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 레스토랑 여자 양변기, 한달에 한 두번 깨지는 이유

2014. 4. 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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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식당 진상손님 백태

손님은 왕? 종업원은 종? 식당은 봉?

식당에서 불쾌한 대접을 받았다고 누군가 온라인상에 고발했는데 알고 보니 원인은 진상손님이었다는 '반전뉴스'가 빈번하다.

'손님은 왕'이라는 마케팅 문구를 '식당은 봉'으로 이해하는 진상손님들. 피해자는 업장뿐 아니라 돈 내고 기분 좋게 음식을 즐기는 손님들이다.

서울 이태원의 한 유명한 빵집. 인기 메뉴인 무지개롤빵은 금방 동이 난다. 지난해 여름 이곳을 찾은 한 손님. 다 팔렸다는 말에 "내가 일부러 얼마나 먼 데서 찾아왔는데, 당장 만들어라. 돈 좀 벌었다는 거지" 욕을 하며 떼를 쓴다. 종업원은 어쩔 줄을 모른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일상인 시대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이와 먹는 이들 사이에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진다. '라면 상무' 같은 진상 손님을 만나면 주인들은 난감하다.

술집 주인은 봉!

지난여름 서울 마포의 한 횟집. 주인장은 갑자기 급한 벨소리에 놀라 뛰어갔다. "방 바꿔주세요." 3명의 30대 여성 손님들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옆 테이블의 40대 초반의 남성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거였다. 좀 전까지 이 두 테이블은 그야말로 분위기가 좋았다. 잘 차려입은 4명의 남자 손님과 여성들은 식당에서 처음 만나 의기투합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하하호호 웃음꽃이 폈더랬다. 오르는 취기가 문제였다. 남성 손님이 '너무 나간 것'이었다. 문제는 당장 옮겨줄 빈방이 없었다. 주인장은 '손님들끼리 어울리다 기분 상하는 일까지 식당에서 책임져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90도로 절하고 백배 사과를 했다. 밥값은 받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계속 전화로 치근덕거린 남성들을 여성들이 신고한 것이다. 심심치 않게 깨고 부수는 술집 손님들끼리의 다툼이 언론에 오른다. 밤 11시가 넘어가면 주인장들은 긴장모드로 전환한다.

서울 용산구의 한 맥줏집. "멀쩡하게 생긴" 40대 직장인 남녀 5명이 들어왔다. 주문한 수입맥주 5병을 배달한 주인장. 잠시 뒤 "4병만 왔어요. 더 주세요"라고 말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갖다 줬다. 다음날 찜찜한 마음에 시시티브이를 확인해보니 손님 한 명이 한 병을 몰래 숨기는 장면이 포착됐다. 장난처럼 넘길 수도 있지만 명백한 절도행위다.

"지배인 나오라고 해"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황당한 일은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또야!" 서울 반포동의 프렌치레스토랑의 셰프 ㅇ씨는 소리를 지른다. 여자화장실의 변기가 와장창 깨져 있다. 변기에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가 볼일을 본 '위생관념 철저한' 여성들의 몸무게가 원인이다. "한달에 한두번은 교체해요.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누가 했는지도 알 수 없죠." <개그콘서트>의 막무가내 정여사도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한 고급 레스토랑. 7가지 코스요리를 싹싹 긁어 먹은 30대 남녀.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다. "맛없으니깐 돈 못 내겠다." 50%만 내라는 오너 셰프의 타협안에도 "이따위로 장사할 거야"라는 응수에 레스토랑은 30분 넘게 시끄러웠다.

서래마을 프렌치 레스토랑한달에 한두번 여자화장실양변기 깨져서 교체입맛은 글로벌인데화장실 매너는 반세기 전?

