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감정노동자..학교가 무섭습니다"

2013. 12. 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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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돌아서 눈물짓는 현장 교사들

2013년 여러 곳에서 '학교의 눈물'에 주목했다. 하지만 주로 학생들만 주목할 뿐, 교사의 눈물은 관심 밖이다. 교사를 사교육 강사처럼 대하는 학생들, 여전히 권위적인 관리자, 학부모의 지나친 개입 사이에서 상처받는 교사들을 만나봤다.

지난 20일 오후 7시15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마인드프리즘 1층. '사회적 가면 속 내 마음 들여다보기-정혜신의 공개상담실'이라는 말이 적힌 화면을 앞에 두고 50여개의 의자가 마련돼 있었다. 7시25분쯤 되자 빈 의자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심리 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에서 실시한 '2013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제5차)'(이하 캠페인)에 참여하게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마인드프리즘에서는 8월부터 사회복지사, 콜센터 상담원, 판매원 등 흔히 '감정노동자'(실제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감정노동이라고 부름)로 불리는 직업인들을 대상으로 <내마음 보고서>와 <정혜신의 공개상담실>을 제공해왔다.

그런데 이날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조금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감정노동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인물, 바로 '교사'였다. 마인드프리즘 쪽은 "학부모, 학교 관리자, 학생 사이에서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으면서 상처를 받는 교사들이 많다"며 "지금 시대 교사들은 감정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진학성적이 최고인 현실에서학부모들 막말에 시달리고산더미 행정업무에 고달프고학생들 앞에서 자존감 무너지고그래도 겉으론 아닌 척해야 한다"철밥통이 아니라 전쟁통 신세"직업 자부심 뒤에 무력감 팽배

'1인 다역' 요구에 남모르는 상처

마인드프리즘 대표이자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진행으로 사전에 교사들이 제출한 사연 가운데 두 사례를 각각 다른 교사가 역할극처럼 대신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첫 사연은 학부모의 막말에 시달린 한 교사의 이야기였다. 앞에 나가 40대 여교사의 사례를 대신 읽어 내려가던 강아무개 교사는 사례 속 주인공의 상황에 깊게 몰입한 모습이었다. "너는 교사 맞냐?" "책임감이 있는 거냐?" "그날 전화를 받을 땐 교사가 학부모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학부모의 무례함에도 저도 모르게 쩔쩔맸습니다. 저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인데 그 험한 말들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사연을 읽던 강 교사는 물론이고 현장에 있던 여러 교사들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교사라면 모름지기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례 발표 뒤 정 박사가 강 교사에게 질문했다. 강 교사는 "교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해선 안 되고, 학부모들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듭니다." "하다 보니 힘든 건가요, 아니면 본래부터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정 박사가 다시 물었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닌데 갈수록 학교나 사회를 통해 강요받다 보니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인드프리즘에서 행사 전, 참여자들에게 나눠준 네 개의 팻말('당신이 옳아요',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어요', '공감 백배, 나도 그런 적 있어요',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등) 중 사례의 주인공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적힌 팻말로 '공감 백배, 나도 그런 적 있어요'를 든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요즘 교사들은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교사는 전형적으로 '을'이 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관리자들은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교사의 역량과 연결 짓습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학부모 민원을 받는 교사들을 색안경 끼고 봅니다."

학생만 학교가 싫을까? 2013년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나도 학교가 무섭다. 매일 전장에 나가는 기분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날것의 생생한 학교 현장 이야기를 담은 책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도 주목받는다. 책을 쓴 문화학자 엄기호씨는 책을 통해 "학교는 이미 폐허다"라고 말한다. 학교는 학원의 보조로 추락했고, 학교에서 얻을 게 없거나 배울 능력이 안 되는 학생들은 수업 동기를 잃은 채 분노를 옆에 있는 약자에게 퍼붓는다. 엄씨는 이것이 수업 붕괴와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일이 벌어지면 모두가 학교와 교사를 비난하는데 정작 그들이 하는 일에는 별 관심도 없고 알기 위해 에너지를 투여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냉소와 비난 사이의 교육은 사회의 무능에 대한 알리바이로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강아무개 교사는 교사가 힘들어진 상황에 대해 "교사 역시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생각해보면 성취도 평가가 중요한 축이 됩니다. 지역 학교별로, 관내 교육청별로 성적이 나오고 과목별로 미도달 비율을 매깁니다. 모든 게 평가, 실적 위주로 전환이 되다 보니 제출할 서류도 산더미로 늘어나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교사들끼리도 잠깐 말할 여유 내기가 힘듭니다."

학부모들의 입시강박증이 중학교까지 내려오면서 교사가 떠안은 부담은 배로 커진다. 학부모들은 "진학은 우리 아이에게 그야말로 현실인데 학교가 내 자식 좋은 학교로 진학까지 잘하도록 최대한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임아무개 교사는 "예전과 달리 생활기록부 기록 사항을 체크해서 토를 다는 학부모들도 늘어난다"고 했다. 임 교사는 "봉사활동에 왜 더 좋은 멘트를 안 넣었느냐, 행동발달사항에는 왜 '매우 잘함'이 아니라 '잘함'만 넣었느냐며 아이에게 유리한 내용을 더 추가해 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이 있다"며 "교사들끼리는 흔히 '진상 학부모'라고 부른다"고 했다.

