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래 볼수록 곱다, 탐라의 춘사월

제주 | 글·사진 임소정 기자 2014. 4. 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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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 느리게 누리는 제주

"어디 감수과? 택시 탕 갑서(어디 가십니까? 택시 타고 가세요)."

때는 바야흐로 2000년 봄, 관광지 입구는 택시투어 기사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여자 셋이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지나쳤다. 운전면허증도 없고 돈도 별로 없는 그들이 믿은 건 무엇이었을까. 다음 보기 중에 골라보자.

섭지코지에 자리잡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지니어스로사이' 너머로 성산 일출봉과 유채꽃이 보인다. 성산일출봉은 동일주 700번 버스로 접근 가능하며, 섭지코지는 성산이나 오조에서 콜택시를 부르는 게 낫다.

1) 샬랄라 원피스

2) 문화센터 메이크업 수업 때 구비한 화장품 세트

3) 가방 속 캔맥주

4) 구간별 버스시간표

그랬다. 버스시간표가 그들을 구원했다. 샬랄라 원피스를 입고 어두운 민박집 방에서 본의 아니게 경극 배우로 변신한 3인조는 중문, 서귀포, 산굼부리와 성산을 거쳐 우도와 만장굴을 돌아봤다. 오직 버스와 두 발로.

제주는 그 후 많이 변했다. 감귤밭 옆구리에 펜션들이 들어섰고 비행기·숙소·렌터카 3종 세트가 기본이 됐다. 박물관과 테마파크도 넘쳐난다. 어디고 갈 수 있지만, 어딘가는 늘 바쁘게 지나치게 됐다. 하지만 올레길과 함께 느린 여행도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렌터카를 잠시 멈춰두고 걷고 버스를 타고 와서 걷는다.

대중교통과 도보여행을 결합한 뚜벅이 여행은 제주를 조금은 느리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올레길을 걷기 위한 목적이건, 그저 관광을 원하건 좋다. 장롱면허족과 나홀로 여행자에게는 더더욱 안성맞춤이다. 유채와 벚꽃이 한껏 꽃망울을 터뜨린 4월의 제주는 지금 찬란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 박자 천천히 제주를 만끽할 수 있는 뚜벅이 여행 팁들을 정리해 봤다.

■ 저 이번에 내려요

만약 첫 목적지가 중문관광단지 인근이라면 공항버스(600번)를 타는 게 가장 편안한 선택이다. 그 외 올레길 코스 주변이나 해안 근처 관광지로 간다면, 일주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일단 공항에서 100번 시내버스나 택시로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동일주 700번이나 서일주 700번 시외버스를 탄다.

아름다운 물빛을 자랑하는 함덕과 세화, 커피향이 넘실대는 월정리, 일출 명소 성산 일출봉 등을 지나 서귀포까지는 동일주 노선이다. 성산 일출봉이나 우도로 가는 길에는 '오조' 경유가 아닌 '성산' 경유라고 적힌 버스를 타야 한다. 비양도를 앞에 두고 비취색 바다가 펼쳐지는 협재, 거대한 시간의 힘을 볼 수 있는 용머리해안은 서일주 버스로 간다. 일주버스는 배차 간격이 20분이라서 시간표를 미리 체크하지 않아도 된다. 거리별로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버스카드를 단말기에 찍기 전에 행선지를 말해야 한다.

해안 일주도로 외에 번영로, 남조로, 5·16도로, 평화로 등을 지나는 버스들이 제주에서 성산(710번), 표선(720번), 남원(730번), 서귀포(780번), 중문(740번), 모슬포(755번)를 잇는다. 시외버스 외에 읍·면 순환버스는 간격이 뜸하다. 주요 관광지로 가는 버스는 제주버스정보시스템(bus.jeju.go.kr)을 참조하면 된다.

■ 이 길 끝에 뭐가 있을까요

올레길은 제주 해안선을 둘러싼 21개 코스와 우도 등 섬을 포함한 5개의 추가 코스로 구성돼 있다. 올레길은 평균 4~5시간 걸리는 코스가 많은데, 언덕길 등 험한 길을 포함하는 경우는 6~7시간까지도 걸린다.

첫 도전이라면 서귀포 근처라 볼거리가 많고 코스도 길지 않은 6코스(쇠소깍~외돌개)나 조금 힘든 구간도 있지만 풍광이 좋은 7코스(외돌개~월평)를 추천한다. 제주올레사무국 홈페이지의 맞춤 올레 코너(www.jejuolle.org/?mid=69)나 제주올레 스마트폰 앱에서 계절, 날씨, 지형, 볼거리 등에 따라 내가 원하는 올레 코스를 고를 수 있다. 이달 중 1코스를 걷는다면 사진가, 화가, 조각가 등이 주변 마을에서 펼치는 예술 프로젝트 '룰루랄라~제주올레'도 둘러볼 만하다.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 주변의 독특한 지형과 주변 마을을 지나는 지질트레일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용머리 해안 앞을 포함해 형제섬, 송악상, 하모리층 등을 볼 수 있는 14.5㎞ 코스와 화순 곶자왈과 금모래 해변을 포함한 15.6㎞ 코스 등 2개의 코스로 단장해 5일 개장 행사를 갖는다.

