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들여온 올레, 나가사키 하늘을 품다

2013. 8. 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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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여행

일본 규슈 올레 히라도 코스와 젊은이들의 인기 테마파크로 변신한 하우스텐보스

제주올레가 코스 개발 조언한규수 올레 히라도 코스 13㎞숲과 하늘·바다·초원 어우러져맑은 날엔 대마도까지 탁 트인다

"이 가와치 언덕길에 와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하늘의 계단'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일본 규슈 서북쪽 나가사키현 히라도 시의 관광상공부에서 근무하는 사쿠에 요시타카는 제주의 오름처럼 둥글고 푸른 언덕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까지 가닿을 정도로 긴 계단은 아니지만, 꼭대기에 올라서면 정말 하늘에서 보는 풍경이 이럴 테지 싶을 정도로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규슈 올레의 히라도 코스는 모두 13㎞에 걸친 4~5시간짜리 여행길로, 히라도항 교류광장에서 출발해 사이쿄지 절, 가와치 언덕, 자비에르 기념교회를 지난 뒤 온천 족탕으로 마무리된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올레길

바람이 불면 우수수 소리를 내며 풀잎들이 쓰러지는 가와치 언덕은 사이카이 국립공원 한가운데 표고 200m의 언덕으로, 약 30㏊에 걸쳐 초원이 펼쳐져 있다. 숲과 하늘, 바다, 초원이 한데 어우러진 평화로운 정경에 맑은 날엔 대마도(쓰시마섬)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경관을 자랑한다. 사쿠에는 "가을이면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360도로 보이는 파노라마 전망이 훌륭해 올레꾼들에게도 가장 인기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히라도 코스는 지난해 2월 ㈔제주올레가 코스 개발 자문 및 길 표지 디자인을 제공해 만든 규슈 올레의 일부다.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모양의 구조물(간세)이 가와치 고개에 낯익은 모습으로 서 있는 까닭이다. 히라도 코스에 가려면 나가사키 공항에서 렌터카(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를 빌리거나 사세보를 거쳐 버스를 타야 해 교통이 편하지 않다. 그러나 해변 온천호텔이나 노변 온천족탕에서 피로회복과 힐링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산·해변·숲길과 유적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숲속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면 골목길이다. 나무로 만든 등대 모양의 가로등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자연과 전통이 빚어낸 조화가 오랜 걸음에 지친 나그네의 마음을 토닥인다. 골목 한 귀퉁이에 서니 교회 첨탑과 절이 같이 보이는 조망 포인트가 있다. 그 유명한 '교회와 절이 같이 있는 지점'이다.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 황일휘 부소장은 "400년 전 네덜란드·포르투갈 선박들이 히라도에 들어오고 천주교가 처음 유입됐지만 모진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불교가 대세이던 때라 이곳은 가톨릭 마을이 아니라는 뜻으로 절을 지어 중앙의 권력에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2년 천주교 금지령을 내린 뒤 몰래 믿음을 유지하던 교인들은 1873년 신앙의 자유를 회복했다. 1931년 건립된 '성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기념교회'는 1550년 자비에르 신부의 선교활동을 기념해 지은 것이다.

히라도 시의 또 하나의 명물인 '다비라 성당'은 일본 교회 건축의 일인자인 데쓰카와 요스케의 걸작으로 1918년 완공한 붉은 벽돌 양식의 교회다. 일본 중요문화재이며 유네스코 등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결혼 뒤 50년 이상 이곳에 다니고 있다는 하마사키 다에코(80)는 "선조들로부터 이어진 신앙의 마음으로 모두가 손수 만들었다. 성당 벽돌을 찍어내 조개껍질을 태운 뒤 일일이 빻아 이어붙였고, 뒷산에서 나무를 벌목해 22명의 여성이 손수레에 직접 실어날랐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성당 옆 공동묘지엔 그 옛날 이곳을 거쳐간 신자와 수녀들이 고이 잠들어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고요한 언덕은 방문자들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으로 이끈다.

체험형 테마파크로 거듭난 하우스텐보스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곳답게, 나가사키 곳곳에는 유럽의 향기가 배어 있다. 1992년 문을 연 사세보현의 하우스텐보스는 '숲속의 집'을 뜻하는 네덜란드 말로, 17세기 유럽을 그대로 본뜬 숙박 가능한 테마파크다. 네덜란드와 똑같은 지형에 중앙역, 시청광장 시계탑, 여왕의 궁전뿐만 아니라 소방서, 경찰서, 영화관까지 갖췄다. 도쿄돔 33개가 들어가는 152㏊의 크기로 모나코 공국과 면적이 비슷해 자전거, 택시,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모든 건물이 옛 유럽 양식이라 개장 초부터 한국 신혼여행객들의 웨딩사진 촬영지로 이름을 떨쳤고 최근엔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소개되기도 했다. 서구식의 고풍스런 고급 호텔이 4개, 개인 별장과 요트정박소까지 있다. 네덜란드 교회 종탑을 재현한 105m의 '심벌타워' 꼭대기에선 오무라 만이 보인다. 2차대전 때 일본이 패망한 뒤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송환해 내려놓은 곳이다.

