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 강남스타일?" 질문에 외신기자들이 웃은 이유

입력 2013. 8. 27. 10:33 수정 2013. 8. 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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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종원 기자]

지난 19일, 포털사이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4초 분량의 짤막한 동영상이 포함된 글이 나돌았다. 배경은 미 국무부의 일일 정례 브리핑. 한국인으로 보이는 기자 한 사람이 빅토리아 뉼런드 당시 미 국무부 대변인에게 "싸이와 '강남스타일'을 아느냐"며 질문했다. 뉼런드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며 "그렇지만 내 딸은 분명 알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주위의 외신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글의 제목은 이러했다. '두 유 노 강남스타일?'

해당 동영상은 지난해 10월 3일 미 국무부 정례 브리핑 당시의 것이었다. 외신 기자들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과 탈레반과의 평화협정, 시리아 내전, 이란의 핵개발,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원조에 대해 물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11년 만에 열린 미사일 지침 협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질문은 외신 기자들과 미 대변인의 질의응답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나왔다.

다들 알다시피 한 나라의 외교부와 국무부 정례 브리핑은 새롭게 부각된 국제적 현안에 대해 해당국의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자리다. 한 국가의 정례 브리핑이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다른 국가들도 그에 맞는 외교적 대응을 취한다. 이런 성격의 자리에서, 과연 그 타이밍에 굳이 강남스타일에 관한 질문이 필요했을까. 앞뒤 맥락과는 상관없이 누리꾼들이 때늦은 동영상을 짓궂게 편집해 커뮤니티에 게시한 이유는 아마 이런 의도였을 것이다.

외국인들의 한국 언급에 들썩이는 언론매체

영화 < 더 울버린 > 의 주연배우인 휴 잭맨이 지난 달 15일 오전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사실 한국 기자들로부터 "강남스타일을 아냐"는 질문을 받은 해외 유명인사는 미국의 국무부 대변인만이 아니다. 작년에 홍보차 한국을 찾아온 할리우드 스타들도 강남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번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자들은 내한한 배우들마다 즉석에서 말 춤을 춰 달라 주문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윌 스미스 부자, 휴 잭맨이 이런 이유로 행사 현장에서 직접 말춤을 췄다.

많은 독자들이 예상했겠지만, 이후 생산되는 기사들의 제목들은 대개 이렇다. "영화배우 휴 잭맨, 강남스타일 말춤 선보여." 여기서 조사와 관형사를 빼면 그게 곧 실시간 검색어가 된다. 이를테면 '휴 잭맨 말춤' 이런 식이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아주 쉽게 응용이 가능하다. 친선경기차 한국을 찾아온 리오넬 메시에게는 박지성을 아는지에 대해 묻고,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해외 감독들에게는 봉준호와 김기덕에 대해 질문하는 식이다.

그들의 입에서 형식적으로나마 한국과 관련한 긍정적인 얘기가 나오면 대체적으로 높은 조회수가 보장된다. 그러니 '답은 정해져있으니 넌 대답만 해'식의 질문이 남발할 수밖에 없다. 자사 제품 판매하러 온 직원에게 타사 제품에 대한 장점을 말하라고 강요하는 격이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들을 연예매체의 본질적 한계라 지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면 기억할 게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는 사실이다.

수요는 공급의 거울이다. 대개의 경우 공급은 수요자의 심리를 반영한다. 기자들의 질문 패턴에서 정보를 소비하는 대중의 심리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심리학에서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행위를 타인에게 무엇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연인들이 끊임없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말은 질문의 수요자인 한국의 대중들이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의 국제적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는 의미다.

한국사회, 자부심 과잉과 자존감 부족 그 어딘가

실제로 한국 사회는 유독 외국의 반응에 민감하다. 일본과의 축구경기 뒤에는 일본의 대형 커뮤니티의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번역돼 올라오고, 국내에 주요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언론매체들은 주요국 외신 보도를 비중 있게 다룬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 영화배우가 현지에서 인기몰이를 하거나, 외국의 팝스타가 국내 가수에 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 누리꾼들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전형적인 자존감 부족이다.

사실 자부심과 자존감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자부심이 외부적 성과에 대한 자랑의 뉘앙스라면,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내면적 신뢰감이 포함된 개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안정된 정서라고 보면 되겠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지위나 부에 상관없이 언제나 당당하다. 그리고 호의적인 평가를 구걸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자부심은 강하되, 자존감은 부족한 상태인 셈이다.

실제로 2005년, 일리노이 소재 브래들리 대학이 53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개인의 자아 존중감(Self-esteem) 조사에서 한국은 44위에 머물렀다. 1위를 차지한 것은 세르비아였다. 설문조사는 "나는 다른 어떤 사람들만큼 일을 잘 처리해낼 수 있다", "나는 자신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다", "스스로 낙오자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등을 질문했고 여기에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점수를 매겼다.

특히 한국의 경우, 개인의 낮은 자존감과 국가에 대한 낮은 자존감이 동시에 공존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의 김재온(사회학) 석좌교수가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와 국제사회조사(ISSP)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2003년도 세계 34개국 국민 정체성 비교 연구'에서 표본 집단 내의 한국인들은 '세계에 미치는 한국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23.5%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56.0%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다. 순위로는 33위다.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단시간에 일궈냈고 월드컵과 올림픽을 전부 치렀다 자랑하는 나라답지 않게 우울한 결과다.

이렇게 부족한 자존감은 자부심 축적을 위한 전투성을 키운다. '두 유 노 강남스타일?'은 부족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인 셈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선진국과의 자학적 비교로 발현되기도, 반대로 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반했다는 언론매체의 자아도취식 보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에 찾아가 상전 노릇을 하는 진상 관광객들의 심리적 자양분이 될 때도 있다.

매너 없는 칭찬 구걸은 민폐일 뿐

지난 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 설국열차 > 기자회견에서 열차의 2인자 메이슨 역의 배우 틸다 스윈튼이 봉준호 감독과 함께했던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물론 이런 자존감 투쟁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사회에 팽배한 국가적 열등감이 오기로 작용해 국가의 양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단기에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열등감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비교적 건강하게 소비된 셈이다. 다 좋다. 문제는 존재감 확인 방식이다. 정부 기관 브리핑이나 영화 시사회 같은 자리에선 최소한 눈치를 볼 줄 아는 미덕은 갖춰야 한다.

때와 장소는 가려가며 존재감을 확인 받자는 소리다. 매너 없는 자부심은 곧 타인에 대한 민폐다. 지난 7월에 열린 영화 < 설국열차 > 공식 기자회견에서 배우 틸다 스윈튼이 "국적 이야기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불편하게 다가온다. 2006년, 박찬욱 감독의 팬임을 자처했던 세계적 록 밴드 플라시보가 내한 기자회견에서 영화 < 올드보이 > 에 대한 질문만 줄기차게 받다 떠난 사실 역시 그렇다.

'한국의 무엇을 아냐'는 질문은 사실 콘텐츠와의 진지한 소통을 원하는 정보 소비자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다. 제작자들로부터 콘텐츠의 제작 의도와 정보를 직접 들을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럴 땐 '강남스타일을 아냐'는 질문 대신 여배우의 몸매 관리 비법이나 열애설에 대해 묻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그래도 이런 건 해외 타블로이드 매체들과 함께 '글로벌 스탠다드'로 묻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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