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여행① 덜컹거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다

2013. 10. 3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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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변화와 혁신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속도는 미덕이다. 모두가 '빠름'에 열광하고, 조금이라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등거린다.

여행은 이러한 흐름에 잠시 쉼표를 찍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때만큼은 여유롭고, 느긋해야 한다. 그래야 창졸간에 망각되지 않고, 추억으로 자리 잡아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한다.

철도 역시 지금까지 신속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느림의 미학'을 논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경전선은 최고의 노선이다.

KTX 열차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남짓에 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慶全線)'은 빨리 달리지 못한다.

1905년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마산까지의 구간이 개통된 뒤 60여 년을 거쳐 1968년 광주와 부산을 연결하는 현재의 노선이 완성됐다.

경전선은 한 세대 전까지 등교하는 학생과 장에 나서는 아낙들로 붐비던 '사람 냄새' 나는 철도였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용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경전선의 기점인 광주와 부산은 자동차로 3시간 30분 거리이다. 그런데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광주송정역에서 부산 부전역까지 6시간 10분이 걸린다. 그나마 지난해 10월 진주에서 마산까지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40분이 줄어든 결과다.

경전선이 느린 이유는 본래 철로가 하나뿐인 데다 오랫동안 보수하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해진 기차역에서 마주 오는 열차와 교행(交行)해야 하고 10분에 한 번꼴로 정차하다 보니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단선 구간의 평균 시속은 기껏해야 50㎞ 수준이다. KTX에 비하면 '거북' 같은 속도지만, 길손에게는 오히려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편리함과 쾌적함을 도모하는 복선화 사업은 경전선의 형태를 바꿔 놓고 있다. 진주역부터 부전역까지는 현대화된 역사(驛舍)가 이어지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구간도 상당히 많다. 물론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게다가 2015년이면 광양역에서 진주역까지의 53.5㎞ 구간도 복선으로 바뀔 예정이다. 수년 뒤에는 경전선의 경상도 구간 전체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단선 철도와 허름한 기차역을 찾아가는 경전선 '느린 여행'의 백미는 전라남도 화순과 보성, 경상남도 하동 구간이다. 이곳의 정경은 평온하고 유정해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경전선의 간이역

대다수의 기차역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관청과 상점이 주변에 들어섰고, 5일장이 열리기도 했다. 역에서 내리면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전선의 역사도 한때는 인파로 북적이며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철도가 부설되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역이 쇠락을 거듭했다. 그중 보성 명봉역(鳴鳳驛)의 변화는 극적이다.

명봉역은 광곡면사무소가 자리했던 곳에 세워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선로를 수리하는 인부들의 숙소도 생겨났다. 그런데 면사무소가 이전하고, 화물 취급을 중단하면서 2008년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현재 하루에 두세 번 정차하는 경전선의 탑승객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차 여행자들의 순례지가 됐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명성을 얻으면서 일부러 방문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하동의 횡천역(橫川驛)과 양보역(良甫驛)도 명봉역과 같은 무인 간이역이다. 지리산 아래 낮은 구릉에 위치한 두 역은 한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예스럽다.

횡천역은 높다란 수목 사이로 난 좁은 철로가 인상적이다. 마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양보역은 플랫폼과 표지판, 산골의 버스 정류장 같은 대합실이 시설의 전부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기차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소박하다.

한편 완행열차의 낭만은 경북선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경북선은 경상북도 김천과 영주 사이에 놓인 단선 철로로 전체 길이가 115.2㎞이다.

산이 높고 인구가 적은 경북 북부의 예천, 문경, 상주 등을 통과한다. 경전선과 속도가 비슷하고, 오래전에 지어진 간이역도 있다.

한편 코레일은 지난 9월부터 경전선 선로를 달리는 남도해양 관광열차인 'S-트레인'을 운행하고 있다. 부산역과 여수엑스포역, 광주역과 마산역을 오가며 가족석과 카페 등이 갖춰져 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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