지난해 이 영화의 촬영 차 캄보디아에 20일 정도 머문 뒤 패혈증 증세를 보였고, 지난해 8월 2일 세상을 떠났다.

"기온이 40여도를 오르락내리락 했고, 의식주도 말도 안 되게 힘들었습니다. 저도 거의 설사를 하면서 지냈어요. 근데 감독님은 한 번도 아픈 티를 전혀 안 내서 대단하시기도 하고, 사실 그게 배우들에게 힘이 돼서 더 감사하기도 해요. 또, 게스트하우스에 큰 소리를 내는 큰 도마뱀들이 있었는데, 이 역시 적응해야 했고 이겨내야 했습니다.

박용식 선생님이 길거리 음식을 드시고 체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안색도 안 좋고 식사도 잘 못 하셨어요. 그때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먼저 입국한 선생님의 몸 상태가 계속 나빠져 입원했고, 이후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기술 시사에서 영화를 봤는데 선생님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광록아, 무대인사 갈 때 나도 꼭 불러줘'라고 하셨는데 많이 쓸쓸합니다."

지뢰가 묻혀 있던 분쟁지역에서 촬영이 진행됐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오광록은 "반군에게 끌려가 숲길을 걷는 장면이 있는데, 과거 지뢰가 매설됐던 곳이었다"며 "지금은 파냈다는 표시가 있었고, 카메라 스태프가 낫으로 풀을 한 번 거둬내고 촬영을 했지만, 걸음걸음이 참으로 불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오광록

"각자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이 믿는 믿음과 신념이 커다란 장벽을 만날 때가 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순간들을 영화를 통해서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 이정민

그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현지 사람들과 제기차기를 하면서 놀던 장면을 꼽았다. 특히 조요한과 납치된 일행을 감시하는 소년병사와의 소통이 많이 등장하는데, 오광록은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극 중에서 소년병사는 친여동생의 눈이 멀자, 조요한에게 한국으로 데리고 가서 고쳐달라고 부탁을 하며, 한국인 인질들에게 비밀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기억에 납니다. 소년병사와 실제 친여동생이 촬영을 했는데, 그 두 사람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소년병사는 13살인데, 실제 직업군인이에요. 카리스마도 있고."

< 시선 > 은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배교냐 순교냐, 그 사이에 나약해지는 인간의 모습 등 여러 가지 고민해야 할 부분들을 담고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 시선 > 을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저도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으로서 말씀을 드리자면, 각자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이 믿는 믿음과 신념이 커다란 장벽을 만날 때가 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순간들을 영화를 통해서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의 인생에 위로도 받고, 숨어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해요."

오광록의 시< 까마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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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민

수십 년 동안 대학로 연극무대를 거쳐, 충무로에서 오직 연기를 하면서 묵묵히 한 길을 걷고 있는 오광록의 취미는 14년째 짓고 있는 농사다. 배추, 오이, 호박, 깻잎, 가지, 고추 농사를 짓는데, 무성해져서 혼자 감당이 안 되면 후배들을 불러 함께 밭일을 하고, 밥도 지어 먹고, 기른 채소들도 싸서 보낸단다.

또 하나의 취미가 있는데 바로 시를 쓰는 것. 16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오광록은 언젠가 시집을 꼭 내고 싶다며 , 직접 쓴 시 < 까마귀 > 를 들려주었다.

< 까마귀 >

눈이 내린다

12월 산사에

눈이 내린다

까마귀들이 날아와 눈밥을 쪼다 날아갔다

날아간 그 자리에

아, 까마귀 발자국이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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