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타박타박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글 사진 채동우 기자 2013. 11. 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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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속살이 눈부신 '나무의 여왕'..치유코스 등 3개 길 있어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난 걷기다. 우선 신발끈을 꽉 조여 매며 마음을 단단히 먹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곧장 도심에서 벗어나 생소한 풍경에 감탄하고 그 안에서 명상에 잠기기는 여행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일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조금 더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멀리 떠나야 하고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북유럽의 어느 산을 삽으로 떠 와 그대로 앉힌듯한 풍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탈에도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서 2시간 반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북유럽의 어느 산 귀퉁이를 삽으로 그대로 떠 와 앉힌듯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전 자일리톨 껌 씹기로, 동네 찜질방의 핀란드 사우나에서 땀 흘리기로 북유럽의 로망을 잠재우고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원대리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임도에서 만나는 풍경. 푸른 하늘과 하얀 말이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하얀 수피가 빛나는 숲의 백미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두고 '숲의 귀족'이라 고도 하고 '나무의 여왕'이라 칭하기도 한다. 쭉 쭉 뻗은 큰 키와 흰색의 수피를 두고 이르는 말이리라. 그러나 이는 자작나무를 너무 점잖게 보는 시선이다. 하얀 속살을 과감하게 드러낸 요염한 자태와 뭇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휘어잡는 교태까지 지녔으니 여왕과 요부의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는 나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고혹적인 나무의 남방한계선은 북위 45도에 다다른다. 남한에서는 귀할 수밖에 없는 식생을 타고났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대중에 알려온 산하클럽 임벽직 트레킹 대장은 "남한에서 자작나무가 대단위 군집을 이루고 있는 숲은 강원도 인제에 단 두 곳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수산리의 자작나무숲은 멀찍이서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며 원대리는 자작나무 숲 속을 거닐기 제격이다"고 설명했다.

자작나무 숲 초입에서 설명 중인 임병직 대장과 산하클럽 회원.

원시림 사이의 개울물을 건너는 탐방객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일단 원대산림감시초소를 찾아가면 그곳이 바로 시작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작나무 숲길을 걷는 건 아니다. 산림청에서 닦아놓은 임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폭신한 산길이 아니라고 실망하긴 이르다. 길가로 자작나무들이 보이고 풀을 뜯고 있는 말까지 풍경에 더해져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1시간 남짓 임도를 걸으면 20여 년간 비밀스레 자란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가 탐방객을 맞이한다. 수천 개의 흰 줄이 빼곡히 그려진 풍경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다. 나무와 나무 사이, 좁다란 틈으로 파란 눈을 지닌 청년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공간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누군가 등을 떠민다면, 혹은 누군가 손을 잡아끈다면 이와 같은 느낌이리라.

올려다본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25m 정도까지 자란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산림청에 의해 1990년대 초반부터 조림되기 시작했으며 2012년 10월께 비로소 대중에게 소개됐다. 산림청의 정성스러운 관리가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풍경이다. 사계절 모두가 아름다운 숲이지만 단풍 든 가을과 나목의 겨울이 가장 아름답다. 흰색의 수피 덕에 가히 숲의 백미(白眉)라 칭할만하다. 숲 속으로 들어서면 세 개의 산책 코스가 조성돼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함께하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길이다. 자작나무코스(0.9㎞), 치유코스(1.5㎞), 탐험코스(1.1㎞) 세 가지 길이 있으며 각각의 코스는 큰 구분 없이 연결되어 있다.

돗자리를 준비해와 하늘을 가린 자작나무를 보면 절로 명상에 잠기게 된다.

원시림 트레킹 코스에는 탁족을 즐길 수 있는 계곡도 있다.

원시림 계곡서 나를 만나는 힐링타임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이국적 정취에 흠뻑 젖었다면 그다음은 인제의 속살 깊은 곳을 탐방할 차례다. 최초 걸은 임도를 따라 회동 쪽으로 내려가면 대형 안내판이 보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걸어가면 산하클럽에서 개발한 원시림 걷기코스를 만날 수 있다. 임병직 대장은 "회동분교를 기점으로 걸어온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게 일반적인 코스이지만 그럴 경우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며 "사람의 발길이 뜸한 원시림 길을 찾아 걷고 명상할 수 있는 코스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산하클럽에서 개척한 이 길은 사전에 사유지의 주인에게 허가를 받아야만 탐방할 수 있는 길이다.

인근에 단 하나뿐인 들국화향기 펜션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회동분교를 만나게 된다. 1963년 개교한 이 분교는 1993년 폐교됐다. 30년간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36명뿐이다. 자물쇠 걸린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20여 년 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회동분교는 1993년 폐교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회동분교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오지 트레킹이다. 길이 험하진 않지만 사람이 다니질 않아 풀이 무릎까지 자랐다. 빼곡히 자란 나무는 하늘을 가렸고 계곡서 흐르는 물은 여행자를 잡아끈다.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또 다른 세계를 조우하게 된다. 자작나무 숲이 북유럽의 정취를 풍겼다면 이곳은 무릉도원 어드메 같은 느낌이다. 물소리와 새소리에 취해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폭신한 숲길이 끝나고 임도를 마주하게 된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걸어 원대리 쪽으로 내려가면 여정이 마무리된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회동분교길 안내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은 원대리 산림초소에서 시작된다. 3.5km 정도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자작나무 숲이 나온다. 자작나무 숲 탐방을 마치고 다시 임도를 따라 회동 쪽으로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아이오라 펜션(들국화향기 펜션)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후 안저울까지 약 2.5km 정도 오지트레킹이 이어지며 산길이 끝난 후 바깥저울 아랫길로 1.5km 정도의 임도를 걸으면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들국화향기펜션 이후의 길은 사유지라 사전 허가가 필요한데 산하클럽( www.greenwm.com)에서 진행하는 당일 여행을 이용하면 쉽게 이 길을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채동우 기자 / eastrain@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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