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진, 예쁜 여자 아닙니다..구리구리 50대 아저씨들의 '지식 정치'

2014. 1. 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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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 팟캐스트 '노유진'과의 만남

1돌 맞는 팟캐스트 시장의 강자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을 만나다

스마트폰 보급 뒤 출퇴근길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어폰을 꽂는다.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고 소비하는 행태는 바뀐 일상의 풍경과 함께 달라져 간다. 지상파와 달리 언제나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라디오 '팟캐스트'는 새로운 형태의 언론으로 부상중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해외에서도 주목했던 정치풍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그해를 달군 이슈가 됐다. 나꼼수 이후 국내 팟캐스트 시장은 크고 다양해졌다. 나꼼수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정의당에서 만든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화제다. '노유진'은 노회찬(59·왼쪽부터) 전 정의당 대표와 유시민(56) 작가, 진중권(52) 동양대 교수의 성을 따 만든 이름이다. 팟캐스트로 방송을 한 지는 1년째. 나꼼수가 특유의 풍자와 유머, 음모론적 특종으로 화제를 모았다면, 노유진은 내로라하는 '이빨'인 출연진들의 해박한 지식과 시사 현안에 대한 예리한 분석·해설로 최근 인기몰이중이다. 정당의 팟캐스트지만 정당 홍보엔 관심이 없는 노유진은 '공부하는 팟캐스트'를 매개로 '넓은 의미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지난 18일 51회째 녹음을 마친 이들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똑똑해지길 원한다"

▶ '노유진의 정치카페'는 회당 청취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팟캐스트 중 하나입니다.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이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글이 다 기사가 되고 화제가 되는 이들이 한데 모여 매주 한차례씩 녹음한 방송이 1년째를 맞았습니다. '나꼼수'와도 다른, 노유진만의 매력은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까요.

지난 일년 동안 방송 때마다 적게 잡아도 평균 48만명이 들은 라디오 방송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어느 일간지 유가부수의 절반을 뒤쫓는다. 그런데 지상파도 아닌 이 방송의 제작진은 열 명이 채 안 된다. 지난해 말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해당 일간지의 본사 직원이 500명가량이니, 이 방송은 1인당 영향력에서 이 일간지의 20배를 뛰어넘는 셈이다.

노회찬(59) 전 정의당 대표와 유시민(56) 작가, 진중권(52) 동양대 교수가 진행하는 '노유진의 정치카페'는 요즘 꽤 잘나가는 팟캐스트(인터넷 방송)다. 스마트폰용 팟캐스트 앱 '팟빵'에서 한 달에 한 계단씩 순위가 오르더니, 지난달엔 6천개가 넘는 전체 팟캐스트 중 인기 순위 2위를 차지했다. 방송 횟수가 일주일에 세 차례인 것까지 따지면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듣는 팟캐스트라 할 만하다. 노유진이 진행하지 않는 '테라스편'을 포함해 14회 방송한 지난 3월엔 회당 68만명이 정치카페를 내려받았다. 파일을 기기에 내려받지 않고 인터넷망을 이용해 곧바로 듣는 방식(스트리밍)의 청취 횟수는 이 집계에서 빠져 있으니, 적어도 한 번에 70만명 이상이 이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고 봐야 한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노회찬), 정계 은퇴를 선언한(유시민) 정치인들이 왕년의 논객(진중권)과 함께 매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여는 것이다. 그것도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치카페는 지난해 5월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들 평당원 셋에게 요청해 만들어졌다. 선거용 팟캐스트였고 노 전 대표가 낙선했지만, 팟캐스트는 계속 이어져 만 1년째 정의당이 만들고 있다. 당원이기 때문에 시작한 팟캐스트인데도 노유진은 정작 당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다. 2만명가량인 정의당 당원 수의 수십배가 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도 "입당은 듣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며 쿨하게 '세상 공부'에만 열을 올린다.

이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 건물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다. 51회째 녹음일인 지난 18일 당원이 운영하는 이 스튜디오에서 세 사람과 만났다. 초대손님과 나눈 '100분 토크'에 이어 유시민의 '타임라인', 노회찬의 '즉문즉답'을 한번에 녹음하고 난 직후였다.

