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비냐" 사단장 한마디에..법무관, '폭행 중령' 입건못해

2014. 3. 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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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별 셋 장성이 피의자에 '진술 말라' 압박…법무관은 속수무책

군판사 맡자마자 첫 주에 구속영장 청구가 들어왔다. 피의자가 전역이 얼마 남지 않고 도주의 우려가 없었다. 사안도 경미했다. 불구속하려고 했는데 지휘관을 보좌하는 법무참모가 '구속이면 기소유예하고, 불구속이면 기소하겠다'고 해서 구속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전역한 이아무개 변호사는 군법무관을 지낼 때 지휘관과 법무참모의 재판 관여를 번번이 받았다. 가벼운 사안이지만 군기 확립을 위해 우선 구속을 한 뒤 기소유예 처리하겠다는 지휘관의 의지 앞에 군판사는 법적인 판단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가는 피의자가 기소돼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피의자는 결국 기소유예됐다.

최근 <한겨레> 기자와 만난 전·현직 군법무관 13명은 한결같이 '지휘관과의 상하관계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재판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은 군 사법체계에서 입건부터 판결까지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갖는다. 수사 보고, 구속 여부 결재, 재판장·재판관 지정, 판결 확인과 감경 등이다. 행정기관이 사법기관을 통제하는 셈이다.

2012년 전역한 김아무개 변호사는 지휘관이 허락하지 않으면 입건부터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군검찰에서 일할 때 가혹행위를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령을 입건조차 못한 경험을 털어놨다. "가혹행위를 한 육사 출신 중령을 입건하겠다고 했더니, 사단장이 툭 까놓고 입건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후배들을 보호하는 것이 본인의 체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군인들끼리 서로 봐주면서 결속력을 높여가는 거죠. 지휘관이 총애하는 사람 입건하겠다고 서류 들이밀면 지휘관이 '나한테 덤비냐'고 생각하는 거예요."

군 사법체계에선 소속 부대 지휘관이 사실상 검찰총장의 역할을 맡는다. 국방부 검찰단이 있지만 일선 부대의 군검찰을 직접 통제·지휘하진 않는다. 사법의 본질은 '독립'된 권력이라는 데 있지만, 지휘관이 관리·감독하는 군 사법은 사실상 행정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간부들이 연루된 사건의 정식재판을 막는 지휘관도 있다. 기무부대 간부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도주한 사건인데도 군검찰은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군판사를 지내고 지난해 전역한 이아무개 변호사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하고 나서, 반대하는 지휘관과 갈등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재판부가 정식재판을 열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지만 지휘관은 400만원으로 벌금을 줄였다. 이 변호사는 "지휘관이 아는 간부들 위주로 감경을 해줘서 형평성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국군 사이버사령부 소속 4명이 개인적 일탈로 인터넷에 정치적 댓글을 달았을 뿐 상부 지시는 없었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군 사이버사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를 벌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아닌, 국방부 대변인실이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2011년 전역한 김아무개 변호사는 이 장면을 보고 실소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수사 결과를 국방부 대변인이 발표한다는 건 수사받는 군인들이 소속된 국방부 장관이 수사 내용을 이미 다 알았다는 거죠.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합니다."

행정이 사법 통제사단장급 이상 지휘관구속여부 결재, 재판장 지정 등입건부터 판결까지 권한 무제한보이지 않는 외압기무·헌병 연루땐 입건 더 어려워법무관들 권력 눈치 봐야

이처럼 지휘관에게 과도한 권한이 주어져 있을 뿐 아니라, 계급이 법보다 앞서는 군대 문화가 만연한 탓에 군 사법체계는 더욱 왜곡된다. 국방부 보통검찰부장을 지낸 남성원 변호사는 2004년 장성 진급 비리 수사 당시 '보이지 않는 외압'을 받았다. 국방부 검찰단은 육군 장성 진급 인사에서 대규모 비리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건군 이래 최초로 육군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장성 진급 비리 수사 때 별 세개 장성이 수사중인 피의자에게 전화해서 진술하지 말라고 지시한 적이 있어요. 피의자는 말을 하려다가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장성의 전화를 안 바꿔줄 수도 없었죠." 당시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수사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역 지원서를 냈지만 반려됐다.

특히 기무·헌병 등 '힘있는' 부대가 연루된 사건은 공정하게 수사하기가 어렵다. 기무와 헌병의 계급과 정보력이 군검찰보다 앞서고, 지휘관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9년 전역한 군법무관 출신의 이아무개 변호사는 50만원 뇌물을 받은 헌병을 기소하려다 법무참모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법무참모가 기소유예를 원했지만 결국 제가 기소는 했어요. 금액을 떠나 헌병이 뇌물 수수를 하는 건 사안이 심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재판에선 선고유예로 끝났습니다."

인사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군법무관은 일정 시기마다 군검찰, 군판사, 법무참모로 보직 순환을 한다. 판검사의 등용문이 처음부터 구분되는 일반 사법제도와 다르다. 일반 사법체계에서는 판사와 검사가 긴장관계에 있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군판사와 군검찰은 다르다. 지난해 가혹행위 혐의로 구속된 병사 장아무개(23)씨는 "영장을 청구하는 검사와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판사가 구속 당시 똑같은 말을 해서 놀랐다. 마치 한 사람이 영장을 청구하고 발부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참여정부 시절 장성급이 연루된 대형 사건을 수사했던 군법무관들은 2008년 '군법무관 파면 사태'를 계기로 군 사법 개혁 의지를 잃어갔다. 국방부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데 반발한 박지웅(33) 군법무관 등 6명이 헌법소원을 냈다가 파면 등 징계를 받았다. 당시 파면됐던 박지웅 변호사는 "군법무관들의 소통 창구인 인트라넷 '잭넷'에 징계받은 우리들을 향한 응원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파면 사태 이후 점점 개혁 의지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군 사법 개혁의 해법은 있다.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들은 민간 판사를 재판에 참여하게 하거나 사단급 이상 부대에 소속된 보통군사법원을 지역별로 광역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법원을 사단장으로부터 독립시켜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옮기자는 의견이다. 사단장이 수사 보고를 받고, 구속영장을 결재하는 등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도 대안이다.

군사법원을 폐지해 일반법원과 통합하자는 의견도 많다.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최재석 변호사는 "2심을 재판하는 미국 연방군사항소법원은 모두 민간 판사로 이뤄지고, 유럽은 군사법원이 없거나 있다 해도 민간 판사들이 재판한다. 심지어 북한 군사법원도 민간 판사가 재판한다. 우리나라같이 2심까지 군인이 재판하는 군사법원 형태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평시 군사법원의 필요성에 대해 의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지금 남북이 대치하고 언제라도 전쟁으로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것은 시기가 너무 이르다."(2009년 국정감사·김태영 국방부 장관) "한반도의 전쟁 환경에서, 평시부터 군사재판을 운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바로 전쟁 초기에 군사재판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2012년 국정감사·김관진 국방부 장관)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구실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60여년간 이어진 평시 군사법원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운용됐는지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끝>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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