특급 호텔 드나드는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큰 호텔에서 이게 말이 되냐. 나 변호사 친구 많다. 이슈화시키겠다." 30대 남녀 커플이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홀 매니저와 식음료담당 지배인까지 와서 절절맨다. 불고기 불판에서 머리카락이 나왔고, 중금속도 나온다는 주장이었다. 매니저는 금세 의도를 알아챘다. "불고기판은 뜨거운 온도 때문에 설사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해도 다 탑니다. 금속은 그들이 쥔 숟가락의 흔적을 보고 일부러 판을 긁었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도리가 없다. 그들이 먹은 18만원의 점심값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 호텔은 무전취식 손님이 한달이면 최소 2~3건이 된다. "지배인 나오라고 해!"란 말은 이런 손님들의 단골 멘트다.

"왜 계약이 안 된 게 저희 탓인지 모르겠어요." 홀 매니저의 증언이 잇따랐다. 몇달 전 호텔 식당을 찾은 한 손님은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하고 갔다. "왜 자꾸 들락거려서 신경을 거슬리게 했냐. 음식도 엉망이다. 너희 때문에 중요한 계약이 깨졌으니 책임지라"면서 파르르 분풀이를 했다.

온라인 진상이 더 무서워!

"오프라인 진상은 진상도 아닙니다." 서울의 한 막걸리집을 운영하는 ㅇ씨의 말이다. 지난여름 부산 태종대의 조개구이골목.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커다란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를 메고 들어와 주문한 조개를 향해 연신 펑펑 셔터를 누른다. 힘겨운 노동(?)을 끝내고 주인을 불러 하는 소리가 "저 서울에서 온 맛집 블로거인데, 잘해주셔야 돼요. 서비스 많이 주세요. 새우도 주시고요"였다. 서비스만 요구한 블로거는 그래도 양반이다. 아예 블로그에 올려줄 테니 공짜 식사나 홍보비용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역으로 이들의 파워를 사려는 식당이나 업체, 기업들의 '블로그 마케팅'도 활발해 업계가 키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블로그 문화가 확산되면서 전문화, 조직화, 직업화되는 경향도 늘고 있다. ㅇ씨는 "인기 블로거들은 식도락모임 등에서 만나 친분을 쌓고는 조직화해요. 그들이 연합하면 식당 하나쯤은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외식 전문지들이 이들과 연계해 컨설팅 사업을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맛은 개인 취향이니 공들인 음식을 맛없게 느낄 수도 있다. 레스토랑 주인들이 정작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올린 내용이 사실과 다를 때다. 서울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 주인 ㅇ씨는 한동안 댓글 공방에 심신이 지쳤다. 지난여름 20대 후반의 여성 3명이 점심때 찾아왔다가 블로그에 평가를 올렸다. 전날 저녁 장사에 남은 고기를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사실이 아님을 댓글로 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방은 한달간 이어졌지만 소득은 없었다. 지인으로부터 해결사처럼 블로그의 글을 내리게 해주는 직업이 있는데 소개해줄까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포기했다. 이런 세태에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께 '카페·블로그 상업적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수수료 등을 받는 등 영리적인 활동임에도 비영리활동인 것처럼 사용 후기를 작성'하는 것은 위법행위라는 등의 내용이다. 정작 피해를 보는 이들은 순수한 의도로 활동을 하는 블로거들이다. 도맷금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올바른 식당 문화 정착에 이들의 순기능이 분명 있는데도 말이다.

<블랙컨슈머>의 지은이 이승훈 북스페이스 대표는 진상 손님의 심리에는 "화풀이와 보상심리"가 깔려 있다고 한다. 사회나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감정노동자인 서비스업종의 직원에게 푸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보상 사례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이들은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이 대표는 "시장경제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과도해지는 서비스를 역으로 악용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식음료업장의 종사자를 포함한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른바 블랙컨슈머로 지칭되는 이들 때문에 이직까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진상 손님은 건전한 식문화 형성의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음식을 즐기려는 다른 손님에게까지 불쾌감을 안겨주는 탓이다.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이범준 겸임교수는 "이제는 우리도 먹고 마시는 일을 문화로서 소비해야 할 단계"라며 "식당을 음식을 즐기면서 예절이나 배려를 배우는 문화공간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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