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오쩌둥 '요동은 원래 조선 땅' 발언 확인

2014. 2. 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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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종석 전 장관, 중국쪽 1차 사료 공개

북-중 국경 획정 와중에 여러 번 밝혀

"조선 사람 압록강변까지 내쫓겨"

김일성에 "역사서에 꼭 쓰라" 말하기도

저우언라이도 "중 속국설 터무니 없다"

고구려·발해 중 고대사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근본부터 흔들리는 셈

북한과 중국이 국경 획정 협상을 하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중국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고대 왕조가 조선민족을 압록강변까지 내몰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27일 확인됐다. 이는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주장해온 중국의 국가 차원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연구서 <북한-중국 국경 획정에 관한 연구>(세종연구소 펴냄)에서 마오 주석과 저우 총리가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 이런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마오 주석은 북-중 국경조약 체결 직후인 1964년 10월 베이징을 찾은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을 만나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요동)인데, 봉건주의가 조선 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오 주석의 이런 발언은 1964년 10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11책에 실려 있다.

마오 주석은 이에 앞서 195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서도 "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958년 11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4책에 실려 있다.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의 발언은 좀더 직설적이다. 저우 총리는 1963년 6월28일 베이징을 찾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으며 심지어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저우 총리의 이 발언은 1963년 6월28일 중국 외교부가 펴낸 <외사공작통보>에 실려 있다.

마오 주석이 요동 지방이 애초 고구려·발해 등 조선 선조들의 영토였으나 당 등 중국 봉건왕조의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종석 연구위원은 연구서 및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마오와 저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자이자 1976년까지 통치한 최고지도자들"이라며 "이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조선민족이 세운 고대국가로 인식했으며, 그 역사를 조선의 역사로 규정했다"고 짚었다. 이어 "두 (최고)지도자가 동일 주제를 언급하며 거의 같은 용어와 문구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당시 중국 정부의 정리된 공식 방침이었으리라 추정된다"며 "두 중국 지도자의 발언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할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동북공정'을 국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격상시켜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고대에 하나의 지방정권이었고, 국민은 주로 한족 이주민을 위주로 하였다'거나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동북지역의 오래된 소수민족 중 하나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발해를 중국 고대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애써왔다. 2000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연구계획을 비준·승인했으며, 2002년 2월 중국 사회과학원과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세 성이 공동으로 1500만위안(22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상 연구 공정'(동북공정)을 출범시켰다.

한편, 1964년 10월 마오 주석을 만난 북한의 박금철 당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마오 주석의 요동 영토 관련 발언을 듣고는 "양국 간 국경은 1962년에 이미 해결됐습니다. 주은래 총리가 아주 분명하게 백두산과 천지 문제를 모두 합리적으로 해결했습니다"라며 "현재의 국경선에 우리는 만족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두고 북한의 우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중은 1962년 10월12일 압록강·두만강을 공동 이용하며 백두산 천지 영유권을 분할(북 54.5% 중 45.5%)하는 등 이전보다 북쪽에 유리하게 정리된 북-중 국경조약을 체결했으며, 그해 12월11일 이 조약 비준서를 교환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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