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학 비리' 김문기 일가, 상지대 다시 장악했다

입력 2014. 4. 6. 20:00 수정 2014. 4. 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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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차남 김길남씨 이사장 선출…이사회 9명중 6명 확보

학생·교직원들 민주사학 위한 '20여년 노력' 물거품

김영삼 정권 출범 첫해인 1993년 '문민정부 사학비리 1호'로 교육계에서 퇴출된 김문기(82)씨 일가가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의 운영권을 다시 장악했다. 김씨의 둘째아들 김길남(46)씨가 지난달 31일 상지대 이사회에서 새 이사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김씨 일가는 상지대 정이사 9명 가운데 6명을 확보해 정관 개정, 총장 선임 등 '전권'을 휘두를 수 있게 됐다.

교육부가 추천한 채영복 이사장(전 과학기술부 장관) 및 상지대 교수·학생·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이 추천한 임현진 서울대 교수와 교육부 추천 이사인 한송 전 강릉원주대 총장 등 이사 3명은 "옛 재단 쪽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며 김씨 일가 복귀에 반대해 그 전날 사임했다. 김문기씨가 93년 3월 학생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이듬해 대법원의 실형(1년6개월) 선고로 상지대 이사장에서 해임된 지 20여년 만의 일이다. 상지대 운영권을 둘러싼 학생·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들과 김문기 일가의 오랜 싸움이 김씨 일가의 '완승'으로 기운 셈이다. 교육부 소속 행정위원회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김문기씨 쪽에 '이사 과반 추천권'을 보장하고, 교육부는 구성원들의 '이사회 파행 특별감사' 등 요구에 뒷짐만 진 결과다.

■ 김문기의 상지대

원래 상지대는 지역 인사 원홍묵씨가 1963년 4년제 야간대로 설립한 원주대학이었다. 1972년 교육부 임시이사로 파견된 김문기씨가 74년 이사장이 되더니, 재단 이름을 청암학원에서 상지학원으로 바꾸고 자신을 설립자로 정관에 넣었다. 그런데 김씨는 당시 원주대 인수 과정에서 문교부 장관이던 민관식씨의 비호 아래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는 게 원씨의 주장이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김문기씨는 14살 때 서울 인사동 '빠고다가구' 종업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김씨가 구속된 93년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김씨는 60년대 후반 민관식씨의 선거운동을 도운 인연과 당시 포마이카(호마이카) 가구 선풍을 타고 축재에 성공했고, 상지대를 인수한 뒤론 학생 등록금과 부정입학 따위로 챙긴 돈 등으로 부동산 투기에 나서 60만평 규모의 '부동산 왕국'을 세웠다. 93년 국회의원 재산신고 당시 185억여원을 신고해 집권당 의원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김씨는 유신독재 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등 여당 국회의원을 세 차례 지냈다.

상지대는 김씨 일가의 일자리이자 축재 수단이었다. 김씨 일가가 이사(아내), 총장 비서실장(사위), 전문대학장(매제), 교무과장·한방병원 총무과장(8촌), 회계·서무과장(문중 인사) 등 요직을 독식하기도 했다. 김씨는 상지대 운영에 사재 180억원을 투자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재단 전입금이 90년엔 3000원, 92년엔 한 푼도 없었다. 93년 언론 보도를 보면 상지대 도서관엔 정기구독하는 정기간행물이 한 권도 없었다. 심지어 "도서관 비치용으로 청계천 등지에서 헌책을 무게로 달아 사들여 오기도 했다"는 교수들의 증언도 있다. 상지대 인수 직후엔 모든 교직원한테서 봉급 포기 각서와 백지 사직서를 받았다. 김문기씨가 이사장이던 78~93년 상지대에서는 이사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김문기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끊임없이 상지대 복귀를 시도했다. 2001~2002년 학교 안 자신의 사유지에 팻말을 세우고 건물 공사를 하겠다며 철제 빔을 쌓아뒀다. 지금의 정문은 김씨가 '알박기' 한 땅을 상지학원에서 법원에 땅값을 공탁하고 수용한 뒤에야 2007년 세울 수 있었다. 김씨는 정문·후문 근처에 주택·건물을 사들여 구성원들을 비난하는 펼침막을 내걸기도 했다.

재단전입금 3000원…김문기, 이번엔 달라질까

1994년 학생 부정입학 혐의로김씨 이사장직 해임저축은행 경비 부당지출불법 정치자금 비리 여전한데김황식 전 총리 대법관 시절 판결로김씨 다시 학교 운영권 장악학교 구성원들·지역사회 '개탄'"학교 돈 손댄 사람 학교서 손 떼야"

■ 김문기 없는 상지대

김씨가 이사장에서 해임된 뒤 상지대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김찬국 전 연세대 교수, 한완상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유재천 전 한림대 부총장 등 신망 높은 원로들이 총장으로 추대돼 '민주대학'의 기반을 다져왔다. 교수협의회·교직원노조·총학생회·총동문회 등이 총장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승인받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매년 대학본부가 제출안 예산안을 총학생회가 검토했다. 이런 투명한 학교 운영의 결과, 상지대는 교원이 1992년 144명에서 2009년 364명으로, 입학 정원은 1550명에서 2036명으로, 자산은 306억여원에서 1898억여원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에 한방의료진흥센터, 자연과학관 등 십수개의 건물이 신축·증축됐다. 교육부도 '상지대가 정상화됐다'고 판단하고 2004년 정이사 체제(이사장 변형윤)로 전환시켰다.

