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이랜드, 발도 빨랐고 운도 좋았다

조회수 2014. 4. 10. 13: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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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그룹(회장 박성수)이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한 프로축구단 창단에 나섰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9일 "이랜드그룹이 2015년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참가를 목표로 지난 1년 동안 시장조사 등을 거쳐 축구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전날 권오갑 프로연맹 총재에게 창단 의사를 전한 데 이어 오는 14일 창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의향서도 제출한다. 문답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본다.

 ■이랜드의 사업은 프로 스포츠와 어울리나

 그렇다. 이랜드그룹은 의·식·주·휴·미·락(衣食住休美樂) 등 6개 테마를 중심으로 250여개 브랜드를 보유했다. 여성과 어린이 등에 이르는 다양한 의류브랜드, 애쉴리 등 요식업체, 건설, 호텔업, 백화점과 아울렛, 엔터테인먼트와 테마파크 및 여행 등이 주요업종이다. 건설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비재이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와는 잘 어울린다. 중국,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주요 10개국에 해외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앞세워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프로축구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해외마케팅을 하는데도 큰 효용성이 있다. 이랜드의 지난해 총매출은 10조원이다.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할 자금력도 충분하다. 2012년 12월에는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 인수전에도 뛰어드는 등 스포츠 사업에 보여준 관심도 컸다.

http://www.eland.co.kr/Business/Business_1_0.aspx

 ■그렇다면 이랜드가 추구하는 축구단 모습은

 냉정하게 보면 축구단 운영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축구의 가치를 활용한 스포츠 비즈니스를 확대하려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이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축구가 가진 영향력과 잠재력을 이용해 스포츠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연맹 한 관계자는 "이랜드가 프로축구연맹에 앞서 제출한 자료에도 성적과 무관하게 관중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기구단을 지향한다고 나와 있으며 매년 관중 목표치까지 설정돼 있다"면서 "한마디로 즐거울 樂에 방점을 찍는 구단을 추구하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성적과 크게 상관없이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은 유럽식이 아니라 미국식 프로구단 모델이다.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데는 활용도를 극대화(UTILITY MAXIMIZATION)하는 것과 수익을 극대화(PROFIT MAXIMIZATION)하는 모델로 나눠진다. 이랜드는 후자에 가깝다. 프로연맹의 또 다른 직원은 "이랜드는 투명한 행정, 합리적인 투자 등 최근 트렌드에 맞는 밝고 깨끗하게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이랜드가 14일 공식적으로 발표할 구단 비전에 이 같은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잠실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최다상권인 강남 시장을 노린 전략적인 선택이다. 잘 운영된다면 엄청난 이득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다. 게다가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시에게는 애물단지로 남아 있다. 운영 및 관리비가 매년 20억원 가까운 돈이 투자되지만 이곳을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구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회성 이벤트에 활용되는 게 전부다. '돈 먹는 하마'와 같은 종합운동장 때문에 고심해온 서울시로서는 이랜드의 제안을 거부할 명분과 실리가 없어 보인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10304000064 & md=20120422215318_BG

 ■서울시 입장은 어떤가

 서울특별시 체육진흥팀 이현중 사무관은 "이랜드로부터 8일 구두로 협의 요청을 받았을 뿐 문서로 주고받은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협의를 더 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서울시가 이랜드 요청을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이랜드가 가변좌석 설치 등 시설보수를 요청해왔다"면서 "지난해 동아시아대회를 치르기 위해 많은 부분이 보완됐지만 FC 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 경기장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서 개보수에 협조해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게 원만하게 이뤄지면서 이랜드와 서울시가 무난하게 연고지협약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물론 시민구단의 형태를 원했지만 어쨌든 서울연고프로축구단 창단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밝혔기 때문에 이랜드가 서울 연고로 창단되는 데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잠실종합운동장 관리 비용을 어떻게 할지, 바로 옆에 있는 보조구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이랜드가 얼마나 줄지, 개보수를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줄지 등 정도의 문제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랜드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http://sports.donga.com/3/all/20140409/62405098/3

 ■복합형 돔구장 건립 덕 보나

 서울시는 이달 초 잠실학생체육관을 허물고 스포츠·공연이 가능한 복합 돔구장을 건설하는 등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곳에 돔구장뿐 아니라 쇼핑센터, 음식점 등 다양한 시설들도 들어선다. 그렇게 되면 게임 데이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된다. 잠실종합운동장을 쓰겠다고 선언한 이랜드도 엄청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은 소비성 업태를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는 이랜드의 경영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돔구장에 다양한 부대시설이 들어서고 스포츠뿐만 아니라 대형공연, 국제적인 이벤트 등이 열린다면 사람들이 몰릴 게 분명하다. 게다가 이곳을 밤에는 문을 닫는 지금과는 달리 24시간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도록 오픈한다면 잠실의 명소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이랜드가 잠실을 택한 것은 이같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철저한 전략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이랜드는 아주 영리했고 일을 시작하는 타이밍도 좋았다. 축구팬들이 원하는 잠실,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겠다는 명분도 훌륭했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D41 & newsid=03470246606051856

 ■가입금 문제, 논란 가능성은 없나

 이랜드가 프로축구계에 들어가기 위해 프로연맹에 내야하는 돈은 창단가입금 5억 원과 연회비 5000만 원 등 5억5000만원이 전부다. 연맹 조연상 홍보팀장은 "2012년 연맹이사회는 승강제 도입에 앞서 신생구단의 적극적인 창단을 돕기 위해 진입장벽을 낮춘다는 의미로 축구발전기금을 없애고 창단가입금 5억 원만 내면 프로축구계에 들어올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FC 서울은 2004년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 분담금 50억 원과 프로축구발전 기금 25억 원을 합쳐 총 75억 원을 축구협회(50억 원)와 프로연맹(25억 원)에 냈다. 당시에는 FC 서울이 서울로 입성하는 것을 배아파한 다른 구단들이 많은 돈이라고 받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얼마의 돈을 내야하는가를 고민하다가 기준으로 만든 게 바로 월드컵경기장건설 부족분이었다. 당시 협회와 연맹은 일단 150억 원 중 절반은 FC 서울이 내고 나머지 절반은 서울시를 연고로 하는 신생구단이 내게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리고 FC 서울이 75억 원을 낸 상대는 서울시가 아니라 협회와 연맹이다. 즉 이랜드도 프로축구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협회·연맹과의 합의가 필요한데 그 합의가 5억 원이라는 '소액'이다. 기존 프로축구단도 대한민국 최고 상권인 강남 잠실을 이랜드에 내주는 게 배가 아플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랜드에게 돈을 받아내야 하는 명분도 없어 이를 이슈화하기도 애매하다. 어쨌든 이랜드는 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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