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간이 멈춘 그 곳..충남 강경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2013. 11. 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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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경이 곰삭았다. 만추(晩秋)의 풍경이 그렇듯이… 시간의 묵직함에 푸슬푸슬해진 건물들이 있고, 폭 익은 젓갈도 지천이다. 단풍 무리 지나간 산야가 처량해 보이지만, 골목골목 느릿하게 걸으면 묵은 정이 느껴져, 다시 마음 따뜻해지는 고장. 가을 끝자락에 드는 헛헛함이 불쾌하다면 강경에 다녀와야 한다.

▲해산물 집산지로 염장기술 발달…조선후기 3대 시장으로 번성

강경에는 폭 익은 젓갈이 있다. 이거 빼고는 강경 얘기가 안 된다. 읍내에 발들이자 마자 보이는 것이 크고 작은 젓갈 가게들이다. 인구 1만 명 조금 넘는 이 도시에 젓갈 가게만 무려 150여 곳이란다. "전국에 유통 되는 젓갈 가운데 약 60%가 강경을 거쳐 나간다"는 믿지 못할 말들도 돌아다닌다. 이만하면 젓갈이 강경 먹여 살리는 셈이다.

젓갈시장은 1990년대 들면서 활성화됐다. 매년 가을(10월) 열리는 젓갈축제는 올해 17회를 맞았다. 축제가 뜨며 '강경 젓갈'이 전국적으로 입소문탔다. 서해안 일대로 향하는 '관광버스' 대부분이 요즘은 강경에 꼭 들러 갈 정도다. 올해 축제는 끝났지만, 김장 앞두고 젓갈과 소금 찾아 나선 주부들을 저잣거리에서 여전히 볼 수 있다.

젓갈이 많은 이유는 이렇다. 뱃길 잘 뚫린 덕에 강경은 조선후기 서남해안에서 잡힌 해산물의 집산지였다. 강경포구는 금강과 그 지류인 샛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금강을 거슬러 올라온 배들이 여기다 해산물 부려놓았다. 당시 강경은 원산과 함께 조선후기 2대 포구로 꼽힐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해산물 가득하니 염장기술도 발달했다. 새우젓이 특히 유명했다. 소금과 조기 등도 이때부터 잘 알려졌다.

생활용품, 한약재 등 온갖 물자들도 강경으로 몰렸다. 강경장은 교역장으로 흥했다. 평양장, 대구장과 어깨를 견주며 전국 3대 시장으로 이름 날렸다. 전성기에는 200여척의 배들이 금강을 거슬러 올랐다.

물자가 모이니 사람도 들끓었다. 고현정 논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가장 좋을 때 하루 유동인구가 10만명에 달했다"고 했다. 오늘날 논산 인구가 약 13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1920년대에 전기, 수도 들어왔고, 전국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은행도 세 곳이나 있었단다. 이 때 들어선 경찰서(현 논산경찰서)와 법원(현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은 지금도 논산 시내로 옮겨가지 않고 강경에 남았다. 이러니 요즘은 '논산 강경'이지만 100년 전만해도 '강경 논산'이었다. 논산뿐만 아니다. 군산, 부여, 공주, 이리, 청주 등이 전부 강경권역으로 구분됐다.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원이 돈을 벌기 위해 강경장에서 소금을 판다. 강경장의 규모와 명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가 김주영의 '객주', 박범신의 '소금' 등에도 강경의 근대가 오롯이 녹아 있다.

강경은 뱃길이 철로에 밀리며 쇠락했다. 경부선(1905), 호남선(1914)이 차례로 놓이면서 부산과 인천이 흥했다. 군산이 개항(1899)한 후에는 새로 만들어진 큰 배들이 군산으로 향했다. 배가 커서 수위가 낮은 강경까지 올라오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강경장의 형편은 1930년대까지 괜찮았다. 군산의 물자를 받아 판 덕이다. 한국전쟁이 치명타였다. 사람 많고, 물자 풍부하고, 건물 빼곡했던 강경이 집중 폭격 맞았다. 이후 강경장은 근근이 명맥만 이어졌다. 1980년대 들면서 자취를 감췄다. 금강하구둑이 건설(1990) 되며 금강 뱃길은 완전히 끊겼다. 오늘날 강경에는 1만명 안팎의 사람들이 터 잡고 산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근대 문화 여행

흥성한 도시였던 만큼, 강경에는 근대 건축물들이 많다. 강경이 속한 논산에는 모두 일곱 개의 등록문화재 건물들이 있는데, 이 중 여섯 개가 강경에 있다. 옛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현 강상고등학교), 강경공립보통학교 강당(현 강경중앙초등학교), 옛 남일당한약방 건물,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 옛 강경북옥감리교회건물 등이다. 대부분 1920~30년대 지어졌다. 나머지 한 개(기차 급수탑)는 연산면에 있다. 건축이야기도 재미있고, 사진 촬영하면 시간을 거꾸로 돌린 느낌이라, 건축 공부하는 사람, '데이트족' 들이 강경을 종종 찾는다.