4시간 동안 비좁은 스튜디오에 갇혀 있다 나온 이들은 살짝 지친 듯하다가도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노 전 대표는 특유의 촌철살인 농담을 주체하지 못했고, 성역 없는 '모두까기' 진 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정치카페 녹음 분량의 대부분을 '잡아먹는다'는 유 작가는, 인터뷰에서도 가장 많은 생각을 쏟아냈다. 이들은 "정치카페를 통한 '공부'가 넓은 의미의 정치"라고 말했다.

"예쁜 여자이름 같잖아, 노유진"

-'노유진'이란 이름이 흥행에 한몫한 것 같다.

진중권(이하 진)

"원래 내 이름을 따 '진중권의 정치다방'으로 시작했다. 내가 진행하는 다른 팟캐스트와 유사한 이름이었는데 결국 그걸 못 쓰게 돼 '노유진의 정치카페'로 바꿨다."

노회찬(노)

"제작진이 노유진이라고 지었는데 잘한 거 같다. 뭔가 신선하지 않나."

"예쁜 여자이름이 생각나잖아."

유시민(유)

"여자이름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면 되게 구리구리한 50대 아저씨들이지."

-오늘까지 51회를 녹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무엇인가?

"신년특집으로 인공지능을 다룬 김대식 박사(카이스트 뇌과학 교수) 편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 주제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이 있을 줄 몰랐다."

"우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린 정작 약간 쉬어간다는 느낌이었는데, 인공지능과 연관된 에스에프(SF)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해주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했던 방송 중 그게 제일 대박이었을 거다. 다운로드도 많았고 반향도 컸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김 교수가 말이 빨라서 많은 정보가 압축됐다. '공부하는 팟캐스트' 콘셉트에 딱 맞는 방송이었다."

-유 작가가 맡은 꼭지 '타임라인'에서 다룬 내용들도 회자된다. '돗자리 깔아도 되겠다'는 말도 나온다.

"고 신해철씨 사망 초기 의료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는데, 반향이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발표와 우리 녹음이 동시간대에 이뤄졌는데, 거의 같은 내용을 얘기했거든. 최근엔 '우리가 몰랐던 야당의 비밀' 편에 관심이 많았다. 열린우리당 시절 가진 의문이었는데, 그 당은 '주류가 없는 당'이라 해석해야만 설명이 되더라. 호남은 표가 있는데 대통령 후보가 없고, 비호남은 대통령 후보는 있는데 표가 적다. 그 갈등 때문에 각자가 다 비주류라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던 거였다."

"그게 재보궐선거 참패 뒤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을 설명해주지 않나. 대중들이 볼 때 새누리당도 비박, 친박으로 나뉘었고 어느 정당이나 계파가 있어 싸우게 마련인데 왜 이 정당만 이러느냐는 거지."

-얼마 전 공무원연금에 대해 설명한 타임라인도 화제였다.

"타임라인은 단순히 이슈만 다룬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다. 진 교수도 나도 먹물 기질이 다분해 어딘가 들어가 정보 캐오고 그걸 알려주고 그런다. 그런 기능이 있다, 우리 방송이.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표를 냈는데 뭘 잘못했냐면, 정무수석은 대통령 분위기를 미리 살펴서 문제가 안 생기게 해줘야 한다. 엄밀히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일이긴 하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란 표현을 넣더라도 단정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처음부터 (조율)했어야 했다."

"모시고 있는 사람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다. '국민연금 건드리면 안 돼', '공무원연금 이외에는 합의하지 마' 그러면 무슨 합의가 되나. 원래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을 자기들이 못해놓고 오히려 판을 뒤집은 것 아닌가."

"참여정부 국민연금 협상 때는 내가 백지위임장 받아서 두 달 동안 비밀협상했다. 연금개혁은 그야말로 정치인데, 대통령이 정치 과정을 다 억압해버리지 않나. 대통령이 정치를 훼방놓고 있는 거다."

