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영준 차관에 줘야 한다며 돈 요구했다"

안성모·조해수·엄민우 기자 2013. 8. 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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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2일,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대가성 금품수수 혐의를 받아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은 8월3일, MB 정권서 그랜드코리아레저(GKL) 감사를 지낸 이윤영씨를 긴급 체포한 후 다음날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그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이씨는 원전 등에 수처리 설비를 공급해온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직 출신인 이씨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하면서 검찰의 칼날이 정치권으로 향할지가 주목된다.

< 시사저널 > 은 '원전 비리' 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한국정수공업을 둘러싼 금품 로비 의혹을 집중 취재해왔다. 특히 MB 정권 당시 권력 실세들의 개입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 시사저널 > 은 1240호(7월22일자) '"내가 힘써줬으니 약속한 돈 달라"' 보도를 통해 이씨가 청탁받은 로비 내역과 함께 대가에 대한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내용의 문건을 한국정수공업측에 팩스로 보낸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이후 이씨가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으면서 당초 < 시사저널 > 에서 제기했던 의혹들이 하나둘씩 외부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 시사저널 > 취재진은 최근 문제의 이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수신인이 '이규철 대표이사님'으로 되어 있는 이 문건은 2012년 5월1일에 팩스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이사는 당시 한국정수공업의 회장이었다. 이씨는 이 문건에서 '귀사의 오희택 부회장이 수처리 설비와 관련해서 한수원의 기존 계약을 유지시켜 달라,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수출의 수처리를 하게 해달라고 자주 찾아와 부탁한 바 이를 수락하고 일을 성사시켜서 한국정수공업이 한수원 수처리 관리와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수출 수처리를 수주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팩스

"막다른 골목 몰리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나" 협박성 글도

한국정수공업 부회장 명함을 갖고 있는 오씨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건설분과 위원장 출신이며, 이씨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노동분과 부위원장과 총간사를 역임했다. 이씨에 앞서 오씨도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현재 구속된 상태다. 이씨는 문건에서 '그동안 선배이면서 오래도록 당 생활을 같이한 사람으로서 신뢰를 가지고 믿고 하자는 대로 다 해주었다'고 밝혔다.

2010년 당시 ㅇ사가 한국정수공업 인수를 시도할 때 이를 막아달라는 요청도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씨는 'ㅇ사 소재 지방국세청을 통해 압력을 넣어달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으며, 인수 주간사인 ㅅ회계법인 담당 상무가 계속 일을 추진한다하여 ㅅ회계법인 고위층을 통하여 해결하였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러한 글을 보낸 이유와 관련해 '계약을 성사시키고 난 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현재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따라 중간 역할을 해온 오씨를 신뢰할 수 없어 이 대표에게 직접 '약속 이행'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느냐', '입증할 자료도 있다', '관계기관과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내용을 다 밝히고 싶은 심정이다' 등 협박성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이씨가 말하는 '약속'은 과연 무엇일까. 원전 로비의 대가로 한국정수공업은 미국 법인 N사와 컨설팅 계약을 맺는 형태로 72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에 걸쳐 5억원과 8억원이 넘어 갔는데, 나머지 돈이 지급되지 않자 이씨가 이 대표에게 직접 요구를 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주목되는 부분은 문건에서 한수원 계약 유지와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수출 수주를 언급하면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했는지 글에서 밝힐 수 없지만 이규철 대표님이 더 잘 아실 것으로 믿는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씨 자신 뒤에 MB정권 실세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 은 앞선 보도에서 MB정권 실세의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2007년 대선 당시 MB캠프에서 이씨와 함께 활동한 후 '왕차관'으로 불리며 권력 핵심에 있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다.

< 시사저널 > 은 추가 취재 과정에서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이씨가 '박영준 차관에게 줘야 한다'며 돈을 요구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로비 자금 창고로 의심되는 미국 법인 N사에 대해서도 집중 추적했다. < 시사저널 > 은 한국정수공업을 둘러싼 '원전 비리' 의혹의 실체를 8월12일자로 발간하는 제1243호를 통해 자세히 보도할 예정이다.

안성모·조해수·엄민우 기자 / as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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