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정도전의 '경고'를 기억하라

2013. 10. 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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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 정도전의 선택 > ┃지은이 김진섭┃펴낸곳 도서출판 아이필드┃2013.09.16┃1만 8000원

ⓒ 도서출판 아이필드

언제부터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행태를 두고 '만기친람'이라고 하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정치권 돌아가는 꼬락서니로 봐서는 '대독총리'라는 말도 머지않아 되살아날 듯합니다. 역사에 가정(假定)을 두는 만큼 무모한 것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자꾸 가정을 하게 되는 건 현실정치가 그만큼 마뜩잖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정도전은 615년 전인 1398년 8월 26일, 혁명 동지인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채 60년도 살지 못한 인생이지만 정도전이란 이름은 500여 년의 조선(1392~1910) 역사 이래 어떤 인물보다도 영향력 있게 거론되고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같은 역사, 같은 사건일지라도 누구를 중심으로,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실체와 상황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 정도전의 선택 > (지은이 김진섭, 펴낸곳 도서출판 아이필드)은 정도전을 줄기(維)로 해서 바라본 조선 역사입니다. 줄기와 잔가지처럼 이어지는 조선 역사에서 정도전은 어떤 인물이었으며, 정도전이 설계하였던 국가(조선)는 어떤 나라였고, 그런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정도전이 내디뎠던 발자취들은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멀찍이 떨어진 오늘의 눈으로 되돌아 보는 반사경 같은 내용입니다.

정도전이 설계했던 조선 < 정도전의 선택 >

정도전은 국운이 다해가는 고려 말(1342년, 충혜왕 3)에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던 중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일생을 마감(1398년, 태조 7)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책에서는 정도전의 일대기를 출생 배경과 성장 과정, 정도전이 조선의 설계도를 그려나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거나 부닥뜨렸던 역사적 흐름들을 연차순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도전이 꿈꿨던 조선, 정도전이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면서 밑그림으로 삼았던 바탕그림이 무엇이었나를 볼 수 있습니다.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역사를 바꾸고자 했던 정도전이 지향했던 국가의 모습을 숨은 그림 찾듯이 읽을 수 있습니다.

"재상이 선 채로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온 문자를 몇 줄 읽고 훌쩍 나가 버리는 형식주의가 아니라 왕과 재상이 상호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하여 진지하게 협의해야 하며, 협의 사항도 대사(大事)에 한정하고 그 외 작은 일들은 재상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 정도전의 선택 > 283쪽-

정도전이 구현하고자 했던 국가는 만인지상, 즉 1인 통치가 가능한 왕권 국가가 아니라 조직적인 대화와 협의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 시스템적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이상적인 국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책임 총리제, 공약으로만 내거는 형식적인 책임 장관제가 아니라 재상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하고 판단하고 결정해 정책을 펼쳐 나갈 수 있는 민주적인 책임 내각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군(仁君)의 지위는 존귀한 것이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일 천하 만민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긴다. 민(民)은 지극히 약한 존재이지만 폭력으로 협박해서는 안 된다. 민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이지만 꾀로서 속여서는 안 된다. 민심을 얻으면 민은 군주에게 복종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하면 민은 군주를 버린다.

민이 인군에게 복종하고 인군을 버리는 데는 털끝만큼의 차이밖에 없다. 그러나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사심을 품고서 구차하게 해서도 안 되고 도를 어기어 명예를 구해서도 안 된다. 그 얻는 방법은 역시 인으로서만 해야 한다. 인군은 천지가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씨를 자기의 마음씨를 가지고 차마 함부로 할 수 없는 마음씨로서 정치를 행해야 한다." - < 정도전의 선택 > 277쪽-

정도전이 꿈꾸던 조선은 재상이 실질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정치였습니다. 정도전이 모시고자 했던 통치자는 시시콜콜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훈수를 두는 만기친람형 왕도 아니고 만인에 군림하려는 독재형 왕도 아닙니다. 민심을 거스르지 않으며 민심에, 민심에 의한, 민심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군주였습니다.

정도전의 경고 '민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6.9%나 하락했다고 합니다. 공포정치가 회자되고, 거짓공약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된 지도 오래입니다. 600년 전 인물인 정도전은 '민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긴다'고 이미 예고했습니다. '폭력으로 협박해서도 안 되고', '꾀로서 속여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최고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수족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새길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앎)이야 말로 정도전이 이루고자 했던 조선의 모습, 정도전이 그렸던 군주의 모습입니다.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대통령이 되는 길은 멀지 않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어느 정치가의 업적, 정치사에서 거론되고 있는 어느 명망가의 말에만 답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600년 전에 죽은 정도전이 그린 빛바랜 조선설계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백성의 길이 따로 있고 군왕의 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로인 듯하지만 같이 가는 길, 같이 가는 듯하지만 앞서서 끌어주고 뒤에서 지지해 주는 길이 바로 백성과 군왕이 함께 걸어야 할 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

< 정도전의 선택 > ┃지은이 김진섭┃펴낸곳 도서출판 아이필드┃2013.09.16┃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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