원래 황폐한 매립지였던 이곳은 치밀한 조사를 거쳐 5년 동안 건물을 짓는 한편, 40만 그루의 나무와 30만 포기의 꽃을 심어 생태계를 되살려냈다.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오수는 화장실 세척수와 수목 살수용으로 쓰며 '에코 시티'를 지향한다. 파크 가운데로는 오무라 만의 해수를 끌어들인 전체 6000m 길이의 운하가 가로지르고 있다. 물길 사이 곳곳의 정원에서는 호텔 임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손수 건물 주변의 잡풀과 정원수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국인 직원 이종근씨는 "여왕의 궁전인 '팰리스 하우스텐보스'를 지을 때 원래 왕궁 크기보다 5㎝ 정도 차이가 나자 새로 부수고 정확히 맞춰 지었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실제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까지 개장식에 참석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팰리스 하우스텐보스' 궁전 중앙부 '벽화의 방'에 그려진 돔형 천장에는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화가가 4년에 걸쳐 그린 일본 최대 벽화가 있다. 유럽 역사와 전통, 인류의 미래까지 조망한 대작이다.

요즘 하우스텐보스는 체험형 테마파크로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2010년 새단장을 하고 각종 뮤지컬, 조명쇼(일루미네이션쇼) 같은 즐길거리를 다양하게 들여온 덕이다. 3D체험관, 스크린 경마, 공포체험관, 야외단련장을 개장했고 낮에는 꽃축제, 밤에는 야간 퍼레이드와 가면무도회 등을 열면서 발길을 붙잡는다. 10월12일부터 20일까지 여는 '가드닝 월드컵'은 특히 유명한 행사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나오는 '사우전드 서니'호를 재현한 배를 크루즈 상품으로 만들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성장한 캐릭터들을 배 곳곳에 전시해 놓아 아이들은 만화 주인공이 된 양 캐릭터의 팔을 끼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젊은이들도 이런 체험형 건물과 놀이기구에 흠뻑 빠졌다. 친구와 함께 3박4일 일본 여행을 왔다는 강경민(22·대학생)씨는 "3D체험관과 공포체험관, 미로 같은 즐길거리가 특히 재미있었다. 나가사키에 오자마자 배를 타고 들어왔는데 한나절밖에 있을 수 없어 유럽풍의 예쁜 건물들은 못 보고 떠나게 돼 아쉽다"고 했다.

나가사키(일본)/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나가사키 여행정보교통편

인천에서 일본 나가사키까지 항공편은 7월 취항한 진에어 한곳이다. 인천~나가사키(1시간20분) 직항이 일주일 세번(수·금·일 출발) 왕복운항하며 삼각김밥과 약밥 같은 간단한 기내식을 제공한다. 운임은 성수기·비수기에 따라 왕복 최저 15만~22만원 선. 나가사키에서 사세보역까지는 30분마다 한번씩 버스가 다닌다. 히라도로 가려면 사세보를 거쳐 가야 한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면 1300㏄ 차량 기준 시간당 6500엔 정도다. 나가사키 공항에서 하우스텐보스까지 오션라인 배편(하루 5편)을 이용할 수 있다.

현지 정보

여름엔 고온다습하지만, 가을에는 선선하다. 한국과 기온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압이 110볼트로 어댑터가 필요하다. 나가사키에서 사세보나 히라도까지 가는 데는 승합 점보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

먹을거리

나가사키에는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100년전 일본에 온 '나가사키 짬뽕'은 해산물을 바탕으로 한 시원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미국 해군기지가 있는 사세보시의 명물은 '사세보 버거'다. 1950년께 사세보에 주둔한 미국 해군이 만드는 법을 전수해 만들기 시작한 일본 최초의 햄버거다. 패티가 유독 두툼하고 크기가 커 '빅맥'을 먹을 때처럼 입을 쩍 벌려야만 한입 겨우 베어물 수 있다. 나가사키 카스텔라는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가 전한 과자를 나가사키에서 독자적으로 계승·변형한 것이다. 달걀을 많이 사용한 반죽과 굽는 전통의 방법 차이로 유달리 부드럽고 촉촉하며 바닥에 깔린 설탕 결정이 특징이다.

문의

일본정부관광국(welcometojapan.or.kr),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 (02)730-2192

[관련화보] 규슈 올레 히라도 코스와 하우스텐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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