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폭염이라지만, 이곳에서는 거뜬합니다

2013. 8. 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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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오마이뉴스 > 와 < (사)생명의숲국민운동 > 은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 편집자말 >

요즘같이 더운 날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는 고마운 소나무 숲.

ⓒ 김종성

'단맛이 나는 물이 솟는 샘'이라는 뜻을 지닌 경북 예천(醴泉)은 북동쪽으로는 소백준령이 감싸고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낙동강과 내성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동네다. 이중환의 < 택리지 > 에도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에 위치한 복된 지역"으로 나온 동네 답게 명소 회룡포와 모래많은 내성천을 비롯 많은 정자와 사찰, 서원과 고택이 즐비하다.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 자리한 금당실(金塘室) 마을도 그런 복된 곳 중의 하나다. 예부터 마을에 사금(砂金)이 생산되어 '금당실' 이라 불린 마을은 동네 곁을 흐르는 개천도 금곡(金谷)천이다. 조선시대의 오래된 고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금당실은 세상에 난리가 나도 굶주림과 재앙이 없는 십승지지라는 천하명당마을로 꼽힐 정도다.

십승지지란 정감록에서 말하는 전국 열 곳에 이르는 좋은 땅 중 한 곳이다. 물에 떠 있는 연꽃의 형상을 닮았다는 금당실 마을엔 주민들의 자랑 천연기념물 소나무 숲(2006년 지정)이 마을을 길게 가로 지른다. 풍족하고 아름다웠던 금당실 마을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금당실 소나무 숲은 산림청과 생명의숲이 실시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숲 장려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예천군에서 버스를 타고 용문면에 내리면 나타나는 용문면사무소에서 한옥마을과 금당실 송림 여행이 시작된다.

멋스러운 한옥 고택에서 하룻밤?

명당마을이라 그런지 어릴 적 외갓집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지는 금당실 마을.

ⓒ 김종성

용문면사무소 앞에 마을 수호신처럼 서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 김종성

마을 안내 책자가 있는 용문면사무소 앞에 마을 수호신을 연상하게 하는 둔중하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채롭게도 몸통에 새끼줄을 둘렀는데 매년 정월 대보름날 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나무다.

마을 이장님 말씀에 의하면 이 면사무소 자리는 사괴당(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37호)이라는 고택과 연못 그리고 느티나무 네 그루가 서 있었던 곳이란다. 지독한 홍수에 휩쓸려 느티나무 세 그루가 사라졌고 이렇게 한 그루가 살아남아 당산나무가 된 것이다.

면사무소 옆길로 들어서면 정답고 낮은 돌담이 양편에 둘러서서 여행객을 맞아주고 오래된 고택과 새로 보수한 한옥, 초가집들이 어울려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집들의 대문은 아예 없거나 혹은 열려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사라졌던 초가집들의 모습도 반갑고, 지금은 방문객들의 쉼터로 바뀐 과거 주막도 재미를 선사한다.

크고 작은 돌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마을 담벼락은 자연스레 돌담으로 꾸며졌다. 7.4km나 된다는 골목골목 낮은 돌담길은 그 자체로 명물이다. 나무로 만든 안내판이 잘 설치돼 있지만 길이 미로처럼 이리저리 나 있어 헷갈리기 쉽다. 마을입구에는 '골목에서 길 잃어버리지 마시게'라는 표지판을 세워놓은 게 떠올랐다.

물물교환시대 이 마을에서 새우젓 장수가 새우젓을 다 팔고 대신 쌀이나 보리로 수금을 했는데 길이 비슷비슷해 돈 받을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그냥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니 미소가 절로 난다.

이정표를 따라 정다운 돌담길을 걷다 보면 구곡가, 덕용재, 우천채, 천곡재, 광서당, 오미서소 등 100년 이상 된 고택들이 개방돼 있다. 도시에서 유목민처럼 살다보니 백 년이 넘은 집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예닐곱 채의 고택과 초가에서 숙박도 할 수 있으니 특별한 하룻밤을 기대한다면 묵어가도 좋을 듯하다.

갖가지 생김새를 가진 돌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인간적인 정감이 느껴지는 돌담과 반가(班家 ; 사대부 양반이 사는 집)들이지만 화려하지 않은 모습에서 우리 조상들 예술작품에 추구했다는 고졸미(古拙美)가 느껴진다. 큰 기교 없이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한 자연스러움과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마을 전체에서 풍겨온다.

정감록에 나오는 명당마을, 금당실

100년이 넘은 고택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 김종성

7km가 넘는다는 구불구불 정다운 돌담길은 금당실 마을의 명물이다.

ⓒ 윤영초

예부터 천재지변이 나거나 전쟁에서도 단 한번 상흔을 입지 않은 천하의 명당으로 소문난 금당실 마을은 < 정감록 > 에 병화불입지지(兵禍不入之地 ; 전란이 미치지 못하는 땅)라고 기록 돼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 7년 동안 우리나라 곳곳이 유린되었지만 이곳은 안전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쉽게 찾아가지만 당시엔 아주 깊고 깊은 산간벽지였다는 반증이겠다.

이런 명당인 까닭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도읍지로 하려다가 마을 옆을 흐르는 냇물의 수량이 부족하여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이 되려다 말았다 하여 '반서울'이라 한단다.

