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국정원 댓글 축소·은폐해 유권자 속여"

2013. 8. 23. 20: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첫 공판'서 검찰 공소사실 보니

인터넷 아닌 노트북 하드만 분석

'의심단서' 수두룩한데도 묵살

결과물 수서경찰서 전달 늦추기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은폐·축소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용판(55) 전 서울경찰청장의 첫 공판은 검찰의 맹공으로 시작됐다.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김 전 청장이 국민들을 속이려고 부하 직원들을 철저하게 단속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이 사건은 인터넷을 찾아서 국가정보원 직원의 불법 게시글·댓글 활동을 규명해 달라고 고발했는데, 국정원이 제출한 노트북 하드디스크만 보고 대선 게시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해 유권자를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16일 밤 11시 서울 수서경찰서 명의로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내도록 했다. 검찰은 이 보도자료의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 정치·선거 관련 글을 확인하려면 '인터넷'을 검색해야 하고 실제 검색을 통해 이미 글을 찾았는데도, 마치 아이디와 닉네임 등 검색의 단서 정도나 찾을 수 있는 '하드디스크' 분석만 한 것처럼 해 놓고 '글이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이런 행위에는 특정 후보에 유리하도록 선거를 앞둔 국민들을 속일 의도가 있었고, 이런 시나리오의 '설계자'가 김 전 청장이라는 게 검찰 공소사실의 '뼈대'다.

■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할까봐'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12월12일 민주당 고발로 수사에 착수한 수서경찰서는 다음날 국정원 직원 김하영(29)씨로부터 데스크톱과 노트북 컴퓨터를 제출받아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에 분석을 의뢰했다. 이때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물인 디스크 이미징, 복구된 삭제 파일, 아이디 및 닉네임 등 디스크 전자정보 및 혐의 입증에 필요한 참고자료 일체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분석팀은 분석 작업에 나서 12월14일 저녁 8시께 김씨의 노트북 하드디스크의 삭제 파일을 복구하면서 메모장 문서파일 1개를 발견했다. 여기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 방식, 3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 김씨 조력자인 민간인 이아무개(42)씨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이 들어 있었다. 하드디스크의 인터넷 접속기록에선 김씨가 '오늘의 유머'(오유) 등에 수만건 접속한 사실을 확인했다. 범죄 혐의를 의심할 만한 단서들이 수두룩하게 나온 것이다.

김 전 청장은 12월15일 오전 최아무개 수사부장으로부터 이를 보고받았다. 보고는 펜으로 직접 쓴 문서로 했는데, 컴퓨터에 기록이 남지 않도록 김 전 청장이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김 전 청장은 분석 결과물이 수서경찰서에 전달되는 것을 차단했다. 분석 결과물을 그대로 넘겨주면 수사를 통해 혐의가 드러나 외부에 알려지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청장 변호인은 "구두 또는 메모로 보고하라고 지시했지만, 분석 결과를 은폐하도록 지시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 단순 '감식'을 '수사결과'로 포장

김 전 청장은 12월15일 최 수사부장 등에게 일단 증거분석 결과를 서울경찰청이 '통제'하면서 국정원의 개입 의혹을 해소해주는 발표 방안을 찾아보도록 했다. 디지털 증거분석을 잘 모르는 국민들을 속여, 김씨 등이 사이버 여론조작을 하지 않았고 민주당의 의혹 제기는 근거없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발표 문구를 짜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12월16일 저녁, 김 전 청장은 자신의 방에서 최 수사부장 등과 회의를 열어 '오늘 밤 11시 보도자료 배포, 다음날 아침 언론 브리핑'을 지시했다. 당시 분석팀은 하드디스크 분석에서 나온 아이디와 닉네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김씨 등이 '오유' 등 인터넷 사이트에 여야 정당 및 대선 후보에 관한 글을 올린 사실까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청장 변호인은 "분석 결과가 나오면 곧장 밝히기로 사전에 방침을 정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서울경찰청은 김 전 청장의 지시대로 분석팀이 내놓은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를 마치 수서경찰서의 수사결과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꾸몄다. 김 전 청장은 수서경찰서로부터 보도자료 초안을 받아 '컴퓨터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관련 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경찰은 당시 확보한 아이디 등으로 인터넷 검색까지 한 상태였으나 '하드디스크 분석'이라고만 표기했다.

디지털 증거분석은 단순 '감식' 결과일 뿐인데 이를 '수사결과'로 둔갑시킨 것이다. 김 전 청장은 '허위' 보도자료를 수서경찰서에 보내면서, 핵심 결과물을 은폐한 채 작성한 디지털 증거분석 보고서를 첨부하도록 했다. 분석팀은 이 보고서에서 '혐의사실 관련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메모장 문서파일의 존재, 아이디·닉네임의 발견 경위, 인터넷 접속기록 및 검색 사실 등을 숨긴 것이다.

■ 분석 결과물, 달라 해도 안줘

'허위'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서울경찰청은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물을 수서경찰서에 넘기지 않았다. 수서경찰서는 발표 다음날인 12월17일부터 지속적으로 분석 결과물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경찰청은 거부했다. 수서경찰서는 12월18일 오전 '디지털 증거분석물 반환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정식으로 서울경찰청에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자,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항의하기까지 했다. 서울경찰청은 당일 저녁 마지못해 분석 결과 일부를 수서경찰서에 보냈으나 정작 수사 진행에 필요한 아이디와 닉네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물은 주지 않았다. 김 전 청장 변호인은 "김 전 청장은 전달이 지연된 것을 보고받지도 못해 몰랐다"고 주장했다.

수서경찰서가 핵심 결과물이 빠진 사실을 발견하고 서울경찰청에 항의하자 결국 선거일인 12월19일 새벽 0시38분에야 남은 분석 결과물이 전달됐다. 수서경찰서는 아이디와 닉네임 정보를 넘겨받은 바로 이날 하루에 웹 검색 등을 통해 국정원 직원 김씨의 인터넷 사이트 게시글을 다수 확보했다. 서울경찰청이 수사팀에 분석 결과물을 제때 알려줬다면 선거일 이전에 상당한 수사가 진행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시사게이트 #8] '국정원 게이트', 회군이냐? 진군이냐?

<한겨레 인기기사>■ 크레용팝은 정말 '일베충'일까요?문선명 총재 사후 1년, 통일교는 어디로?보시라이, 부인이 불리한 증언하자 "미쳤다""김용판, 국정원 요구대로 수사 결과 짜맞춰"[화보] '골프광' 전두환 틈만 나면 청남대로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