■ 김문기의 복귀 그리고 갈등

2007년 5월 대법원의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은 무효'라는 판결이 이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씨가 2004년 상지대의 정이사 체제 전환을 무효화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김씨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황식 전 총리가 대법관 시절 주심을 맡은 이 판결로 2003년 정이사로 뽑힌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박원순 당시 아름다운재단 이사(현 서울시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9명이 이사직을 잃었다. 2010년 사분위는 '옛 재단 이사 과반 추천권 보장' 기준(이른바 '정상화 심의 원칙')을 앞세워 김문기씨 쪽 여럿을 정이사에 임명했다. 사분위는 임시이사 1명을 선임해 옛 재단 이사 4명과 구성원·교육부 이사 4명 사이에서 '타협'을 종용했다. 김문기씨가 상지대에서 물러난 지 17년 만의 일인데, 이를 계기로 상지대는 '분규 사학'의 오명을 다시 뒤집어쓸 처지에 내몰렸다. 교수협의회·총학생회·직원노조 등 상지대 구성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로 집결해 옛 재단 복귀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김 전 총리는 2010년 총리 청문회에서 '대법원 판결은 옛 재단의 복귀를 허용한 결정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분위와 김문기씨의 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김씨 쪽이 이사회에 자리를 잡은 뒤 상지대 운영은 파행의 연속이다. 익명을 요구한 상지대 이사는 "김문기씨 쪽 이사들은 상지대 비상대책위를 해체하라는 요구부터 들고나왔다"고 말했다. 김씨 쪽은 자기네가 불참하면 이사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사정을 악용해 이사회를 줄곧 흔들었다. 2013년 이사회가 16차례 소집됐는데, 김씨 쪽 이사들은 10차례 불참했고 걸핏하면 중도 퇴장했다. 이 와중에 유재천 총장의 후임 선임, 교수 충원, 예산안 심의 등 안건이 처리되지 못하거나 지연됐다. 한국사학진흥재단 180억원 지원이 확정된 학생 공공기숙사(896명 수용) 신축 계획마저 무산됐다. 기숙사 수용률이 10.6%에 그쳐 외지 출신이 60~70%에 이르는 학생들의 불만이 크다. 윤명식(25) 상지대 총학생회장은 "옛 재단 이사들이 과연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이사들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상지대가 정부 재정 지원 제한이란 '제재'를 받게 된 것도 이사회가 교수 충원 인원을 줄인 탓이 컸다. 차기 총장 선출은 1년 넘게 미궁이다. 예산안은 올해로 3년째 준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문기씨 일가의 비리는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3월 금융위원회는 김문기씨가 은행장이고 큰아들 김성남씨가 부행장이던 강원상호저축은행에 대한 감사를 벌여 경비 부당 지출 등 불법 사례를 적발했다며 3억206만원을 회수 조처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1년 5월 김씨와 성남씨를 여야 국회의원 등 16명에게 불법 정치자금 69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래도 김씨 일가는 상지대 운영권을 다시 장악했다. 상지대 구성원들도 다시 '긴 싸움'을 채비하고 있다. 상지대 학생들은 지난주 학생회 출범식에서 김문기씨의 대학 사유화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상지대 교수 265명 중 대다수가 가입한 교수협의회는 9일 총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상지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최동권 교수(국문학)는 "대학 민주화의 상징이 무너지게 됐다. 구성원들이 20여년 학교를 되살려 키워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며 침통해했다.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이기도 한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는 "사학비리의 전형인 자가 20년 만에 다시 대학에 들어오는 역사의 반동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라고 개탄했다.

지역사회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택시를 운전하는 이홍조(74)씨는 "상지대가 많이 좋아졌고 최근엔 입학 성적도 올라갔다. 다시 혼란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의 메카' 원주에서 신협운동에 힘써온 최정환(72)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은 "돈을 우선시하는 이들에게 교육을 맡기다니,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라고 걱정했다.

1일 저녁 서울 집에 가려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상지대생 오아무개(23·경영2)씨가 이런 말을 했다. "학생 돈에 손을 댄 사람은 학교에서 손 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신아무개(23)씨는 "군대 갔다가 3년 만에 2학년에 복학했는데 문제가 오히려 악화돼 답답하다"며 "김문기 옛 재단이 복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문기씨의 차남인 김길남 새 이사장은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원주/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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