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죽음으로 가는 길, '음주 수영'

한세현 기자 2013. 8. 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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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섬뜩합니다. 제목부터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음주 수영'에 대해 취재하는 내내 이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다 보면, 사건·사고를 자주 취재하게 됩니다. 모든 사건·사고들은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주 수영'으로 인한 사고만큼 속상한 일도 드뭅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이런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술만 마시면 왜 물에 들어갈까?

그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술을 마시면 물로 뛰어들까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술, 알코올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의학전문의인 윤방부 박사는 "술의 가장 기초적인 효과는 마취 기능이다."라고 했습니다. 술이 마취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 '뇌'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과 제어기능을 맡는 '대뇌'가 주된 목표물입니다. 이 대뇌가 마비되면, 행동억제력과 판단력이 저하됩니다. 반대로, 대뇌가 통제하고 있던 우울감과 충동성을 높아지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내가 이 일을 저질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시쳇말로 '물불 안 가리고 덤비게' 되는 것이죠. 이미 술이 특정 행위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줄여준다는 연구도 많이 발표됐습니다. 실제로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익사 사고의 70%가 음주와 관련돼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술을 마시게 되면 충동성이 높아져 '겁 없이' 물에 풍덩 뛰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음주 수영의 가장 큰 위협은 '심장마비'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갈 때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심장마비'입니다. 여름철엔 기온이 높아 우리 몸은 열을 내보내기 위해 혈관을 느슨하게 확장합니다. 혈관의 표면적을 넓혀서 열을 빨리 내보려는 조치입니다. 거기에 술까지 마시면 열이 더 나게 되고, 이에 맞춰 혈관은 더 많이 확장됩니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우리 몸은 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늘어난 혈관을 매우 빠른 속도로 수축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순간적으로 굉장히 높은 압력이 심장을 강타하게 됩니다. 심장마비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응급의학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혈압이 얼마나 높아지는지 측정해 봤습니다. 평소 137(mmHg)인 한 남성에게 소주 반병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30분 뒤 찬물에 발을 담그게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도 그대로였던 혈압이 발을 물에 담그자 바로 153(mmHg)까지 올라갔습니다. 술을 마시고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입니다. 만약 온몸을 물에 다그면, 그 속도와 강도는 훨씬 더 크고 강할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특히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40대 이상 고위험 군으로 분류됩니다. 물놀이 사고의 30% 정도는 40대 이상에서 일어나는데, 이들의 주요한 사망원인이 바로 심장마비입니다. 이처럼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행위는 급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음주 수영의 두 번째 위협, '무뎌진 균형 감각'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알코올의 기본 기능은 '마취'입니다. 일단, 알코올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뇌 중추신경계에 진정작용을 일으킵니다. 한마디로 뇌가 마취되는 거죠. 그럴 경우,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대뇌가 마비되면서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해변에서 얼마나 멀리 들어왔는지, 스스로 헤엄쳐나갈 수 있는 기구나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새 극단적인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감각도 떨어지게 됩니다. 물속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쉬워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음주 수영 구조 사례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술을 마셨지만, 물에 들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을 줄 알았어요. 물도 그리 깊지 않아서 가슴 정도 높이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파도가 약하게 쳤는데 한순간에 균형을 잃고 넘어졌어요. 말 그대로 몸 따로, 마음 따로였습니다. 그러다가 물 한번 마시고 나니, 정말 정신이 없었죠. 이렇게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었구나 싶었습니다." 이처럼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새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됩니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저체온증'

끝으로 저체온증도 문젭니다. 술을 마시면 술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열(대사 열)이 발생합니다. 그 열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 우리 몸은 혈관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체온을 떨어뜨리게 되는데, 물 안에 있으면 체온은 물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술을 마신 상태에선, 이렇게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열 때문에 덥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저체온증이 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체온이 떨어졌다는 걸 느꼈을 땐 이미 늦습니다. 그땐 근육에서 갖고 있던 열이 다 빠져나가, 근육이 평소처럼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주 한 병을 마시면 사고 위험은 60배로 높아져

이 같은 이유로 음주 수영으로 발생한 수난 사고는 해마다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갔다가 숨진 사람만 25명에 이릅니다. 또, 익사 직전 구조된 경우도 50건이나 됩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 기관의 연구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를 넘을 때, 즉 소주 반병을 마시면 익사 위험성이 10배나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소주 한 병을 마셨을 때,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5%를 넘을 경우 사고 위험은 무려 60배로 높아집니다.

이처럼 음주 수영으로 사고가 계속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해 해수욕장 등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영역을 국가가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반론에 부딪혀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학계를 중심으로는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일정 부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음주 수영으로 인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는 표시판과 경고판을 설치하고, 그런 사고 위험지역에서 음주 수영을 하다가 구조될 땐 사후에라도 과태료를 물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징벌적 수단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음주 수영에 대한 책임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주 수영, '예방'이 최선책

결국, 음주 수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술을 마시면 물에 들어가지 않는 상식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간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영선수는 물론, 전문 구조요원도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몸이 소주 한 잔을 분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입니다. 결국, 소주 다섯 잔을 마셨다고 가정하면, 5시간 뒤에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따라서 누군가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주변에서 미리 말려야 합니다. 또, 굳이 음주와 수영을 같이 즐기고 싶다면, 수영을 충분히 한 다음 술을 마셔야 합니다. 나와 주변 사람을 위해 술을 마시면 물에 들어가지 않는 '상식'을 지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취재과정에서 소방방재청, 조영덕 교수(고려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이준영 교수(서울대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병대 교수(한양대 행정학과)의 자문을 받았습니다.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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