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규제'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학교에 불똥

2014. 4. 1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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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9월부터는 책을 이용해 영어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1, 2학년생 대상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이 금지된다. 학부모들은 이 같은 교육부의 정책이 "공교육 정상화가 아니라 사교육만 조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동아일보DB

교육부가 9일 발표한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으로 초등 1, 2학년생이 수강하고 있는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의 존폐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르면 9월부터 초등 1, 2학년생이 듣는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은 게임, 노래, 챈트(리듬에 맞춰 율동을 하며 말하기)로만 가능하다. 교재를 이용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금지된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영어 정규교육과정은 초등 3학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1, 2학년생 대상의 영어 교육은 선행학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 학부모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밀어내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이 없어지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방법이 없는 초등 1, 2학년생들은 학원밖에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 초등 1, 2학년생 수요 높아

지난해에는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5906개교)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프로그램은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 등 교과 강좌와 음악 미술 체육 컴퓨터 등 특기적성 강좌. 지난해 개설됐던 25만1192개의 프로그램 중 영어과목은 2만5901개로 전체의 10.3%로 가장 많았다. 서울의 경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전체 학생의 34.7%가 영어과목을 들었다.

영어프로그램은 대개 하루 50분씩 주 5일 진행된다. 원어민 강사와 한국인 강사가 날마다 수업을 번갈아 하는 방식이거나 매일 원어민 강사와 보조 한국인 강사가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프로그램 첫날, 학생들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학년에 관계없이 수준에 따라 반이 배정된다. 발음, 회화, 문장 익히기 순서로 수업을 진행한 후 끝나기 마지막 10분 전 학생들이 그날 배운 내용을 써보며 정리하는 식이다.

초등 1, 2학년생들은 정규 수업에서 영어를 배울 수 없어도 오후에 학교에 남아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을 수강하며 기초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A초교 교사는 "영어프로그램 수강 학생의 절반인 30∼40여 명이 초등 1, 2학년생일 정도로 수요가 많다"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서민 학부모 울리는 정책

영어프로그램이 선행학습금지법에 의해 금지되는 이유는 '책을 이용해 교과목 형태의 영어를 목표로 하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책 사용 유무를 프로그램의 존폐 기준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학부모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을 듣는 초등 1, 2학년생들은 대개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영어를 배워 왔다. 선행학습금지법이 9월부터 시행되면 유치원 때부터 접해온 영어를 초등 1, 2학년 때 중단한 뒤 3학년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학부모 김경현 씨는 "유치원 때부터 아예 영어 수업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면 이 법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초등 1, 2학년 때 갑자기 영어를 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사설 영어학원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책 없이 놀이로만 구성된 수업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수업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이나 노래로 구성한다고 해도 알파벳을 읽고 쓰며 수업 내용을 정리해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조진옥 에듀베스트교육 대표는 "책 없이 놀이로 1, 2년간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커리큘럼은 많지 않다.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학습이 아니기 때문에 학부모들도 결국 외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설 영어학원 수업료가 방과후학교 수업료의 세 배에 달하는 것도 학부모들의 큰 걱정거리다. 서울지역의 경우 초등 저학년 영어학원 수강료는 20만∼40만 원에 달한다. 현재 원어민 강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방과후학교 영어프로그램의 경우 프로그램당 8만∼9만8000원 선이다. 초등 1,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준미 씨는 "서민 학부모들에게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며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기 전 저렴한 가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보루마저 졸속 정책으로 없어질 판"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들은 초등 1, 2학년생 영어프로그램 신청을 받지 않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초등 1, 2학년생을 받았다가 혹여 선행학습금지법에 저촉돼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 서울 B초교 교장은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면 학교 입장에서는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 오후에 학교의 돌봄이 필요한 학생이라면 다른 프로그램을 수강하도록 장려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초등 1, 2학년생이 교과과정의 영어를 배우는 것은 선행학습이기 때문에 책을 이용해 영어를 가르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금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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