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축구도 '정치'와 '권력'을 재혼시켜야 한다.

조회수 2014. 3. 29. 23: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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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영국 리즈대학교 명예교수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바우만 교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단순화해 말하면 최고 권력의 공백 기간 속에서 살고 있는 인터레그넘(interregnum)"이라고 정의했다. 바우만 교수는 "두 명의 왕 사이에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왕이 서거했다, 새 왕 만세다. 옛 왕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죽었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인터레그넘(궐위)"이라고 설명했다. 바우만 교수는 이어 "옛 방식이 매우 빨리 노화하고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데 새로운 활동은 그 방법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태"라며 "우리는 무엇이 안 좋은지 알고 그것을 제거하고 싶은데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비전이 명확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바우만 교수가 인터레그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근거없는 위기론을 극도로 경계했다. 바우만 교수는 "매우 엄청난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결과를 예견할 수는 없다"면서 "거기에서 바로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바우만 교수는 "사람들은 이 느낌을 '파멸', '거대한 혼동', '우리를 위협하는 쓰나미'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라면서 "대신 현재 일어나는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 해석하고 답을 제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우만 교수는 대표작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에서 유동하는 사회의 문화는 '유행의 시대'로 규정했다. 문화는 이미 소비시장의 지배 하에 있으며 유행에 종속된 현대인들은 소비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온 인류가 공유하는 똑같은 문화는 결국 초국적 자본이 최대한으로 이윤을 많이 얻기 위한 상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바우만 교수는 이런 혼동의 원인을 정치와 권력의 이혼으로 해석했다. 바우만 교수는 "세계화는 모든 곳에서 작동되고 있다. 결국 밖에서 온 원인 때문에 지역과 개인이 고통을 떠안게 된다"면서 "이 모든 현상 뒤에는 '권력과 정치의 이혼'이 있다"고 말했다. 바우만 교수는 "권력은 일이 되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했고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권력과 정치가 따로 작용하기 때문에 세계가 급속도로 세계화되는 과정 속에서 지역과 개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바우만 교수는 이런 혼동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치와 권력의 재혼을 제시했다. 바우만 교수는 "우리에겐 정치적인 조절로부터 벗어난 권력과 권력의 부족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통 받는 정치가 있다"면서 "정부는 좋은 의도로 유권자 요구를 시행하려고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 그리고 만약에 실행하려 한다면, 증권시장의 반격으로 즉시 무기력해질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바우만 교수는 "이 시점에서는 권력과 정치 둘 다 작동될 조건을 만드는 게 필수"라면서 "권력과 정치를 재혼시키지 않으면 시스템을 바꿔내겠다는 꿈은 무참히 깨져버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바우만 교수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 중심으로 상호의존적인 의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우만 교수는 "경쟁보다 협력이 필요한데 국가는 협력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위가 시 정부가 돼야 한다. 지구상의 인구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고 개발도상국은 70%가 넘는다"고 말했다. 바우만 교수는 "국가라는 단위는 복잡한 관료 체계를 유지하면서 소통의 네트워크가 이웃 단위 감성까지 끌어안을 수 없는 추상적인 체제인데 비해 도시는 지역공동체를 수용하는 소통을 하며 통합해 나가는 체제"라면서 "이는 유토피아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우만 교수는 "대안은 어딘가에서 여러분이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우만 교수의 철학은 국내프로축구계가 처한 상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국내프로축구는 과거 운영방식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걸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제거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러나 그런 당위론만 있을 뿐 어느 방향으로, 어떤 식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대한 뚜렷한 대안은 보이지 않고 있다.

