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아버지' 튜링, 사후 59년만에 사면

2013. 12. 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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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차대전 승리의 숨은 주역

동성애죄 처벌 2년뒤 자살

비운의 수학천재 앨런 튜링(사진)이 사후 59년 만에 동성을 사랑한 '죄'를 사면받았다고 24일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가디언>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실특별사면권을 행사해 법무부 장관이 요청한 튜링의 사면을 승인했다"며 "그는 에니그마 암호를 푸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 전쟁(2차 세계대전) 종식을 2년 가량 앞당겼다"고 짚었다. 튜링 탄생 100돌을 앞두고 영국 자유민주당 소속 의원이 지난해 5월 튜링 사면 관련 법안을 제출했고, 법안이 상·하원을 차례로 통과해 23일 사면이 시행됐다. 여왕이 사면권을 행사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네번째로, 상당히 드문 일이다.

영국의 수학자 튜링은 24살이던 1936년에 현대 컴퓨터의 원형이 된 '튜링 머신' 개념을 고안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난공불락의 독일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초보적 연산 컴퓨터인 봄베와 콜로서스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영국은 콜로서스로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 1944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튜링이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공훈을 세운 튜링은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던 국가폭력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절도 피해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를 한 증거가 포착됐고 1952년 중대 외설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여성호르몬을 정기적으로 주사받는 화학적 거세를 택하거나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범죄자로서 비밀정보 취급 허가를 잃은 탓에 영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에서 수행하던 암호 해독 연구를 그만둬야만 했다. 그는 수모와 오욕을 겪은 지 2년 만인 1954년 41살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문 흔적을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일부에선 사고사라거나 정보기관의 암살이라는 주장도 여전히 제기된다.

그의 사면을 둘러싸고는 법적·사회적 논란이 꼬리를 물었다. 영국 정부는 처음엔 튜링의 유죄 판결이 당시 법 체계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졌으며, 다른 이들은 놔두고 튜링만 사면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사면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 등 유명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사면 청원을 하자 태도를 바꿨다. 2011년 12월에 시작된 온라인 사면 청원은 지난해 11월까지 진행됐는데 3만7404명이 서명했다. 튜링의 사면이 그의 업적에 대한 인식을 높여줄 것이란 의견과 함께 아주 훌륭한 개인은 다른 모든 보통 사람들과 법적으로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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