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원과 네모] 실업 운동부가 오래 살 수 있는 길

조회수 2014. 3. 25. 09: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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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탁구단이 해체 수준을 밟고 있다. 탁구단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결국 3월중 없어질 위기에 몰렸다. 10년 넘게 탁구단을 운영해온 농심, 탁구단을 만든 제주도개발공사 등 모두 탁구단 운영에 등을 돌렸다. 모두 폭탄돌리기를 하는 꼴이다.

실업 운동부가 없어지는 것은 다반사가 됐다. 실업 운동부는 프로스포츠 인기에 밀리고 있다. 전국체전에서 거둔 성적만으로 운동부를 운영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운영주체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게 국제대회 성적이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는 선수는 소수다. 냉정하게 말하면 수억 원 또는 수십 억 원을 대고 운동부를 운영하는 모기업 또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사회적인 환원 차원을 고려하기보다는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다.

실업 운동부가 없어질 때마다 엇비슷한 탄성이 나온다. "평생 운동만 해온 선수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그 종목 어린 유망주의 희망과 꿈이 사라졌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다"는 식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감성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된다. 미봉책이 나와 잠시 연명할 수 있을 뿐이다. 또 다시 얼마 시간이 지나면 해체 이야기가 불거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때는 이제는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일쑤다. 그리고 그 사이 이미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 있는 선수들은 떠난다. 이도저도 갈 데가 없는 그저 그런 선수들만 남아서 마지막 운명을 겪게 된다.

과연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게 비인기 종목의 설움 때문만 일까. 이런 문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나 둘씩 없어져가고 선거 때만 되면 하나 둘씩 생기는 실업팀 운동부를 어떻게 운영해야 단체장이 바뀌든, 모기업이 바뀌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마 방법은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법률적인 뒷받침도 필요하고 운영주체의 마인드 전환도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운동부 스스로 달라져야하는 게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실업 운동부는 정말 운동만 했다. 겉으로는 실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프로에 가까웠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운동만 했다. 물론 운동이라는 특성상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의 양적 개념으로만 따진다면 운동하지 않는 시간이 운동하는 시간보다 많았다. 물론 종목별로, 지자체별로, 모기업별로 편차가 있지만 연봉도 먹고 살기 힘들만큼 낮다고는 볼 수 없었다. 운동만 한다는 것은 결국 성적으로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운동만 하는 것은 운동을 취미로 하는 것과 같으며 성과 없이 월급만 받아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는 국내외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 소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다수 선수들은 눈칫밥을 먹으면서 언젠가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렇다면 성적만 내면 된다는 식으로 운동부를 운영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식은 될 수 없다.

기자는 운동부가 선수들만 훈련해온 코트와 경기장을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물론 아니다. 운동을 한 뒤에는 모기업 직원, 지자체 주민에게 다가가 자신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적잖은 연봉을 받고 하루 한 두 번 운동하는 실업팀의 존재감은 약할 수밖에 없다. 운동을 마친 뒤 모기업 직원들과 지자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실업팀, 그들과 함께 사회적인 관계를 조성하면서 사회 속에서 존재 의미를 발굴하는 실업팀이 필요하다. 모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호회에 강사로 나가도 좋다. 지자체 시설에서 운영되는 운동부에 나서 함께 운동을 해도 좋다. 이런 일들은 선수단만 마음을 먹으면 거의 모든 종목에서 가능한 일이다. 양궁 등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고 일정한 인프라가 구축된 환경이 필요한 종목이라면, 모기업 직원들과 지자체 주민들을 초청하는 클리닉이나 강습회, 동호인 모임을 개최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운동부는 따로 동떨어져서 운동만 하면서 대중적인 무관심 속에 묻혀 있는 '사회 속에서 죽은' 조직에서 주위 사람들과 주위 사회 속에 들어가 함께 얽혀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모기업, 지자체도 함부로 실업 운동부를 해체하지 못할 것이다.

실업 운동부가 이처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리하려면 무엇보다 감독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운동만 하는 운동부로서는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체감한 뒤 선수들을 자꾸 운동장 밖으로, 코트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성적에 따라 감독의 운명도 달라진다고 해서 오직 운동에만 매달리는 것은 현재 있는 선수들을 담보로 한 단기간적인 무모한 모험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한 두 번 좋은 성적을 내면 좋겠지만 매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나쁘면 또 다시 위기론이 제기될 게 뻔하다. 즉, 성적에 얽매여서 운동부를 운영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운동부를 이끌어야하는 게 진정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감독 혼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감독은 모기업과 지자체와 적극적이면서도 꾸준하게 협의를 해야 하고 모기업, 지자체도 공감대를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실업 운동부가 사라지고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 때마다 푸념처럼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운운하거나 창단한 주체에 대한 과도한 칭찬을 쏟아내는 것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실업 운동부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끝까지 생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걸 먼저 주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모기업 직원, 지자체 주민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실업 운동부. 그게 모기업이 누가 되든, 지자체장이 누가 되든, 법이 어떻게 바뀌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실업 운동부가 사회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에 공헌하는 중요한 조직으로 오래 오래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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