이들이 팟캐스트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시민 작가와 노회찬 전 대표는 2011년 4월부터 '저공비행'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진 교수가 이 방송에 한번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정치카페도 그랬지만, 그때도 당(당시 통합진보당)의 요청이 있었다. 당시의 대세는 '나는 꼼수다'(나꼼수)류의 풍자와 희화화였다. 유 작가는 '소심남', 노 전 대표는 '의리남'이란 어색한 별칭을 지어 스스로 불렀다. 당시로선 생소한 매체의 진행을 직접 맡은데다, 두 사람 모두 주요 당직에 이름을 올렸던 때였다. 당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강박 탓인지 특유의 촌철살인과 독설은 생기를 잃었다. 몸에 잘 맞지 않는 옷 같던 이들의 팟캐스트는 한때 부동의 1위 나꼼수를 제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청취자를 그리 오래 잡아끌진 못했다. 딴지일보가 만든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진행자 래퍼 유엠씨(UMC)가 "저공비행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고 놀렸을 정도니까.

그러나 지금의 노유진은 다르다. 나꼼수류의 '흥행 코드'를 욱여넣지 않았어도 적지 않은 흥행을 이어간다. 현실 분석이 거침없지만 밝혀진 사실을 중심으로, 진지한 취재를 통해 접근한다. 나꼼수처럼 '빠'를 키울 만큼 파장을 불러일으키진 않았지만 '음모론 생산자'란 비판을 듣진 않는다. 팬덤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70만명을 불러모은 것은, 나꼼수와는 다른 노유진만의 저력 덕이다.

"난 앞으로 정부미 안 먹어"

-팟캐스트라는 게 사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정치카페는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팟캐스트'를 표방하는 것 같다.

"청취자들이 왜 우리 방송을 듣느냐를 보면, 코드가 그렇더라는 거다. 웃기는 건 젊은 애들이 더 잘한다. 우리보다 개그 감각 뛰어난 팟캐스터들 많다. 근데 왜 우리 방송을 듣느냐는 거지."

"우린 엄숙주의나 권위주의를 체질적으로 배격하지만, 그렇다고 웃기는 걸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농담도 건조하지 않을 정도만 했다."

"우리는 진지하되 꼰대스럽지 않게, 웃기되 천박하지 않게 그런 거지 뭐. 우리는 몇 명 듣는지 신경 안 써. 청취자들한테 아부 안 해. 그냥 들을 사람 들어라 그런 얘기지. 우리 생각은 이래요, 필요한 분들 들어보세요. 그런 거지."

"돈을 안 받아서 그런 거 같애, 우리가. 프로정신이 없는 거야."(웃음)

"돈을 받으면 비굴해지는 거지."

-정의당을 위해 돈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건가?

"당원으로서의 의무감 그런 것도 있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정치를 하던 놈이 그만두고 먹물로 돌아와 정치논평을 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하니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거든. 왜냐면 어떤 분은 정계은퇴 선언하고 시골집에만 계시니 사람들이 자꾸 몰려오잖나. 정치하라고."

"손학규?"

"난 나와서 자꾸 떠들어대니까 '저 사람 정치 안 하려나 보다' 그런 효과가 있더라고. 다시 정치할 생각이면 절대 안 할 얘기 막 하잖아. 그래서 편해. 난 앞으로 정부미 절대 안 먹어."

-간혹 공개방송도 했다. 지난해 재보궐선거 때 노회찬이 출마한 서울 동작에서 2번, 이후 인천과 광주에서 1번씩 했다.

일제히 "당에서 요구하니까."

"당으로부터 대학 순회, 지역 순회 같은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우린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있다."(웃음)

"우리 원래 취지는 정보 제공이다. 우리의 시각에서 해석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 선별한 정보와 그것에 대한 해석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걸 참고해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게 우리 목적이다. 이것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에서 프로모션을 위해 필요하니 행사 요청을 해온다. 계속 거절하다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울 때 한번 가는 거다."

