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Hot Spot] 2013년 K리그 최고의 골 10선

조회수 2013. 12. 31. 11: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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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은 유한하다. 덕분에 미칠 듯 괴롭고 힘들었던 일도 어느 정도 지나면 희석이 된다. 시간이라는 약 기운이 돌면, 다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기억의 용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불행하기도 하다. 벅차게 행복했던 순간들도 시나브로 바래지는 까닭이다. 남기고 싶지 않으나 남겨야하는 일도, 남기고 싶어도 남지 않는 일도 '기억의 한계'에 지배를 받는다. 때문에 인간은 기록으로서 기억의 부족함을 대체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준비한 아이템이다. 2013년의 끝자락에서 2013년 K리그의 명장면을 되짚어보려 한다. 좋은 것만 반추하기도 시간과 공간이 부족하기에 씁쓸했던 기억은 서서히 지워지길 기다리며 놓치기 아쉬운 장면들만 모았다. 역시 축구의 백미는 골이니 그것을 매개로 과거를 연결시키려 한다. 슈팅 자체만으로 충분히 인상적이었거나, 여러 정황상 진한 여운을 남겼던 2013년 최고의 골을 딱 10장면만 엄선했다.

-. 3월30일 / 경남vs서울 / 서울월드컵경기장보산치치의 과감하고 정교한 로빙슛

또 한 명의 '동유럽 특급'의 탄생을 예감케 했던 장면이다. 올 시즌 K리그에 첫 선을 보인 세르비아 출신의 보산치치가 K리그 외국인 공격수 최다득점에 빛나는 터줏대감 데얀(몬테네그로) 앞에서 화끈한 도전장을 던졌다. 전반 39분의 프리킥도 훌륭했으나 백미는 후반 3분 환상적인 장거리 로빙슛이었다. 하프라인 조금 아래서부터 공을 잡은 보산치치는 직접 드리블로 서울의 수비수 2명을 제친 뒤 골문 앞으로 나와 있던 김용대 골키퍼의 위치를 파악하고 과감한 로빙슛을 성공시켰다. 40~50m를 돌파하는 와중에 나온 정교한 슈팅이라 더더욱 놀라왔다. 이때만 해도 보산치치와 경남FC를 향한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보산치치는 9골로 시즌을 마감했고, 경남 역시 간신히 잔류에 성공한 11위가 최종 성적표였다.

-. 5월25일 / 부산vs인천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돌아온 풍운아 이천수의 마수걸이 골

고향 인천의 유니폼을 입고 어렵사리 K리그로 돌아온 '풍운아' 이천수가 9경기 만에 복귀골을 터뜨렸다. 전남 소속이던 지난 2009년 5월 성남전에서의 골맛 이후 4년 만의 달콤함이었다. 3월말 실전에 투입, 8경기에서 3개의 도움을 올리면서 서서히 몸을 달궜던 이천수는 13라운드 부산 원정에서 전반 12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천수라는 선수의 '센스'를 알 수 있던 장면이다. 한교원의 패스를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 수비수를 제치는 숨은 테크닉을 과시한 이천수는 상대 수비가 따라붙어 정확한 슈팅 자세가 아니었음에도 발끝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흔히 표현하는 '반 박자 빠른 슈팅'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복귀 무렵 반신반의가 있었으나 과연 이천수는 이천수였다. 감각은 죽지 않았다. 다만, 악동 기질도 다 정리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시즌 막바지 술집에서의 소란으로 이천수는 현재 봉사활동과 함께 자숙 중이다.

-. 7월13일 / 전남vs서울 / 광양축구전용구장'수트라이커'의 탄생과 '서울극장'

시즌 초반 극심한 '우승 후유증'을 겪던 디펜딩 챔피언 서울을 정상궤도로 복귀시킨 힘은 소위 '서울극장'으로 대변되는 끈질김이었다. 졌다고 생각했던 경기인데 종료직전 동점을 만들거나 승점 1점에 그칠 경기에서 3점을 빼앗던 서울의 뒷심은 '강호의 저력'을 느끼게 했다. 특히 마지막 '돌격 앞으로'에서 수비수들이 공격수 못지않은 골을 터뜨리면서 수트라이커(수비수+스트라이커)라는 합성어를 만들기도 했다. 광양 원정으로 치러진 18라운드가 대표적이다. 종료직전까지 0-1로 끌려가던 서울은 두 번의 영화를 상영했다. 후반 41분, 센터백 김주영이 김치우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면서 동점을 성공시켰다. 이대로 종료됐어도 흥분될 내용이었으나 추가시간, 또 다시 김치우의 프리킥을 김진규가 머리로 받아 넣으며 역전까지 시켰으니 소름이 돋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간판 골잡이 데얀이 부상으로 빠져있을 때다. 수트라이커들이 스트라이커의 공백을 메웠다.

