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원과 네모] 삼성화재는 '몰빵배구'가 아니다

조회수 2014. 4. 5. 13: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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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는 다른 단체종목과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특징은 누구든 볼을 한번만 터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독 드리블이 안 됩니다. 토스, 리시브, 스파이크를 혼자 다 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잘 난 스타라고 해도 볼을 연속으로 터치할 수 없습니다. 좋은 공격을 하려면 토스가 좋아야 합니다. 토스가 좋으려면 리시브가 좋아야합니다. 그래서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공격하는 팀은 서브가, 수비하는 팀은 리시브가 팀 플레이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삼성화재가 7년 연속 정상에 올랐습니다. 레오라는 공격수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레오도 좋은 토스와 좋은 리시브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잘 하지 못했을 겁니다. 삼성화재 배구를 '몰빵배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승하는데 가빈 슈미트, 안젤코 추크 등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구는 공격수 혼자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공격수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었다면 세계 3대 공격수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아가메즈를 데려온 현대캐피탈이 우승하거나 우승은 못해도 삼성화재 못지않은 경기력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에 무기력하게 패했습니다.

 삼성화재가 당초 약체라는 예상을 뒤엎고 우승한 것은 수비와 조직, 시스템의 힘이었습니다. 여오현과 석진욱 등 살림꾼 노릇을 하는 선수들이 팀을 떠났지만 그를 메워줄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치용 감독은 이례적으로 시즌 도중 트레이드를 감행했고 그게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신 감독은 그동안 팀워크 유지와 선수들의 충성도 제고를 위해서 시즌 도중 트레이드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신 감독이 시즌 도중 트레이드를 감행하는 변화는 리더로서 모든 걸 책임지고 내려야 할 결단이었습니다. 실패할 것을 의식해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 감독은 변화를 실행하는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들을 어떻게 빨리 적응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일단 시작은 훈련이었습니다. 삼성화재 훈련장에는 '겸손한 병사는 분명이 이긴다(謙兵必勝)'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信汗不亂)'는 문구는 걸려 있습니다. 삼성화재가 약체라는 것을 의식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많은 땀을 흘리면 분명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우승으로 보여준 셈이죠.

 신 감독은 새로운 선수들을 조련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아마추어 배구 하냐" "그렇게 하려면 그만둬라"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건 물론 선수들과의 밀당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할 수 있도록 마음에 불을 지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 (Alfred N. Whitehead)는 "가장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 마음에 불을 댕기는 교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영감을, 비전을 던져주고 그걸 학생이 마음 속 깊이 인식한다면 그 학생은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그게 바로 신감독의 노림수였습니다.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비판으로, 때로는 당근으로, 때로는 채찍으로 선수들을 다뤘습니다. 그게 형식은 '밀당'이었지만 목적은 오직 하나, 선수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강한 몰입력을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신 감독은 몇해 전 우승한 뒤 "배구는 감독이 하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신 감독이 배구 감독을 "기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선수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 감독이 해야 할 모습을 보여준 대목입니다.

 근본적으로 배구는 몸을 던져 볼을 살려내는 종목입니다.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볼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이 볼을 살리기 위해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배구 선수들이 몸을 던져 볼을 살리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 바로 다음에 볼을 터치할 선수를 위한 것입니다.자신이 어떻게 해든 볼을 잘 올려주면 동료가 그만큼 편안하게 볼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리시브나 디그를 해주는 선수는 세터에게 가능한 한 좋은 볼을 올려주기 위해서 몸을 던집니다. 세터도 가능한 한 상대 블로킹을 피해 동료 공격수에게 조금 더 성공확률이 높은 찬스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몸을 던집니다. 수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로킹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 동료들이 강한 스파이크를 받아내기 힘듭니다. 자신이 힘들다고 블로킹을 게을리 한다면 그 영향은 뒤에 있는 동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결국 실점할 가능성은 무척 높아집니다. 공격에서든 수비에서는 배구에서는 조직력이 처음인 동시에 끝입니다. 그래서 배구는 다른 단체종목보다도 조직과 시스템, 배려, 희생이 더 중요한지 모릅니다. 한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리그에서 우승하는 것도 이런 '배구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선수들이 자기를 희생하면서 자기 몫을 실수 없이 확실히 수행함으로써 다음에 볼을 터치할 동료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그게 바로 배구의 처음이자 끝입니다.게다가 배구는 모든 게 찰나의 순간에 이뤄집니다. 팀워크가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내가 조금 안일해진다면, 내가 조금 꾀를 부린다면 승부는 그대로 끝장이 나고 맙니다.

 삼성화재가 우승하는데 레오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레오가 지금처럼 잘 할 수 있도록 만든 수비, 시스템, 조직력, 단결력, 팀워크,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삼성화재는 정상에 다시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성화재 배구의 키워드는 '몰빵배구'가 아니라 '시스템 배구'이며 레오 혼자 여섯 걸음을 떼는 게 아니라 6명이 한걸음씩 나눠서 떼는 배구입니다.

 물론 정상에 한번 오른 것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더 대단한 것은 정상을 지켜내는 겁니다. 그리고 수성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날 때마나 그 팀은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삼성화재는 정말 위대한 팀입니다. 그리고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걸 일궈낸 신치용 감독은 정말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멤버가 바뀌어도, 환경이 달라져도, 극복해야할 숙제가 많아져도 삼성화재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제갈공명 신치용 감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치용의 리더십과 그걸 기꺼이 따르려는 팔로워십이 하나로 융합된 게 바로 삼성화재 선수단입니다. 그게 바로 삼성화재가 두려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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