■ 오름에 오르고 싶어요

버스 노선에서 벗어나 있는 구석구석의 볼거리를 보려면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오름에 오르려면 더 편안한 방법도 있다. 게스트하우스나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오름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오름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기생화산으로 봉우리나 평평한 언덕, 분화구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제주에서 한라산을 제외한 산이나 언덕은 죄다 오름이라고 보면 된다. 총 368개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은 중산간 지역에 흩어져 있다. 이 중 200개 이상이 동부에 자리하고 있어 오름투어를 하는 숙소도 동부 지역에 많다. 동부 오름 중 가장 높은 다랑쉬오름, 고 김영갑 사진작가 작품 속 풍경으로 유명한 용눈이오름, 백가지 약초가 난다는 백약이오름 등 이름난 오름들을 편하게 돌아볼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마다 특색이 있어 낮시간 투어 외에 일출을 보는 곳도 있고, 석양이나 별을 보는 경우도 있다. 오름 이름의 유래와 주변 지형, 주변에 자생하는 식물과 야생동물의 흔적까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오름투어를 운영하는 숙소 대부분은 따로 추가 비용 없이 교통과 투어를 제공하고, 오름 정상에서 즐기는 음료값 정도를 받는 경우가 있다.

■ 짐가방이 정말 짐 돼요

뚜벅이 여행의 경우 가방은 큰 걸림돌이 된다. 코스에 맞게 숙소를 매일 바꾸려면 여행 짐보따리를 모두 등에 지고 이동해야 하므로 피로가 가중된다. 그렇다고 숙소에 짐을 놓고 오면 콜택시를 이용해 다시 그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올레길을 한두 코스 걷는 정도라면 셔틀이 있는 숙소를 고르면 편하다. 게스트하우스 중 셔틀 서비스를 운영 중인 곳이 꽤 되는데, 올레길 끝에서 숙소로 돌아가고 다음날 다른 코스 시작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 주로 숙소 주변 코스들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이동구간을 크게 잡았다면 짐만 다음 숙소로 오게 하는 방법도 있다. '올레 옮김이'라는 이름의 서비스로, 숙소에서 숙소까지 짐을 옮겨 주기 때문에 가볍게 돌아다닐 수 있다. 공항과 숙소 간의 짐 이동도 가능하기 때문에 첫날과 마지막날 짐 때문에 버리는 시간을 아껴 알뜰하게 놀 수 있다. 공항에서 시계 방향으로 하루 한 바퀴를 도는 '올레옮김이'(010-2699-1892)가 원조이며, 시계·반시계 방향 가리지 않는 '보물섬'(010-4582-8240)도 있다.

해비치 호텔

■ 계획 없이 푹 쉬고 싶어요

게스트하우스들은 시설과 규칙이 다양하다. 조용히 혼자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떠들썩하게 서로 어울리는 분위기인 곳도 있다. 본인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 며칠 묵으면서 동네 산책을 하고 바다를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숙박시설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곳도 많아 향기로운 커피맛도 즐길 수 있다.

이보다는 훨씬 돈이 들지만 휴양과 관광, 운동, 특별식단이 포함된 프로그램도 있다. 해비치 호텔의 LFS(Life Fitness Styling) 패키지에는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동부오름, 곶자왈, 사려니 숲길, 우도 올레 등을 돌아보는 투어와 몸의 뻣뻣한 근육은 풀고 약한 곳은 강화시키는 피지컬 리뉴얼, 음악과 함께 근력을 키우는 타바타 부트 캠프 등 운동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지역 특산재료로 만드는 건강식과 초록색 에너지 음료로 몸속을 정화하고, 전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3가지 스파 마사지도 경험할 수 있다. 최소 2박3일부터 길게는 6박7일까지 선택할 수 있으며 휴양과 관광에 건강까지 챙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션뷰 객실 2박3일 기준으로 1인 73만7000원, 2인 111만1000원(세금, 봉사료 별도)이다. 문의는 (064)780-8000

제주를 찾는 어린이들에게 항공기술과 우주의 신비에 대한 배움과 체험을 제공할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 오는 24일 문을 연다. 1층 항공역사관과 정원에는 대한민국 공군 등에서 사용하던 실제 항공기 35대가 전시돼 있다. 비행기의 엔진 속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옆면을 분해한 항공기도 눈길을 끈다. 미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제휴한 비행원리(How Things Fly)관이 자랑거리다. 48가지 비행원리 체험을 통해 어린이들이 과학원리와 항공기술의 만남을 직접 체득할 수 있다. 직접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 날개를 움직여 보는 재미도 있다. 천문학과 우주개발의 역사를 조명하는 천문우주관에서는 360도 대형 스크린을 갖춘 5D영상관이 특별한 볼거리다. 특수안경을 쓰고 우주여행과 관련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 각종 특수효과가 더해져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우주여권을 만들어 우주여행을 떠나는 시뮬레이션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 제주 | 글·사진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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