 위기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각 모기업과 지자체는 재정을 줄이고 있다. 시도민구단들이 2부로 떨어지면서 규모가 적어진 것은 물론 생존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됐다. 선수들 몸값은 점점 올라가는데 모기업, 지자체 주머니 이외 수익원은 보이지 않는다. 구단마다 적자가 쌓여갔고 시도민구단들은 대부분 자본잠식 상태다. 관중은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다. 스포츠 전문 TV 중계도 야구에 밀린지 오래다. 현재 있는 스폰서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새로운 스폰서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기업도, 지자체도 여러 모로 프로축구를 외면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유럽챔피언스리그 등은 축구 세계화 속에 만들어진 일류 제품들이다. 이것들은 이미 소비시장의 지배 하에 있으며 그걸 잘 알고 그걸 소비해야 마치 글로벌 축구팬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축구와 축구산업은 이미 세계화됐고 유럽축구는 글로벌 히트상품이 됐다.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많은 축구팬들이 공유하는 유럽축구는 결국 각 국가가 최대한으로 이윤을 많이 얻기 위한 세계 시장에 내놓은 매력적인 상품일 뿐이다. 그게 엄청난 파괴력과 가공할만한 위력으로 한국프로축구를 고공폭격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한국프로축구가 고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위기론은 없는 걸 만들어낸 게 아니다. 그러나 바우만 교수의 말처럼 위기론을 떠벌린다고 해서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론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바우만 교수의 말처럼 프로축구가 이처럼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정치와 권력의 이혼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한국축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은 정치이며 그런 일들이 되게 하는 능력은 권력이다. 그런데 지금 프로축구과 프로축구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정치와 권력이 분리된 상태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단들은 나름대로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걸 추진하려 하고 있지만 그게 현실에서는 좀처럼 먹히지 않고 있다. 경제권력은 이미 야구에, 해외축구에 넘겨졌다. 축구계 주된 여론의 흐름도 해외 축구쪽으로 넘어갔다. 아마추어 축구계는 대한축구협회가 내놓은 쇄신책에 대해 비현실적이며 이상적인 방안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심판 쇄신책은 아무리 내놓아도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국내프로축구가 위축되면서 한국의 정상급 스타들은 돈이 넘치는 중국, 중동으로 떠나고 있다. 10대 어린 유망주마저 스페인 등 유럽국가로 빼앗기는 형국이 됐다. 아무리 좋은 정치를 하려고 해도,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시행하려고 해도 경제권력, 정치권력, 출신학교별 파벌, 조직 및 개인 이기주의, 갑의 횡포 등 권력의 힘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바우만 교수의 말처럼 권력과 정치를 재혼시켜야지만 프로축구계의 살길이 보일지 모른다.

 바우만 교수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가 중심이 돼야한다고 역설했다. 그건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소통 네트워크가 이웃단위감성까지 끌어안을 수 있으며 도시가 지역공동체를 수용하는 소통을 하면서 통합해나가는 체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프로축구계에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도시는 프로축구라고 볼 수 있다. 프로축구가 효과적인 대안을 발굴하고 그걸 시행함으로써 되살아난다면, 사람들이 몰릴 것이며 소통도 더 많이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프로축구 구단들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나름대로 존재가치를 가지고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면 한국프로축구에도 밝은 미래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 교수는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또한 국내프로축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위기 속에서 잘 버티면 좋은 날이 오겠지' '모기업이나 지자체가 어떻게 해서는 축구단을 유지시켜주겠지'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고 탈출구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는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일부 구단들은 지금 그걸 하고 있다. 포항 스틸러스는, 논란이 있긴 있지만, 쇄국정책이라는 대안을 꺼내들었다. FC 서울은 선수단 몸값을 줄인 돈으로 팬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전북 현대는 적잖은 투자와 선수들의 효과적인 매매를 통해 컴팩트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선수단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수원 삼성은 모기업이 주머니가 두둑한 삼성전자에서 그보다 훨씬 못한 광고 기획사로 바뀐 뒤 혼란과 혼동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딜레마 속에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다. 시도민 구단들은 확 줄어든 재정, 자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뚜렷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각 구단마다, 구단 성격에 따라, 구단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뭔가 이전과 다른 것을 시도해야만 살 수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됐고 그걸 마련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다. 단기간에 국내프로축구를 회생시킬 수 있는 묘안은 없다. 지금 국내프로축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패배의식, 집단무기력증에서 벗어나 노력에 노력을 더 하는 것뿐이다. 그런 노력이 쌓이고 그게 하나로 뭉쳐진다면, 국내프로축구에도 밝은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프로축구, 앞으로 죽을 만큼 노력해보고 죽지 않을 만큼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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