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에 치어 순문학 설 땅 없는 문단의 현실, 韓·日 비슷"

2014. 4. 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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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하루키와 동시에 日 현대문학 견인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53)를 만난 건 지난 11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 낭독회에서였다. 국제문학교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고 있는 그를 낭독회에 앞서 '들림'동 사랑방에서 만났다. 시인이자 일본문학 번역가인 한성례씨가 통역자로 동석했다.

시마다 마사히코는 한국을 잘 아는 작가다. 이번 방문으로만 벌써 20회를 넘긴다고 한다. 이번처럼 공식적인 초청을 받아 오기도 했고 혼자서, 혹은 가족과 더불어 한국을 찾았다. 올 때마다 동대문 광장시장은 꼭 들르는 필수코스다. 그곳에서 지금 입고 있는 양복도 샀다. 옷뿐 아니라 빈대떡에 동동주까지 먹을거리가 많아 좋다고 한다. 요리에 특히 관심이 많아 한국행은 식문화 기행이 중심에 놓인다. 울산의 고래 고기에서부터 광주의 삭힌 홍어에 이르기까지 맛보지 않은 한국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다. 다 먹을 만했지만 홍어의 암모니아 냄새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중에 지금보다 더 가난해지면 예닐곱 명이 앉을 만한 작은 공간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와 술을 파는 집을 운영하고 싶다고도 했다. 문학뿐 아니라 오페라 대본을 쓰기도 하고 영화배우로도 살아온 그에게 어떤 욕구가 전방위 활동을 부추기는지 물었다.

"글이나 요리나 머리를 써서 하는 일이라는 차원에서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소설도 요리를 하듯 씁니다. 소설 속에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모르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같은 거지요.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표현하는 방식만 다르다고 봅니다."

그는 1983년 도쿄 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 4학년 재학 중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희유곡'이라는 작품을 발표한 뒤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각별한 주목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많은 소설들을 펴냈고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다수 번역됐지만, 가장 최근 국내에 소개된 책은 '악화(惡貨)'라는 장편소설이다. 정밀한 위조지폐를 만들어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축으로 첨단자본주의 시대의 돈에 관한 작가의 철학을 흥미롭게 전개하는 작품이다.

"원래 범죄소설로 기획된 작품입니다. 2008년 뉴욕에 살았는데 그때는 리먼 쇼크가 터졌고 25년 전 뉴욕에 갔을 때도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국가와 대기업들이 결탁해 금융자본주의로 나아가지만 이 과정에 일반 국민은 배제돼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지만 그 돈은 불완전한 것이죠. 위조지폐를 만든다는 건 그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해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진정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사람의 행복을 위한 돈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지난해는 '니치를 찾아서'라는 작품도 펴냈다.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돈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오디세우스처럼 모험을 계속하면서 도망다니는 사람을 그렸다"고 했다. '니치(niche)'란 틈새를 의미하는데 이 소설의 제목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이 단어처럼 시마다의 소설들은 대체로 경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이날 저녁 낭독회 사회를 맡은 평론가 김미정은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시마다 마사히코. 그는 "한·중·일 국민이 자국 정치인들의 내셔널리즘 선동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이제원 기자

낭독회에서도 반복해서 말했지만 시마다는 일본에서 이른바 '순문학'은 이미 자취를 감추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순문학이 어느 정도 대접을 받았으나, 이후로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강한 장르문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문학평론가들조차 설 자리를 잃고 대학교수 아니면 평전이나 쓰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크게 다를 바 없는 한국의 문학판도 일본의 상황을 그대로 모방하듯 뒤따라가는 모양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순문학 작가들인 미시마 유키오나 다니자키 준이치로 같은 이들이 성적인 내용들로 당시에는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요즘은 일반 대중을 놀라게 하는 역할은 코미디언 같은 다른 장르 사람들이 하고 있다"면서 "순문학으로 인정을 받은 작가라 하더라도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기능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점차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노벨문학상 후보는 50년간 비밀인데 하루키가 매년 거론되는 형국"이라며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들은 대체로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멀었다"고 언급했다. 낭독회에서는 "하루키를 좋아하면서 시마다도 좋다는 말을 하는 건 사기"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문학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적어도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지식인이기에 동북아 평화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작금의 한·일 관계는 정치인들 차원을 넘어서 혐한 시위로까지 번지는 대단히 껄끄러운 국면이다. 최근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일본 올레 길에도 혐한 구호가 내걸렸다는 소식이다.

"정치인들의 내셔널리즘이 문제입니다. 국수주의를 내세우면 지지율이 안정되기 때문인데 생활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내셔널리즘에 쉽게 넘어갑니다. 불평등한 상태에 놓인 힘든 사람들이 이 물결을 타는 거지요. 아베 정권은 사실 대기업 봐주기를 하고 이번에는 소비세도 5∼8% 올려서 시끄러웠습니다. 이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통당하는 국민들은 정권에게 사기를 당하고 있는 거지요. 자기가 손해 보는지도 모르면서 아베와 같이 떠들어주는 형국입니다."

그는 "중국이나 한국 정치인들도 내셔널리즘에 편승하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농간에 현혹되지 않고 주체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지식인 5000여명이 원자력발전소 반대 집회를 갖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에서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일본에서는 듣기 어려운 '우리'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일본 사람들도 뭉쳐서 대항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저녁 낭독회는 시마다가 자신의 소설 '악화'의 첫 대목을 읽은 뒤 평론가 김미정의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어 시인이기도 한 시마다의 시 낭송, 그의 단편 '사도 도쿄'의 한 대목을 시인 김경주가 연출한 낭독극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연희창작촌 실무진과 조촐하게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막걸리에 취흥이 오른 시마다는 오키나와 민요를 불렀다. 사랑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한국 가요가 있다고 전했더니 그는 광주에 내려가 먹었던 삭힌 홍어의 냄새를 거론하면서 "사랑은 암모니아 냄새를 견디는 것"이라고 받았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는 질투와 오해와 배신 같은 자욱한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언설이다. 낭독회에서 읽었던 그의 시 한 대목.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는 춤을 춰야 한다/ 뼈가 기뻐 날뛰고 발꿈치가 타오르기에/ 그 사람을 만지고 나서는 미쳐야 한다/ 마음이 녹아 내 몸은 껍질만 남기에"(김태환 역, '그 사람을 알고 나서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1961년 도쿄 출생 ▲1983년 도쿄 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 4학년 재학 중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희유곡'으로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름 ▲1984년 노마문예 신인상('몽유왕국을 위한 음악'), 1992년 이즈미교카문학상('피안 선생') ▲장편소설 '나는 모조인간' '꿈의 메신저' '로코코 거리' '악마를 위하여' '떠오르는 여자 가라앉는 여자' '퇴폐 예찬' '피안 선생의 사랑' '무한카논 3부작' '악화' 등 ▲출연 영화 '아웃 오브 더 윈드' '도쿄의 거짓말' '도쿄 데카당스' '소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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