교사들 스트레스 평균점수 '주의 단계'

고교 교사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존재는 다름 아닌 학생이다. 고교에 다니는 박아무개 교사는 올해로 교직 경력 20년째다. 큰 불만 없이 학교생활을 해왔던 최 교사가 학교를 그만 다녀야 하는 건가 고민하게 된 건 올해 공부 좀 한다는 학교로 옮기게 되면서부터다.

"고3 담임을 맡게 됐는데 미술이나 음악 등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출결처리에서 조퇴를 눈감아달라고 집요하게 요구를 하는 겁니다. 긴 면담을 했습니다. 학교는 왜 다니는지 질문도 해봤고, 대학 진학만을 위해 고교에 다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본인이 학교나 교사 쪽에 어떤 이기적인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제가 이런 현실이니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가 아닙니다. '내가 당연한 걸 요구하는데 왜 이렇게 안 들어주냐?'는 식이죠. 입시가 과열되면서 2~3년 전부터 학교의 개념이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좋은교사운동 김중훈 정책위원은 "교사와 학생 사이 관계를 설정하는 근간이 급속하게 흔들리게 된 것도 교사들이 힘들어진 원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에 전통적으로 말하는 권위가 있었지만 그 권위가 남용되는 사례들이 발생하자 체벌이 금지됐습니다. 그것이 사라진 뒤로는 전통적인 권위가 흔들리고 있죠. 체벌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진국을 보면, 체벌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관계에서 사전에 합의되고 공유된 합리적이고 엄격한 규칙이 이미 있고, 교육주체가 이 부분을 인정합니다. 그런 근간 없이 권위를 지키게 해줬던 행위를 금지하자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또 교육의 본질적인 역할인 지식 전달을 학원에서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학부모들도 교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일도 일어납니다."

이런 환경에서 현장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마인드프리즘에서 이번 캠페인 참가 교사 50명의 스트레스 수준을 분석해본 결과, 평균점수가 '주의(2)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2)단계는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안심할 만한 상태는 아니고 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의학적 경고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교사들의 우울경향성 지표(그래픽)는 1000명의 일반 직장인(사무직·생산기술직 등이 포함)과 비교할 때 우울한 감정 집단 평균점수(교사 49.8, 일반 직장인 45.9), 비관적 사고 집단 평균점수(교사 47.6, 일반 직장인 45.5)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슈드비 콤플렉스'가 불러오는 의무감

이번 캠페인에 참가한 교사들을 통해 보면 교사들은 대부분 자신을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가족의 일원, 사회 구성원 등으로부터 존재 의미와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지만 당당한 모습 이면에는 다른 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좋지 못한 인상을 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는 걸로 나타났다. '나는 언제나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인 '슈드비 콤플렉스'(Should Be Complex)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정혜신 박사는 "참가 신청한 교사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력감'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과도한 슈드비 콤플렉스가 불러오는 의무감 때문에 직업에 대한 회의감, 자존감 저하, 무력감이 오기 쉽다"고 했다.

실제로 학교 안에서 한 교사가 쓰고 있어야 하는 가면은 무수히 많다. 캠페인에 참여했던 한 교사는 "학교나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역할이 너무 많다. 부모·상담전문가·학원 유명강사·경찰·진학전문가 등 모든 영역을 다 요구한다"고 했다. "어느 한 가면 역할에만 충실하게 되는 순간, 균형이 깨집니다.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데 저는 그럴 만한 능력도 없고, 그렇게 살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교사를 두고 '철밥통'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도 있지만 교사들은 "우리 일상을 들여다보면 전쟁통이다"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고교에 다니는 고3 담임 최아무개 교사와 통화가 된 건 지난 12월23일 밤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최 교사는 아침 7시에 나와 밤 10시까지 근무한다. 매일 저녁은 빵이나 컵라면 등으로 때운다.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오는 30분을 아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저녁을 마치자마자 상담하러 찾아온다. 자기소개서 작성이 한창인 7월부터 9월까지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자기소개서 작성을 돕는 데 쏟았다. 귀가 뒤에도 밤 12시30분까지 부모들과 상담 통화를 한다. 최 교사는 "고3인 내 아이와는 마주하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다. 20여년 동안 남의 아이는 돌보며 내 아이에 대해서는 신경을 못 써줬다"며 목이 멨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아무개 교사는 "학교 안에서 일종의 감정노동을 하고, 각종 잡무를 처리한 뒤 집에 와서는 다른 얼굴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될 때 무섭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실수는 당연히 하는 건데 제 아이의 실수에 대해 너무 과하게 화를 내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다른 사람들한테 '부모가 교사인데 아이는 왜 저래?'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교사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합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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