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료 출신 영화제작자, '천황 제도'를 비판하다

2013. 8. 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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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쟁과 한 여자' 국내 개봉

"성탐닉 통해 전쟁의 황폐함 다뤄

2차 대전때 히틀러는 결국 자살

천황은 왜 아무런 책임 지지않나"

15일 개봉한 일본 영화 <전쟁과 한 여자>(이노우에 준이치 감독·포스터)는 2차 대전을 소재로 천황 제도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다.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고 돌아온 귀환병사 오히라 요시오(무라카미 준) 일병은 "상관이 천황 폐하 명령이라며 살인, 강도, 강간을 하게 했다"며 자책한다. 그는 "도조 히데키 장군(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2차대전 당시 총리)은 A급 전범이데 천황은 왜 전범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영화 속 허무주의에 빠진 한 소설가는 "천황도 원래 인간인데 살아있는 신이라며 떠받는 게 우스운 것"이라며 날을 세운다.

영화는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성 불감증에 걸린 매춘부(에구치 노리코)와 허무주의에 빠진 소설가(나가세 마사토시)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이란 단서를 달고 서로의 육체에 강박적인 집착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한편에선 전쟁 귀환병사 요시오 일병이 낯선 여자를 강간 살해할 때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고, 7명의 여성을 살해하면서 파멸해간다. 영화 내내 전쟁과 관련된 트라우마로 성적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이 무너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 홍보를 위해 방한한 제작자 겸 프로듀서 데라와키 겐(62)은 13일 <한겨레>와 만나 "생명을 낳는 과정인 성과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싶었다. 또 성은 일상을, 전쟁은 비일상적인 것의 상징인데 '아이들을 빨리 낳아서 군대로 보내자'는 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기묘한 모순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데라와키는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 문화부장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일본 내 한류 문화 조성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와 한국, 중국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어느 나라든, 어떤 이유든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용납돼선 안 된다. 2차 대전 당시 천황도 문제지만, 당시 전쟁에 반대하지 못한 일본 국민 모두한테 책임이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방한한 시나리오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67) 역시 "군인은 전쟁, 소설가는 전쟁에 저항하지 못한 무기력한 지식인, 여성은 가난한 서민을 상징한다"며 "천황의 이름으로 아시아 침략이 이뤄졌다. 2차 대전 때 히틀러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일본 천황은 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영화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라이는 데라와키 프로듀서의 35년 지기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영화화한 <kt>와 지난 2005년 국내에 개봉돼 인기를 끌었던 <바이브레이터>의 각본 등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는 "일본은 중국과 한국과 달리 후세들한테 역사 교육을 안한다. 8월15일이 무슨 날인지 대답 못하는 사람도 많다"며 "일본 미디어 역시 <전쟁과 한 여자>에 대해 '감성도가 낮은 영화가 아니냐'는 식으로 교묘하게 다루기를 꺼린다"고 비판했다.

1200만엔(1억3600만원) 제작비가 든 독립영화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한 에구치 노리코를 비롯해 무라카미 준, 나가세 마사토시 등 실력파 연기자들이 참여해 무게감을 더했다.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영화 <간장선생>의 원작자 사카구치 안고의 또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단독 상영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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