-. 9월1일 / 부산vs포항 / 포항스틸야드부산의 상위리그행을 이끈 박용호의 간절함

우승 직전에 놓인 울산을 41라운드에서 잡아내며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팀이 가려지도록 판을 짠 윤성효 감독의 훗날 '설계'는 상하위스플릿을 가르던 26라운드의 기억을 곱씹으면 더더욱 극적이다. 9월1일 포항스틸야드에서 펼쳐진 포항과 부산의 경기는 마지막 1장 남은 상위리그행 티켓의 주인공이 결정되는 무대였다. 여기서 부산이 짜릿한 2-1 승리를 거두며 성남을 근소하게 따돌리고 막차를 탔다. 내용이 일품이었다. 전반 43분 선제골과 함께 부산이 85분을 잘했으나 종료 5분을 남겨두고 김은중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치는 듯했다. 하지만 추가시간에 주장 박용호가 드라마틱한 결승골을 넣으면서 드라마를 썼다. 무언가에 끌리듯 공격 진영까지 가담한 센터백 박용호의 위치선정과 슈팅은 휘슬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축구계 격언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명품골'이었다. 만약 그때 부산이 떨어졌다면, 우승은 울산의 몫이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 9월8일 / 전북vs포항 / 전주월드컵경기장개인을 압도하는 팀, 이것이 '스틸타카'다

유난히 신조어가 많이 등장했던 2013년 K리그의 최고 유행어(?)는 아마도 '스틸타카'일 것이다. 구단 사정상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없이 시즌을 치러야했던 포항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비웃으며 시즌 내내 승승장구했다. 그 든든한 배경에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를 통한 '팀의 힘'이 있었다. 팬들은 포항의 깔끔한 경기운영을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와 빗대 '스틸타카'로 명명했다. 9월8일 강호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나온 박성호의 두 번째 골 장면은 2013년판 포항 티키타카의 단면이다. 1-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 6분, 약속된 연계플레이에 이은 박성호의 마무리는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포항 축구의 '호흡'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최강희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으면서 상승세를 타던 전북에게 3-0 완승을 거뒀던 포항은 이후 탄력을 받아 FA컵과 정규리그를 모두 삼켰다.

-. 10월9일 / 수원vs서울 / 수원월드컵경기장순수한 남자 정대세의 '석고대죄'

이천수와 더불어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이슈메이커'로 주목을 받았던 정대세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던 경기다. 라이벌 서울과의 시즌 3번째 슈퍼매치였던 이날 경기에서 수원은 후반 13분 산토스의 선제골과 후반 38분 정대세의 추가골을 합쳐 2-0으로 완승을 거두며 앞선 1무1패의 부진을 씻었다. 서정원 감독은 부임 후 처음으로 슈퍼매치 승리를 맛봤다. 때문에 모든 수원 선수들이 환호했으나, 특히 정대세의 감정은 남달랐다. 후반 16분 교체투입된 정대세는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를 등지고 돌아 나오며 멋진 오른발 터닝슈팅으로 추가골을 작렬, 서울의 전의를 상실케 만들었다. 골보다 멋졌던 것은 이후 세리머니다. 골을 터뜨린 후 정대세는 곧바로 수원 서포터에게 큰 절을 올렸다. 4월14일, 시즌 첫 슈퍼매치에서 불필요한 파울로 퇴장을 당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사죄였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의 모습을 볼 때, 단순한 쇼맨십이라 볼 수 없는 진심이었다.

