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원과 네모] 모태범, 이승훈의 4위가 대단한 이유

조회수 2014. 3. 13. 19: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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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수가 엄청난 업적을 이뤘을 때, 어떤 팀이 대단한 성적을 냈을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유전적인 원인을 운운합니다. "타고난 실력을 가졌다" "승리 DNA가 있다" "부모로부터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천부적인 기량이다" "천재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유전적인 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유전적인 게 결정적인 원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성과를 낸 비결을 선천적인 것으로 돌린다면 그건 과정에서 쏟아내는 땀과 노력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천부적인 것보다는 노력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일을 할 때도,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후배들을 독려할 때도, 학생들을 칭찬할 때도 그래서 재능보다는 노력이 강조돼야 한다고 봅니다.

 소치올림픽에서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을 챙긴 바이애슬론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40·노르웨이)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비에른달렌은 "내가 40세라는 것을 잊고 뛴다"면서 "안 좋을 때도 있지만 매일 훈련에 전념한 결과 오늘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비에른달렌는 부모님 이야기도, 유전자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40세가 돼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거듭된 훈련이었습니다.

  노력은 자신과 환경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게을러지기 쉬운, 자족하기 쉬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안일해지기 쉬운 자신을 이겨내는 게 바로 노력입니다. 자신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어떤 성과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한 번 일궈낸 성과를 다시 한 번 낸다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화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은 타고난 것으로 딴 것이었다면 소치올림픽 금메달은 거기에 노력이 더해지면서 기술적으로 발전한 덕분에 획득했다"고 말했습니다. 선천적인 것에 의존한 4년 전 금메달보다 노력이 더해지면서 따낸 금메달이 더 값졌습니다. 물론 기록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했고요.

 환경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네덜란드는 지면의 4분의 3이 해수면보다 낮아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탈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접했고 어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각종 대회에 출전함으로써 경쟁의식을 가졌고 그게 두터운 선수층과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환경의 덕을 보지 못합니다. 환경이 좋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면 골프는 한국이 아닌 미국, 호주 선수가 훨씬 잘 쳐야합니다. 그러나 여자골프는 한국 선수들이 최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챔피언은 좋은 체육관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뜨거운 열정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즉, 열정과 노력이 없다면 좋은 환경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죠. 환경이 좋으면 성공하는데 유리하지만 환경을 이용하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더 노력할 때 성공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자메이카 선수들은 단거리 달리기를 참 잘 합니다. 유전학적 연구에 따르면 단거리를 잘 뛸 수 있는 액티넨 A는 유전자가 자메이카 선수들에게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결코 전부는 아닙니다. 액티넨 A는 자메이카 사람들의 90% 이상에 존재하지만 유럽 사람들 중에서도 80% 이상이 액티넨 A를 갖고 있습니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액티넨 A 때문에 잘 뛴다면 자메이카 사람들보다 훨씬 수적으로 많은 유럽 선수들도 잘 뛰어야 합니다. 자메이카는 어릴 때부터 육상을 즐겨합니다. 그리고 연령대별 육상대회가 많이 열립니다. 육상을 잘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대회가 열릴 때마다 미국, 유럽 등 각국 스카우트들이 와서 유망주를 살펴보고 좋은 선수를 발견하면 그를 스카우트합니다. 즉, 환경적으로 육상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육상을 잘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수많은 단거리 육상 스타들을 길러낸 겁니다. 육상이 홀대받고 육상을 하는 어린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결과입니다.

 환경이 중요하고 그걸 이용하거나 그걸 극복하려는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난해 베를린 마라톤에서도 다시 한 번 입증됐습니다. 그 대회에서 1위부터 3위를 같은 나라 선수들이 차지했습니다. 바로 케냐 선수들이었습니다. 케냐 선수들이 왜 장거리를 잘 뛸까요? 흑인이기 때문일까요? 그게 맞는 말이라면 아프리카 다른 국가의 모든 흑인 선수들이 잘 뛰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케냐 선수들의 몸에는 장거리를 잘 달릴 수 있는 유전자라도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케냐 선수들이 장거리에서 강한 이유는 바로 자연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 케냐 지역별 달리기 선수 배출 분포도 > 출저:베스트 플레이어

 미국 대학교 육상 코치 출신인 프레드 하디는 케냐 지역에서 장거리 선수들이 많이 태어난 곳을 주목했습니다. 그는 "엘도레트라는 지역 반경 96.5km에서 케냐 최고의 달리기 선수 중 90%가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엘도레트 지역 인근에서 가장 주목받은 곳은 '난디(NANDI)'라는 곳입니다. 엘도레트와 난디 모두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입니다. 어떤 학자는 "케냐 인구 중 불과 1.8%를 차지하는 아주 작은 지역인 난디에서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케냐 달리기 선수 대부분은 이처럼 엘도레트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주한 케냐 대사관 직원도 "케냐에는 리프트 밸리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는 KEIYO, NANDI, TRANSNZOID라는 3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집중적으로 장거리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은 대부분 고지대입니다. 산소가 부족합니다. 그곳에서 뛰면 심폐지구력이 강해집니다. 거기에 사회적 환경도 한몫했습니다. 그곳에는 버스도, 차도 거의 없습니다. 케냐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최소 8km는 뛰어야 합니다. 즉, 어릴 때부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먼 거리를 뛰어다닌 게 지금 케냐가 장거리 육상 강국이 된 비결입니다.

 환경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좋은 환경이 조성돼 있고 그런 환경에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나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노력이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자만하지 않고 환경을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노력,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수많은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몇 배 더 쏟아 부은 땀, 마지막으로 환경적으로 부족할 수도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통해서라도 꼭 메우려는 노력, 그런 노력들이 한데로 뭉쳐야만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사방이 스케이트장인 네덜란드, 사방에 축구장이 널려 있는 브라질,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 노르웨이, 고산지역이 많은 케냐에서 수많은 훌륭한 선수들이 배출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소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선전했습니다. 그 중에 기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의미 있고 대단한 성과 중 하나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 4위 모태범과 1만m 4위 이승훈입니다. 환경적으로,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된 네덜란드 선수들이 금은동을 모두 휩쓸었고 그 다음으로 잘한 게 우리 선수들입니다. 한국은 환경도 좋지 않고 신체적으로도 네덜란드보다 작고 스피드스케이팅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척 열악합니다. 이런 나라에서 네덜란드 다음으로 잘 한 선수가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의미죠. 순위는 네덜란드 선수들보다는 낮았지만 노력은 더 했을 겁니다. 환경 탓, 사회 탓, 문화 탓, 체구 탓 하지 않고 많은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엄청났을 겁니다.

성공하는 데는 재능, 환경, 배경보다 자세, 노력, 열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단 스포츠에서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최고의 선수, 최고의 인물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와 '아무나'를 구분하는 요인은 바로 노력입니다. 우리도 노력하면 누구나 최고 선수, 최고 인물이 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노력하는 삶, 그건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성공한 삶입니다. 그리고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성공은, 굳이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겁니다. 충실한 과정이 없다면 성공은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할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 속에서든 열심히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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