"그런데 가면 잘 안된다. 우리끼리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거기 가면 청중들하고 호흡을 맞춰야 하거든. 우리는 준비돼 있지 않고. 스튜디오 안에서 우리끼리 하고 그걸 밖에서 사람들이 보는 건 좋은데, 무대에서 마주보고 하는 건 부담스럽다. 그런 건 김제동씨 같은 사람이 어울린다. 우리는 그 과가 아니다."

"듣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왜 200명, 300명 모아놓고 하냐고. 우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방송이 돼 줘야 해. 우리가 필요한 방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래야 존재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지. 어떻게 하면 진짜 유용하고 정확한 정보를 잘 소화할 수 있게 갈무리해 사람들에게 전해주느냐, 그게 우리 과제다. 다른 건 다 부차적이다."

정의당은 피피엘(PPL)로만

-그래도 정당이 만드는 팟캐스트니까, 당 홍보도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정작 방송에선 당 홍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피피엘(PPL·간접광고)을 하는 거지, 정의당을. 피피엘은 사람들이 의식 못하게 해야 하니까. 더 노골적으로 하면 효과가 반감된다."

"새로 입당하는 사람들에게 어찌 알고 입당했냐고 묻는 항목이 있다. 근데 노유진 듣고 입당했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당원이 늘어나는 데 기여하면 우리도 좋지. 하지만 그걸 목적으로 이 방송을 하는 건 아니다. 당원 획득 한 명도 안 돼도 좋아. 특히 진 교수나 나는 그래. 우리는 사람들이 더 똑똑해지길 원하거든. 국민이 똑똑해야 나라가 똑똑하지. 국민이 안 똑똑한데 어찌 나라가 똑똑하겠어."

-계몽주의적 실천, 뭐 그런 것인가?

"계몽주의와는 상관없다. 내가 누구를 계몽한다 이런 건 없다. 단지 요약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생계로 바쁜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를 세우는 건 힘든 일이지 않나. 그 많은 정보를 다 읽어보고 생각해야 된다. 바쁘지만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견해를 세우고 싶지만 시간 없는 분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우리가 제공하는 것이다."

"메타정보(정보에 관한 정보), 해석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 듣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배척하면 되고, 마음에 들면 가져가시고. 그 정보로 뭘 하든 알아서 하시라. 이런 거다. 담론이란 게 그런 거잖나. 누가 정답 주고 예스냐 노냐 하는 게 아니고.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그걸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이 다 다르고 '와글와글'하는 것. 그런 게 좋은 거다."

"최근에 거리에서 귀에 꽂은 이어폰을 가리키며 반가워하는 사람을 만났다. 지금 듣고 있다는 거였다. 그런 사람들 자주 보다 보면 정보가 어떻게 소화되고 유통되는지 알게 된다. 이번에 '우리가 몰랐던 야당의 비밀' 편은 사람들이 서로 들어보라고 추천하더라. 정의당을 넘어서는 거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 요약본, 녹취본이 돌아다니고 댓글이 수십개씩 달린다. 그런 파급효과가 있다. 정의당 홍보와는 상관없지만 사람들이 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는 거지. 우리야 좋은 거고."

-일종의 의제 발굴 기능인 건데, 이런 건 원래 전통 언론의 역할이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 이후로 케이비에스(KBS), 엠비시(MBC) 같은 언론의 공공성은 굉장히 약화됐다."

"약화가 아니라 아예 없어졌지."

"한편으론 종편이 압도적으로 위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듣고 의존하고 신뢰하는 언론의 지형이 많이 달라졌다. 어떤 사람은 '노유진의 정치카페'만 듣는 게 아니라 여러 팟캐스트를 골라 듣는다. 저마다 약점, 강점이 있으니까. 그런 층이 생겨났다. 한데 젊은 사람만이 아니다. 정치카페 하면서 제일 놀란 게 있다. 원래 우리에게 관심 갖고 주목하는 사람들은 대충 안 봐도 어떤 사람들인지 안다. 근데 정치면을 쳐다도 안 볼 것 같은 사람들, 내 선입견으론 홈쇼핑, 드라마나 종편만 볼 것 같은 사람들이 이걸 듣는다는 거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굉장히 놀라웠다. 난 이거 아니면 그런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을 거다."

