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멀쩡하던 어머니가 대장내시경 위세척제 마신 뒤 갑자기 숨져.. 보험은?

2014. 4. 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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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와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해 오던 박모(사망 당시 63·여)씨는 2011년 12월 5일 감기 기운이 심해 경북 상주시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표면적으로는 기침과 가래 증상이었지만, 병원 측은 박씨의 병력을 고려해 대장내시경 검진을 권했다. 박씨는 처방대로 오후 8시 정각에 위세척제 2ℓ를 마셨다.

정밀검진 하루 전이었지만 박씨는 명랑했다. 병실에서 만난 다른 환자 아주머니들과 농담을 나누고 화투까지 쳤다. 오후 10시 회진 시 의사가 "절대 금식해야 한다"고 당부할 때에도 박씨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박씨는 자정이 지나며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6일 0시30분에는 요의(尿意)를 느꼈지만 아랫배만 부를 뿐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1시12분이 되자 숨쉬기 자체가 곤란해졌다. 당직의가 달려와 응급 투석, 생리식염주사 투여 등 긴급 조치를 했지만 박씨의 심장은 멎어갈 뿐이었다. 최후의 수단인 심폐소생술(CPR)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주치의가 최종적으로 익스파이어(사망) 판정을 내린 것은 오전 2시36분이었다.

이 죽음은 시간이 흘러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첨예한 쟁점이 됐다. 박씨의 아들 허모(44)씨는 어머니 명의로 동부화재에 가입된 상해사망보험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지난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 보험상품은 예측되지 못한 사고로 단시간 내 상해를 입으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약속돼 있었다. 허씨가 볼 때 화투까지 칠 정도로 멀쩡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는 사망 6시간여 전에 마신 위세척제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부화재는 "사망진단서가 질병에 따른 죽음을 기록할 뿐, 의료사고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사망진단서는 "상기 환자 ESRD(말기 신장질환)로 투석 중인 분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 본원에 입원하여 위세척제 2ℓ 복용 후 급성 폐부종에 의한 심폐정지로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병원 측의 소견에 위세척제가 포함된 건 분명했지만,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의 선명한 원인으로 읽히지는 않았다.

허씨와 동부화재의 논쟁은 금융감독원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허씨의 보험금 청구 민원을 접수받은 금감원 민원조사실은 "위세척제 복용 이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면, 외부 요인에 의한 죽음, 즉 상해 사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용을 전달받은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는 허씨의 민원을 생계형 민원으로 분류하고 소비자보호단체와 함께 동부화재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우선 위세척제에 대한 동부화재의 의료자문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A4용지 4페이지 분량의 보고서 말미에는 "위세척제 복용 시 60세 이상의 환자에게서 폐부종을 동반한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의 부작용 등이 보고되고 있다"는 내용이 발견됐다.

동부화재도 애초의 방어적인 입장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동부화재 윤석준 상무는 "금감원은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보험사도 일정 부분 동의했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박씨에게 평소와 달랐던 조건은 위세척제뿐이었고, 이 점을 의미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소비자정책팀의 의견도 한몫했다.

결국 '급성 폐부종'이라던 박씨의 건조한 사인(死因)에는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라는 해석이 덧붙여졌다. 허씨는 특약으로 보장된 5000만원 중 80%인 4000만원 수령에 합의했고, 최근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상주시에 홀로 남아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허씨의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소중한 돈이었다. 현장 조사에 참여한 금감원 민원조사실 정훈식 팀장은 "금융·의료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의료사고를 입증하기란 어렵다"며 "보험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 것이 다행스러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취지에서 현재 사망 뒤 2년까지로 제한된 사망보험금 청구권 시한을 3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생계형 민원에 대한 현장 조사도 꾸준히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금감원 오순명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금융·의료지식이 부족해 보험금 문제를 겪는다고 생각되면 금융민원센터(국번 없이 1332)를 찾아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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