말로만 들었던 아흔 아홉 칸짜리 한옥이 있었다는 집터도 눈길을 끈다. 구한말 법무대신이었단 이유인은 1899년쯤 이곳에 99칸 사저를 지었는데, 용문면민은 물론이고 인근 문경의 동로면 주민까지 노역에 동원됐다. 농사에 종사하지도 못한 채 권세가의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서 기둥을 거꾸로 세우는 방법으로 원성을 표출했다 한다.

기둥을 거꾸로 세우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그 후 이 집은 쇠락해

여러 사람 명의로 쪼개져 팔려나간 뒤 이렇게 집터만 남게 됐다. 넓은 집터엔 담장과 늙고 허리 굽은 소나무 두 그루만 남아 권력의 무상함을 전해준다.

금당실 마을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산새가 울창하기로 유명한데 그 속에

아까시 나무 군락이 만발해 명물 '금당꿀'이 태어났다. 야생 아까시 나무에서 채취한 금당 꿀은 수분 함량이 16%밖에 안 돼서 그 맛이 일품이란다.

금당실 마을 식당에서 파는 돼지고기 요리에는 설탕이나 조미료를 내는 대신 이 꿀을 넣어 단 맛을 낸다고 한다.

한옥마을 북쪽 끝에 한옥체험관과 금곡서원이 나타나고, 마을의 주산(主山)이자 마을 숲 금당실 송림이 이어져 있는 오미봉이 보인다.

집과 학교, 주민들 곁을 지키는 든든한 소나무숲

오래된 소나무 하나가 용틀임을 하며 하늘로 솟아나 있다.

ⓒ 김종성

소나무 숲에는 작은 오솔길과 정자,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어 산책하거나 쉬어가기 좋다.

ⓒ 김종성

폭염의 날씨가 무덥게 느껴지지 않는 소나무 숲속.

ⓒ 김종성

한옥마을 끝 오미봉 자락에서 시작되는 마을 숲 금당실 송림은 용문 중학교, 면소재지 동네, 용문 초등학교까지 마을을 가로질러 800m 가량 길게 이어지는 900여 그루의 소나무 숲길이다. 한낮 기온 33도라는 폭염 속에서 땀을 흘리다 송림 안 오솔길로 들어서니 그늘이 참 시원하고 좋다. 요즘 같이 무더운 날 주변 학교 아이들과 들일에 지친 주민들의 좋은 쉼터가 될 것같다.

아무리 살기 좋은 땅이라고 하지만 이 명당마을에도 단점은 있다. 바로 홍수로 인한 물난리와 겨울철 북서쪽에서 사정없이 불어오는 추운 칼바람이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모자람을 채워 넣는 방법으로 소나무 숲을 이용하였다. 마을 숲은 물막이 숲이자 바람막이숲이 된 것이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보물인 소나무 숲의 탄생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마을이 형성된 16세기 초로 추측된다. '경상도 읍지'에 예천군 북쪽 20리에 상금곡송림(上金谷松林)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소나무 숲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산송계(四山松契)를 조직하고 공동으로 관리했다. 현재 송림은 예천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용문면 초중학교와 면소재지 동네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주민들 곁의 든든한 소나무 숲.

ⓒ 김종성

동네 아낙이 보기만해도 고소한 참깨를 털어내고 있다.

ⓒ 김종성

그러나 구한말 나라가 어수선 해지면서 수천 년 지켜온 솔숲은 중대한 위기를 맞는다. 1863년 동학의 접주 최제우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혼란기에 민심이 흔들리면서 큰 나무들이 잘려나가는 등 피해를 입었다.

다시 세월이 좀 지난 1892년 7월 또 큰 사건이 터진다. 마을 뒷산 오미봉에서 러시아인이 주인인 금광회사의 광부들이 몰래 금을 캐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금을 캐가는 자체보다 마을의 주산(主山)이자 상징인 오미봉을 파헤친 탓에 더욱 격분한 것이다.

마을의 양반들은 하인들을 시켜 광부들을 쫓아내려다가 사람이 몇 죽으면서 30여 명이 관청에 잡혀가 버린다.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하인들을 구출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숲의 소나무를 베어 충당하기로 하였고, 이때 1km가 넘던 숲의 길이가 현재의 상태(800m~900m)로 줄어들어 버렸다. 이렇게 금당실 송림은 마을을 비보하기 위하여 조성되었고 대대로 마을사람들로부터 보호 받아온 보답으로 마을을 살렸다.

마을 이장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은 후에 숲 속 오솔길을 걷자니 울창한 솔숲이 다시 보인다. 할머니를 앞세우고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동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며 정담을 나누었다. 할아버지도 이장님처럼 '금당실 솔둥지'(마을 주민들은 이 숲을 '솔둥지'라고도 부른다)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한옥 마을 어느 고택 기와에 써 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지켜온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곳'. 정말 그런 마을이요 숲인 듯싶다.

숲길은 용문 중학교와 용문 초등학교의 든든한 담장이 돼 주기도 한다. 대중 이발소·기원·제유소(기름집)·철공소·오일장(매 5일, 10일)이 열리는 정겨운 면소재지 동네 곁을 냇물처럼 정답게 흘러간다.

걷기 좋은 숲 속 오솔길에 깨끗한 화장실도 있고, 쉬어갈 정자도 몇 개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폭염의 여름 날씨지만 소나무들의 짙은 그늘 덕분에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ㅇ 금당실 마을 찾아가기 ; 예천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용문면행 버스가 1시간마다 온다. ㅇ 숙박 및 기타 문의 ; 054-654-2222 ㅇ 마을 누리집 ; http://geumdangsil.in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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