"내가 그래서 기고를 안 하잖아. 할 얘기 있으면 우리 매체에서 하면 되니까. 좋더라고 내 방송국 있으니까."

진보정당의 '다른 정치'

정당이 만든 팟캐스트가 성공한 사례는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처음이다. 정치카페 제작을 맡은 피디(PD)도 당직자다. 그런데도 정치카페를 정의당이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백정현 피디(정의당 기획홍보 부실장)는 "정치카페는 공식적으론 정의당의 온라인 기관지 형태이지만, 단기적 당적 이해에 동원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철저한 편집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을 맡은 정당은 뒤로 빠져 있고, 그만큼 부담을 던 출연진이 그야말로 자기 마음껏 떠들고 있는 것이다.

선거와 지지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당이, '단기적 이해'에 최소 70만명의 청취자를 불러모으는 홍보수단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대단한 자제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벌인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은 4%였다. 노유진의 '간접광고'는 아직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노유진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국민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일이 포괄적 의미의 정치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노유진은 소속 정당을 피피엘 대상으로나 취급하면서 어쩌면 정의당을 '다른 정치'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정치비평 팟캐스트이니 현 정부에 대한 세 사람의 평가도 듣고 싶다.

"당선된 거 말곤 하는 일이 없는 정부다. 5년 임기 동안 재정적자성 채무만 150조원을 진다는데 도대체 무슨.(한숨) 그렇게 해놓고 국민한테 세금을 걷는 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런 얘기 하는 거 보면 정말 돌겠다. 2012년 대선 공약은 꽝이고, 한나라당 때인 2007년 당내 경선 공약이 '줄푸세'인데 그거만 하고 있는 거다.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제도 세우고. 엠비 때 하던 거 그대로 하는 거지. '명박산성' 따라 '근혜산성' 세우고 캡사이신 뿌리고 다 하는 거야. 자기 떨어졌을 때 공약인 줄푸세만 하고 정작 당선 공약은 안 지킨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 해도 소용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집 제목이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다. '약속을 바꾼 새누리당'으로 제목을 바꿔서 선물하고 싶다. 자기 공약집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잊고 지내는 것 같다. 공약 준수 노력하라고 하면 국민 핑계 대고, 적자 핑계 대고. 오히려 공약을 앞장서서 부정하는 것 같다."

"정권 끝나면 엠비 제치고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 같다. 지금이야 박정희 후과 같은 게 남아 있지만 끝나고 나면 현실적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한 게 없다. 1년차엔 국정원 대선개입, 2년차엔 세월호에 십상시, 3년차에 성완종. 국무총리도 없잖나."

-그럼, 이런 무능한 정부를 두고 어떻게 하나. 셋 다 정당인인데, 당적을 갖는 일이나 현실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의미가 있고 중요한가.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얘긴 우리가 굳이 안 하지. 우린 그냥 정치 얘기 하는 거다. 그거 듣고 투표 꼭 해야 한다고 결심하거나 정당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건 그 사람들 문제다. 우리는 그걸 강요·강권할 생각도 없고 책임질 의향도 없다."

"강력히 권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것보다 이것 자체가 재미있고 유익해서 들어보니 맞더라, 이러면 되는 거다. 학교나 회사에서 동료들과 얘기하다 생각이 다르면 부딪치게 되잖나. 그때 너 이거 좀 들어봐, 이런 식으로 추천하고 그런 속에서 넓혀져 가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옛날엔 정치가 당위였다. 해야 하는 거였다. 디지털 시대에는 놀이가 된다. 근데 그냥 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사회정치적 의미까지 있으면 좋겠어, 그게 사람들의 욕망이다. 너무 정치 얘기만 하면 삭막하고, 너무 놀면 한심하고. 적당히 놀면서 의미가 있는 걸 찾는 거다."

