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내려서 놀고 버스 타면서 쉬며 '제주 한바퀴'

2013. 7. 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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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여행
완행버스로 이동하며 즐기는 제주 여행…나홀로 여행자들에게 인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노선도 들고 제주 동해안 일주
주요 관광지 보면서
지역주민들과 정감 나눠

버스여행의 장점은 저렴한 비용과 여유로움이다. 버스 안과 정거장에서 겪게 되는, 예상치 않은 감동은 덤이다. 대표적인 국내 여행지이자 가장 이국적인 섬나라 제주도 일부를 시외버스를 타고 둘러봤다. 차 시간만 잘 맞추면, 몇천원(1회 1000~3000원) 요금으로, 원하는 제주 지역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섬 해안을 따라 동쪽·서쪽으로 아주 느릿느릿 서귀포를 향해 달리는, 거의 모든 정거장마다 서서 주민을 태우고 내려주는 완행버스들이 20분마다 우리를 기다린다.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려, 보고싶은 곳 둘러보고 놀고 먹고 쉬다가 다시 타고 또 내리며 즐기는 버스여행이다. 가자,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제주공항 2번 게이트로 나가,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만 가면 된다.

지난 7월11일, 제주시외버스터미널 매표소 앞. 여행자 차림을 한 대여섯명이 서울 지하철노선도를 닮은(하지만 훨씬 복잡해 보이는) 대형 ‘시외버스 노선도’를 올려다본다. 주로 배낭을 멘 젊은층인데, 각각 말도 없이 뚫어져라 노선도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모두가 ‘나홀로 여행자’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 노선도가 중요하다. 제주도내 거의 모든 버스 노선과, 버스가 멈춰서는 모든 정거장 이름이 거기 깨알같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작정했던 대로, 제주도 동쪽 1132번 지방도를 따라 도는 동해안 일주 시외버스를 타고, 섬 동북부 해수욕장과 볼거리들을 둘러본 뒤 표선에서 읍면순환버스를 갈아타고 가시리 마을까지 여행하기로 했다.

“먼저 서일주 노선 버스를 탈 겁니다. 6박7일간 버스로 섬을 한바퀴 돌며 둘러보려고요.” 터미널 앞에서 마주친 ‘나홀로 버스여행자’ 함희주(25·강원대 스토리텔링과 4년)씨는 버스로 이동하며 하루 서너곳 정도씩을 둘러보고, 잠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잘 계획이라고 했다. 제주도 여행이 3번째라는 그는 “여유롭게 천천히 이동하며 제주도를 깊이 느끼고 싶어서 버스여행을 선택했다”고 했다.

터미널 옆 골목 허름한 기사식당에서 시원한 자리물회 한그릇을 해치우고, 동일주 노선(동해안 일주도로 노선) 서귀포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첫 목적지는 조천읍(1000원). 7명뿐이던 승객은 서너 정거장 거치면서 아주머니들, 학생들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대개 교통카드로 찻삯을 계산했다. 운전기사 조훈일(52)씨는 “전국 공용 교통카드로 승차할 수 있다”며 “2회까지 무료 환승(한시간 이내)이 가능하다”고 했다. 차내 에어컨도 잘 나오고, 좌석·안전띠·커튼도 온전하고 깨끗한 편이다.

조선시대 육지로 오가는 관문이었던 조천읍에 내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조천진 성터와, 제주로 유배 온 이들이 북녘을 바라보며 임금을 생각하고 한양에서의 소식을 기다렸다는 망루 연북정을 둘러보고 다시 차에 올랐다. 정거장을 거칠수록 학생들 수가 늘어났다. 얼음과자를 하나씩 입에 문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차에 오르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야들아, 느들 쭈쭈바 다 묵고 껍디긴 꼭 갖구 내리거라 잉.” 앞쪽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어르신이나 물건 든 아주머니들이 탈 때마다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준다. 할머니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많다. “어디 갔당 왐수과?”(어디 다녀오십니까?) “종애 아판 병원 갔다 왐수다.”(다리 아파서 병원 갔다 옵니다) 비 오는 날 손님은 온통 할머니들이라고 한다. “밭일 못 나가니, 비 올 때 병원 다녀오기 위해서”다.

‘물 좋다’는 함덕서우봉 해수욕장에서 차를 내려 눈부신 바다 빛깔과 물놀이하는 해수욕객들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은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 북촌리 선사 주거지 유적을 찾았다. 기원전 1000년 전부터 청동기·철기시대에 걸쳐 사용한, 자연동굴 주거지 유적이다. 다음은 풍력발전기와 대형 요트가 어우러진 김녕성세기 해수욕장. 함덕서우봉 해변이 인파로 붐비는 도심 속 해수욕장이라면, 김녕성세기 해변은 한적한 시골 해수욕장이다. 두 곳 모두 “모래를 새로 깔아서”(파라솔 대여점 주인) 해변 가장자리 물빛은 다소 탁하지만, 바로 앞바다 물빛은 눈부신 옥빛·쪽빛이다. 파라솔 대여 1일 1만5000원.

