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전비리 핵심 증인,"우리 회사는 MB 권력의 먹잇감이었다"

엄민우 기자·정리│조유빈 인턴기자 2013. 8. 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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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5시간 동안 진행됐다. 장시간 이어지는 마라톤 인터뷰에도 70대 고령인 그의 목소리에는 갈수록 힘이 실렸다. 중간에 눈물을 한바탕 쏟아내기도 했다. 마치 그동안 쌓였던 모든 설움을 이날 모두 다 털어내 버리겠다는 모습이었다. 원전 비리와 관련한 수사가 계속 진행되면서 지난 MB 정권 권력 실세의 이름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돌아다니는 정보를 바탕으로 온갖 분석과 추측들이 난무한다. 이럴 때에는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해답이다. < 시사저널 > 은 이번 원전 비리 사태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정수공업의 이규철 회장(75)을 8월7일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MB 정권 당시 권력 핵심 실세의 측근을 자처하는 오희택씨(55·구속)와 이윤영씨(51·구속) 등에게 줄기차게 돈을 요구받는 등 시달림을 당해왔다고 토로했다. 침묵을 지키던 그의 입에서 이윽고 권력 실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처음에 어떻게 오희택씨를 알게 됐나.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전 사장인 최 아무개를 통해 알게 됐다. 오희택은 이명박 정부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건설분과 위원장을 맡았는데 국회의원 신분이 아닌 위원장은 오희택이 유일하다며 소개했다. 나중에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가 선거 때 원전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봤다.

오씨는 한국정수공업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부회장 명함 하나 파줬다. 실제론 별로 한 것이 없다. 오희택과 이윤영은 사기꾼이다. 하는 것 없이 돈만 요구했다.

오씨가 정권 실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언급했나.

'S○○'(한국정수공업에 투자금 명목으로 또 다른 돈을 요구했던 IT 기업)와 관련해 일본에서 몇만 달러짜리 오더를 받았다며 돈을 대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를 내놔보라고 해도 그냥 돈만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영준(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 이야기를 했다. 박영준이가 도와주니까 돈을 줘야 하고, 이상득 (전 의원)에게도 뭘 해야 (앞으로) 잘될 테니까 돈을 좀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럴 필요 없어. 난 돈 하나도 안 들이고 영업해. 우리는 기술이 있어서 (원자력은) 우리 아니면 못 해"라고 했다. 김종신이 당시 한수원 사장에 재임이 된다, 안 된다 할 때 박영준이 지경부 차관이었다. 김종신이 연임되게 하려면 박영준한테 돈을 좀 써야 한다고도 했는데 나는 그런 돈 못 준다고 했다. 우리는 로비를 안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다.

오씨가 이상득 전 의원과도 가깝다고 했나.

이상득하고는 어떻게 친하다고 했냐면, 같은 동네 살았다고 했다. 이명박(전 대통령)이 살던 근처에서 살았다더라.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뺏어다가 이상득에게 주고, 박영준에게 주고 그랬다. 자기 기사 시켜서 당시 회사 물(생수)도 박영준·이상득에게 전달하고 그랬다.

오씨가 구체적으로 돈을 어떻게 얼마를 정권 실세에 줬다고 했는가.

그런 건 진짜 모른다. 오희택이 돈 얘기를 했지만, 그가 당시 요구한 돈은 주지 않았다.

컨설팅 계약 후 이윤영씨가 돈을 요구하는 팩스를 회사로 보낸 것이 사실인가.

맞다. 나한테 팩스를 보냈다. 컨설팅 계약에 대해 당시 오희택이 한 말을 그대로 하면, '우리가 UAE 1·2·3·4호기를 수처리하고 있고 앞으로 5·6·7·8호기가 다음에 나오는데 이것을 우리가 하게끔 하겠다'고 했다. '미국에 친구가 있다. UAE 한 고위층이 미국 뉴욕 대학을 다녔는데 거기서 친구가 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UAE에 로비를 해서 5·6·7·8호기를 하게 해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안 해도 1·2·3·4호기를 우리 기술력으로 하기 때문에 5·6·7·8호기는 저절로 우리가 하게 돼 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했었다. 어차피 되는 계약이었지만 오희택이 하도 사정을 하고 또 5·6·7·8호기 이야기도 하고 해서, 컨설팅회사(나오스비전시스템) 하나 끼워준 것이다.

(나오스비전시스템은 당시 오씨가 한국정수공업의 UAE 원전 수주 사업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컨설팅 계약을 요구했던 사실상의 유령 회사로 알려졌다.)

팩스를 보낸 후 전화와 내용증명으로도 돈을 계속 독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윤영이) 전화를 해서는 오희택한테 돈을 주라고 하더라. 자기가 이윤영이라고 했는데, 난 그때도 이윤영이 누군지 몰라서 "오희택은 사기꾼인데, 도대체 넌 누구길래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느냐"고 했다. 그 이후로는 통화한 적 없다. 내용증명은 (팩스와) 똑같은 내용이다. 돈 보내달라는. 발신인이 이윤영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당시 회사가 신성장 동력 펀드를 유치한 데 대한 의혹이 많다.