-. 11월9일 / 울산-전북 / 울산문수경기장김신욱, 업그레이드 골잡이의 향기

비록 막판에 자신은 데얀에게 따라잡혀 득점왕을 놓쳤고, 팀 우승도 포항에게 빼앗겼으나 2013년 K리그 최고의 선수가 김신욱이었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과거 '머리'만 뛰어난 공격수라 평가절하됐던 김신욱은 2013년을 통해 '머리도' 잘 쓰는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원래 돋보였던 머리(높이)는 여전히 무서웠고, 동료를 활용하는 다른 머리(두뇌)도 깨어났으며 덕분에 발도 빛났다. 역전 우승의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던 전북의 꿈을 깨뜨린 38라운드의 선제결승골은 '업그레이드' 거인의 위력을 입증한 장면이다. 골킥을 곧바로 김용태에게 연결하던 헤딩 패스는 김신욱다운 제공권을 알 수 있었고, 김용태의 리턴 헤딩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논스톱으로 연결하던 오른발은 진화된 골잡이의 향기를 느끼게 했다. 허망하게 득점왕도 우승도 놓친 김신욱에게 시즌 MVP란 당연하고도 심심한 위로였다.

-. 12월1일 / 전북vs서울 / 전주월드컵경기장지독한 골잡이 데얀의 지독한 뒤집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던, 득점왕을 향한 무서운 추격전의 종지부를 찍은 데얀의 시즌 19호골. 이 득점으로 기어이 김신욱(19골)과 타이기록을 세운 데얀은 경기수(29경기/36경기)가 적어 득점왕 3연패를 달성했다. 7골까지 격차가 벌어졌을 때, 김신욱의 사상 첫 득점왕 등극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데얀이 3경기에서 6골을 몰아치면서 턱밑까지 추격했고, 김신욱이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던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기어이 1골을 추가하면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윤일록의 패스를 최효진에게 연결한 뒤 리턴패스를 곧바로 슈팅하기 좋은 자세로 움직여 연결하던 데얀의 19호골은 과연 '골잡이'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았다. 기록제조기 데얀의 발자취는 이제 2013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내년부터 중국리그(장쑤 세인티)에서 뛴다. 더욱 잔상이 남을 마지막 방점이었다.

-. 12월1일 / 울산vs포항 / 울산문수경기장이보다 짜릿할 순 없다, 김원일의 기적

전광판 시계는 멎었고, 경고누적으로 벤치에 앉지 못했던 울산의 간판공격수 김신욱은 관중석에서 내려와 우승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펼쳐졌다. 추가시간 4분까지 모두 흘렀을 때 김재성의 발을 떠난 프리킥부터 '신의 간섭'이 시작됐다. 울산 문전에서 몇 명인지 헤아리기도 힘들만큼 많은 포항 선수들과 울산 선수들이 뒤엉키다 김원일의 마지막 슈팅이 골문 안으로 향했다. 울산 팬들과 선수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고 포항 서포터와 선수단은 크레이지 모드였다. 이 골로 포항은 시즌 더블을 달성했고 내내 1위를 고수하던 울산은 빈손이 됐다. 만약 이런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가 있다면 적잖은 욕을 먹었을 것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스토리였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는 현실이었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난무하지만, 이쯤이라면 정말 '기적' 외에는 설명키 어렵다.

-. 12월4일 / 상주vs강원 / 상주종합운동장역사상 첫 승격 이끈 이상협의 '미친 양발'

역사적인 승강PO 1차전을 앞두고 강원FC의 김용갑 감독은 자신이 넘쳤다. 그는 "사람들이 '레알 상주'라 부르지만 어디까지나 챌린지에서다. 클래식과 챌린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승리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4-1 상주의 대승은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결과다. '미친 양발' 이상협이 사건의 단초였다. 이상협은 다소 소강상태로 흐르던 전반 29분 페널티에어리어 정면에서 오른발로 한 번 접은 뒤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강원의 골망을 흔들었다. 강원 김근배 골키퍼가 꼼짝할 수 없는 강력한 슈팅이었다. 과거 '미친 왼발'로 통했던 이상협의 '미친 오른발'이 불을 뿜으며 경기는 급격히 상주 쪽으로 기울어졌다. 심지어 이상협은 후반 44분,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왼발 중거리포로 4번째 골까지 작성했다. 이상협의 '미친 양발' 덕분에 상주는 2차전 0-1 패배에도 불구하고 K리그 역사상 첫 승격팀으로 기록됐다.

글=임성일[MK스포츠축구팀장/lastuncle@daum.net]사진=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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