1인칭 대 2인칭으로 말걸기

52회 녹음은 방송 첫돌을 맞아 한 주 쉬기로 했다. 이들은 주목도가 높아진 '시즌2'에서부터 "더 다양한 소재를 다루겠다"고 밝혔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삶과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밝히고 구성원 각자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넓은 의미의 정치를 위한 소재를 찾겠다고 했다. 마침 국내 팟캐스트 시장도 시사·정치 중심에서 조금씩 장르를 분화해 다양화하고 있다. 기존 언론이 얘기하지 않는 정보의 이면을 찾아 지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듣는 '똑똑한 라디오'는 이들과 노유진 사이의 '넓은 정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꼭 1년이 됐는데, 팟캐스트를 한 소회가 어떤가?

"인터넷 같은 데서 사람들이 '덕분에 그걸 잘 알게 됐다'고 말할 때. 내가 책을 써서 팔아먹고 사는 사람인데, 내 책도 다 그런 기능을 하는 거잖나. 책은 밥 먹을 만큼 나가고 이거는 이거대로 되니, 괜찮다 싶다. 또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팟캐스트 중에 우리가 좀 진지하고 유용한 팟캐스트 아닐까. 그럼 또 괜찮은 거다."

"역사를 보면 자동차의 발명이 인류의 문화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스마트폰의 등장도 생산, 유통, 생활, 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존재하지 않던 미디어를 만들어내는데 그중 하나가 팟캐스트다. 갖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방송. 뉴미디어가 뉴데모크라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내 관심이다. 수십년 싸워 얻은 언론의 자유가 이상하고 괴물 같은 언론사에 지배받는 역설적 상황에서 희망의 탈출구로 뉴미디어를 본다."

"패러다임이 변했다. 옛날엔 텍스트 문화였다면 지금은 사운드와 이미지 문화다. 옛날엔 정치에 관심 있으면 읽어야 했다. 신문, 잡지, 주간지, 월간지, 사상서적… 근데 이젠 듣는다. 텍스트 문화는 1인칭 대 3인칭이다. 저자가 3인칭 주체에 대해 쓰고 독자는 엿보는 것이다. 근데 이건 1인칭 대 2인칭이다. 그러니 언어 자체가 굉장히 생활밀착적이다. 추상적 사고와 구체적인 사고를 결합시켜야 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 아닌가. 팟캐스트는 또 나름대로 사이클이 있다. 웃고 떠들고 하다 보면 웃는 애들도 지친다. 그냥 웃고 끝나는 게 허탈하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가 뜬 게 아닐까. 물론 내가 합류한 게 굉장히 큰 역할을 했지만."(웃음)

노, 유

"인정해 인정."

-앞으로 시즌2는 어떻게 운영해갈 계획인가? 변하는 게 있나?

"고민이다. 우리가 하려는 공부가 되는 팟캐스트를 위해 필요한 포맷이 무엇일지, 소재가 무엇일지 고민 중에 있다."

"경영학, 디자인, 로보틱스, 경제학 이론이나 물리학 같은 지적인 것, 더 넓혀 주는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다뤄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으면 어떤 날은 하루에 70건, 100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 가만히 앉아 제안 설명을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각 상임위에서 자구수정 거쳐 올라온 원안, 대안, 수정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이뤄지고 어떤 건 찬반토론도 한다. 듣고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느 정도 보인다. 좁은 의미의 정치는 만날 권력을 누가 갖느냐는 싸움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회 본회의장에서 통과되는 법률의 제목과 키워드 같은 거다. 이 방송도 넓은 의미의 정치다. 시민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 이 시대에 벌어지는 일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집단적 의사결정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지, 또 그때 각자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그런 판단에 도움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정치를 다루는 거다. 지금까지 다룬 의제는 좁은 의미의 정치에 집중돼 있었다. 앞으로는 사람들의 호응이 좋았던 인공지능 같은 소재들을 다뤄보려 한다."

"동물 윤리학 문제나, 비인간 인격체 같은."

"바이오, 유전자 조작 같은 것도 다뤄볼 수 있지."

"그게 다 정치다."

글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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