펀드를 들여온 것은 회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내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대주주) 이 아무개는 회사를 팔러 다녔다. 내가 사경을 헤맨 것도 회사 때문에 일하다 그런 건데, 어떻게 회사를 팔러 다닐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죽으면 이 회사는 종이가 되니까 내가 있을 때 팔아야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때 그 양반은 대기업 L사·G사 등을 접촉했다. 내가 퇴원하니 나보고 "당신 나이도 있는데 이제 다 팔고 좀 편하게 살아" 그러더라. 한 대기업 회장은 나보고 "이 아무개보다 500억 더 줄 테니 좀 파시오"라고 했다. 계산해보니 총 1200억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일을 해야 살지"라고 답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직원들이 떠올랐다. 내가 돈 받고 나면 이놈들은 어디로 인수되든 다 '모가지'일 게 뻔했다. 집에 와서 부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니 "나 1200억 필요 없으니 알아서 하시오"라고 했다. 그때 용기를 얻어서 팔지 않고 당시 펀드 타령하던 오희택 보고 "펀드 얻어 와봐라" 해서 결국 대기업으로부터 회사를 지킨 거다. 그런데 그 펀드가 들어와 회사 다 망쳤다. 차라리 병원에 있을 때 죽는 게 나았다는 생각, 그리고 이 아무개를 미워하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무개가 나가고 싶어 했던 마음을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회사고 뭐고 다 버리고 싶다.

김종신 당시 한수원 사장에게 돈을 건넨 이유는 무엇인가.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전혀 로비할 이유가 없었다. 왜? 우리 기술이 가장 뛰어났다. 40년 동안 고장 한 번 없었다. 이거 쉬운 것 아니다. 로비 때문에 준 것이 아니다. 김종신이 돈을 요구했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 임원들이 집에 찾아와서 "회장님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하더라. 김종신이 시킨 것이다. 김종신은 안전 기준을 낮추면서까지 다른 기업들을 참여하게 하겠다고 했다. 지금의 안전 기준으로는 우리가 독점을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지금 '로비의 귀재'로 거론되고 있지 않나.

난 엔지니어다. 기술자다. 세금 잘 낸다고, 원자력 일 잘한다고 석탑·동탑 훈장도 받았다. 나 기술고시 1회 수석 출신이다. 내가 만든 기술로 장영실상도 받았다. 기술 개발하라고 외국에서 사정해도 기술 유출될까 봐 안 하고 전쟁 속인 이라크 가서 폭탄, 불발탄 치워주면서 원전 수주하고 그랬다. 내가 이 회사를 어떻게 키운 줄 아나. 내가 바다에 가면 멸치들이 "할아버지 오셨어요" 하면서 반긴다. 수처리로 유발되는 바다 오염, 지금 내가 개발한 기술로 다 막는다. 환경부에서 상줘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자꾸 로비로 일군 회사로 인식되어 답답하다. 한수원 간부 집에서 나왔다는 6억원도 우리 돈인 것처럼 오보가 났는데 결국 대기업 돈이란 게 밝혀졌지 않나. 지금은 그냥 솔직히 회사 폭파시켜서 태평양에 던져버리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외국에 다 팔아넘기고 싶은 심정이다.

기술력 1위 알짜 기업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이유

한국정수공업 전경. ⓒ 시사저널 자료사진

직원 수 400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인 한국정수공업이 어떻게 'MB 정권 게이트'로 번진 원전 비리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됐을까. 원전업계에서 한국정수공업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실이 탄탄한 '강소 알짜 기업'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원전 수처리 분야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입증된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원전 수처리 기술이란, 물로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물이 원자로를 식히면서 이온 등 여러 가지 물질이 섞이게 되는데 이를 '순수(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도 높은 물)'로 만드는 기술이 원전 수처리 기술이다. 한국정수공업은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한국정수공업은 '기술 지향 기업'이다 . 이규철 회장 자신이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술을 중시해왔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비기술 부서가 섭섭해할 정도"다. 순수를 만드는 작업은 MDI라는 기술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를 개발한 것도 이 회장이다. MDI 기술을 만들기 위해 직접 러시아의 한 실험실에 들어가 눈으로 설계를 익혀온 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기본 도안을 정리했다고 한다. 안전이 중요한 원전 수처리 사업은 입찰에서부터 안전성 조건을 맞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이를 충족시키는 기업이 한국정수공업이다. 이 회장이 "로비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이자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는 원성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짜배기 기업이니 만큼 이를 노리는 대기업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그중 한 사례를 들었다. "대기업 고위 관계자가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맥주를 마시자고 하더라. 그러더니 '한국정수공업이 한전하고 계약하고 있는 것이 150억원인가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일은 한국정수공업이 계속하고 이름을 우리로 바꿔달라. 그러면 250억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맥주병을 들고 '우리 회사 먹고 싶어? 어디서 감히'라며 아주 호통을 친 적이 있다."

잘나가던 한국정수공업은 현재 경영권 분쟁 중에 있다. 2010년 정부가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만든 신성장 동력 육성 펀드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당시 사모펀드가 이사회를 장악하는 대신 경영권과 인사권은 이 회장이 갖는다는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이사회가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며 이 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했고, 이와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엄민우 기자·정리│조유빈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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