홍교리와 중앙리를 잇는 큰 길(옥녀봉로)이 과거 가장 번성했다. 이 길을 중심으로 해 걸어서 돌아보기 딱 좋을 거리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가 아니어도 옛 건물들이 가끔 눈에 띈다. 낡았지만 남루하지 않고 은근한 멋을 풍긴다.

시간의 흔적 스민 건물 외관은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고, 건물에 깃든 사연은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옛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1931)는 참 예쁘다. 뾰족한 지붕 한쪽을 곡선으로 마감한 것이 그렇고, 붉은 벽돌에 나무로 창을 낸 모양새가 그렇다. 강경에 거주하던 일본 상인의 자녀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인근 강경공립보통학교 강당(1937)은 강경 상인들이 지어 기증했쨉?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고도 끄덕하지 않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보기에도 아주 옹골차다.

옛 남일당한약방(1923)은 꼭 봐야 할 건물이다. 1920년대 촬영된 강경시장의 전경 사진 속에 등장하는 건물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이 여기다. 'ㄱ'자 형태의 2층 가옥이지만 지붕에 기와를 얹은 모양새가 독특하다. 이 한약방은 나중에 연수당 건재 대약방으로 이름을 바꿔 1970년대까지 영업했다. 한약방 주변이 그토록 북적거리던 장터였다. 지금은 자전거 탄 촌부들만 종종 오갈 정도로 한갓지다.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1905)과 인근 강경노동조합건물(1925)은 강경의 옛 영화를 보여 주는 곳이다.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지금도 일대에서 눈에 띌 정도로 규모가 장대하다. 은행 옆에는 큰 창고가 있었다. 이것 역시 은행 건물 못지않은 규모였단다. 창고는 새우젓을 비롯해 상인들이 저당 잡힌 현물들로 꽉 찼다.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1920년대 당시 약 800명의 조합원을 거느렸다. 노동조합으로서 기능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일제 상인들과 맞서는 단합의 구심점 역할도 했던 곳이다. 건물 옆으로 샛강을 따라 소금창고가 즐비했단다. 샛강 따라가면 강경포구에 닿는다.

옛 강경북옥감리교회 예배당(1923년)은 붉은 벽돌에 한옥지붕을 올린 모양새가 참 곱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919년 천안의 3ㆍ1운동 만세 운동이 있은 열흘 후 강경에서 만세운동(강경항일만세운동)이 있었다. 당시 예배당 자리를 물색하던 토마스 선교사가 독립운동의 주동자로 몰려 일본인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나중에 오해가 풀려 보상금을 받았다. 이 돈이 예배당 세우는데 쓰였다. 유일한 한옥형식의 정사각형 건물이란다.

예배당 뒤가 옥녀봉이다. 여기서 금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몸 돌리면 강경 읍내가 한 눈에 보인다. 금강 둔치의 갈대밭 풍경이 참 곱다.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키운 그 자연이다. 그는 학창시절 갈대밭에 묻혀 도시락도 까먹고 세계문학전집도 읽었단다. 강경포구에는 관광객을 위한 두 세 척의 배가 정박 중이다.

강경 거리 걸으면 어디선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넋두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애처롭고 먹먹하긴 하지만, 오래 전 잊었던 동경이 스멀거리는 것 같아 새삼 반갑다. 두고두고 생각 날 것 같은 곳이 강경이다.

▲여행메모

천안-논산 고속도로 연무IC가 강경과 가깝다.

젓갈가게 많은 강경이지만 젓갈백반정식을 파는 식당은 드물다. 만나젖갈식당(041-745-7002)이 가장 잘 알려졌지만 1인분은 팔지 않는다. 모텔은 강경 읍내보다 논산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많다. 강경에서 논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차로 약 20분 거리다.

등록문화재 이정표가 잘 안 돼 있기 때문에 강경의 근대 건축물들을 둘러보기 전에 강경역사관(041-745-3444)에 들러 정보를 파악하고 지도 등을 챙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이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쓰인다. 옛 강경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각종 자료 등이 전시 중이다.

등록문화재를 둘러볼 때는 옛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와 강경공립보통학교 강당에서 시작해 '옥녀봉로'를 따라 가며 옛 남일당한약방,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옛 강경노동조합, 옛 북옥감리교회를 차례로 들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느린 걸음으로 약 2시간이면 충분하다. 논산시청 문화관광과 (041)746-5402

강경(논산)=글ㆍ사진 김성환기자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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