버스는 대개 20분 간격으로 시간 맞춰 나타난다. 제시간 지켜 도착하는 시외버스는 지역 주민들에게 ‘주문배송 차량’이 되기도 한다. 급한 물건을 주문하고 버스편으로 보내달라고 한 뒤 정거장에서 기다리면, 기사 아저씨가 이름을 확인하고 전해준다.

10만~30만년 전에 형성된 용암동굴 만장굴(세계자연유산)이나, 500~800년 된 비자나무 2800여그루가 우거진 비자림(천연기념물) 등 일주도로에서 좀 떨어진 관광지에 들를 때엔 택시를 이용했다. 각각 순환도로 정거장에서 내려 ‘김녕~만장굴~비자림~세화’를 도는 읍면순환버스를 타야 하지만, 배차 간격이 1~2시간으로 뜸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면 택시를 불러 타는 게 낫다. 전화번호 안내(064-114)에서 위치를 말하면 택시회사 번호를 알려준다. 만장굴 4000원, 비자림 7000원. 두 곳을 모두 둘러볼 경우엔 만장굴에서 곧장 비자림까지 읍면순환버스 또는 택시로 이동하면 된다.

구좌읍 세화리의 제주해녀박물관은 강인한 제주 여성의 상징인 해녀(잠녀)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곳. 다시 버스를 타고 성산일출봉 입구(성산리사무소 하차) 거쳐, 대규모 해양테마파크 아쿠아플라넷(고성리 하차 택시 4000원)을 찾아갔다. 아쿠아플라넷에선 큰돌고래·바다코끼리·바다사자·펭귄·물개 등 다양한 해양생물 관찰은 물론, 초대형 수조에서 진행되는 제주 해녀 물질공연(하루 4회), 잠수복을 입고 메인 수조에 들어가 바닷속을 체험하는 ‘시워크 프로그램’(하루 4회), 큰돌고래 등 해양생물들을 만져보며 먹이를 주는 ‘브이아이피(VIP) 투어’ 등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펭귄’, ‘춤추는 물범’, ‘달리는 수달’ 등 공연도 있다. 입장료 3만8400원.

김영갑 갤러리(삼달2리 하차 도보 15분)를 둘러보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해녀박물관을 관람하고 왔다는 외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인 숀(30)은 “해녀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며 “이틀밖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제주도는 신비로 가득 찬 섬 같다”고 말했다.

표선수협에서 내려 일주도로 여행을 마무리짓고, 버스를 갈아타고 조선시대 말목장으로 이름난 가시리 마을을 찾았다. 표선수협 옆 동부택배 앞에 가시리행 버스를 타는 정거장이 있다. 대개 1시간10분 간격이다. 가시리는 조선시대 최상급의 제주말을 길러내던 말목장(갑마장)이 있던 마을. 최근엔 오름들과 볼거리를 묶은 갑마장길(20㎞)이 만들어져 오름 탐방과 트레킹을 해볼 만하다. 가시리 지역엔 대표적인 오름 중 하나인 따라비오름을 비롯한 13개의 오름이 있다. 최근 문 연 조랑말체험공원(조랑말박물관)의 승마체험도 인기다. 가시리 사무소에서 ‘가시리 문화지도’와 ‘갑마장길 안내도’를 얻을 수 있다.

이틀에 걸쳐 시외버스를 거듭 갈아타며 둘러본 제주시~가시리 여행은, 멋진 제주도의 경관과 함께 따뜻하고 친절한 제주도민들의 일상 일부를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한 지리·역사·문화 여행이었다.

제주/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제주 버스여행 정보제주도 버스 노선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는 동서 일주 노선 말고도, 평화로·번영로 노선 등 7개의 노선이 있다. 그리고 지역별로 운행하는 읍·면 순환버스들(1~2시간 간격 운행)이 있다. 시간을 맞춰 각 노선을 연계시키면, 제주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계버스 배차 간격이 긴 곳은 택시를 불러 탈 수 있다. (064)114에 위치를 말하면 택시회사 번호를 안내해준다. 제주공항 관광안내센터와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앞 관광안내소에서 버스여행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먹을 곳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옆골목 현옥식당(두루치기·자리물회 등) 등 허름한 기사식당들이 많다. 말고기 전문식당도 있다. 성산읍 오조리 오조해녀의집 전복죽(사진), 표선면 가시리 가시식당 등의 순댓국·돼지고기. 묵을 곳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의 게르 게스트하우스 1인 2만원, 1동(6인 기준) 임대 10만원. 조랑말 캠핑장 캠핑사이트 1만5000원, 캠핑장비세트(4인용) 일체 대여 6만원. 여행 문의 제주안내 콜센터 (064)120,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 앞 관광안내소 (064)728-3920, 조랑말체험공원 070-4145-3456, 가시리 사무소 (064)787-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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