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영화감독 양우석, 그분 살았다면 30년뒤에나 나왔을 '변호인'

손정빈 2014. 1. 2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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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간혹 살짝 웃어보일 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목소리는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고, 빠르게 말하려다 발음이 꼬이는 경우도 없다. 말을 할 때 손동작을 한다거나 다리를 겹쳐 앉지 않고,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도 없다. 무엇보다 말을 정확하게 한다. 구어에서 흔한 비문이 그의 말에는 거의 없다.

영화 '변호인'의 양우석(45) 감독은 빈틈이 없고 인터뷰 내내 덤덤했다. 처음 연출한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1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니 그의 내면이 조금 들여다 보였다. 겉모습은 평온했지만 속에서는 다양한 고민들이 뒤엉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연민, 시대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근심, 대중에 대한 두려움, 한 인물에 대한 존경, 결과물에 대한 불안이 감지됐다.

그 어느 영화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변호인'은 분명 쉽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감독 양우석의 오랜 고민이 축적돼 나타난 결과물이다. 누구보다 화끈하게 자신의 영화인생을 열어젖힌 양우석은 분명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10년 전부터 구상한 이야기입니다. 자료도 많이 모아뒀지요. 하지만 그 분이 살아계신 상황에서 이 이야기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30년 뒤에나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분을 영화화해도 문제될 게 없었어요. 그러나 그분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한 원동력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요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양 감독은 "젊은 세대가 조로했다"고 본다. "피곤에 절어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에서 선택된 일부가 되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스펙이라는 암묵적 합의 아래 삶을 뒤돌아 볼 기회도 없이 뛰어다니는 게 지금의 젊은 세대"라고 짚는다. 이런그들에게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불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인가.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불만이 아닌 안타까움"이라고 답했다. "암울했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뭔가를 느낀다면 그게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 전부다." 양 감독은 결국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들에게 미안했다"고 고백했다.

"분노와 증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찰에 관한 이야기죠.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부분이 극중 송우석이 갑자기 인권변호사로 변모한다는 점이에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은 그렇게 한 번에 변하기도 해요. 머리를 탁 치는 뭔가가 있는거죠. 실제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잖아요. 각성과 성찰 이후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잖아요. 삶에 대한 성찰이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 거죠. 그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반드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잠시 멈춰서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곧 '치유'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득한다. "타인에게 받는 위로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화가 관객을 힐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힐링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그게 성찰이고, 이 영화의 이야기다."

"사실 1000만이라는 숫자에 감이 없어요. 감이 안 오는데 어떻게 반응을 하겠어요. 많은 분들이 봐줬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양적인 측면보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더 만족합니다. 무대 인사를 갔는데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온 경우가 많더라구요. 3대가 함께 관람을 온 가족도 있었구요. 이런 영화 흔치 않잖아요?"

"영화가 사회의 상식을 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공감을 불러온 것 같다"는 게 양 감독의 분석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는 분명히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변호인'을 감동적으로 봤다는 남녀 중에는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못 견디는 이들도 있다. 이런 비상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양 감독은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수용한다. "큰 강물이 흐를 때 그 사이에 흙탕물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어디를 가나 극단적인 부류는 있게 마련"이라는 뚝심이다.

"송우석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마비된 상태에서 법조인이 앞에 서야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신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마지막 날 그 장면을 찍었기 때문이에요. 촬영을 끝마쳤다는 감격 같은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큰 부담감을 덜어냈다는 안도 같은 감정이었죠."

소재를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삼은 것에서부터 오해와 편견은 예정돼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그만큼 논쟁적인 인물이다. 양우석은 지금 이 시대를 "안 그래도 오해와 편견이 많은 세상"이라고 대한다. 그러므로 "그 오해와 편견을 더 강화하는 영화"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끊임 없이 했다. 촬영장이 항상 진지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스트레스가 컸던 듯 하다.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넘은 날 양 감독에게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양우석스러운 답장이 왔다. "오해는 적고 이해는 많이 받아들여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관객들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게 제 진심입니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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