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도 마다한 섬, 대체 뭐가 있는 걸까

2013. 7. 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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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혜진 기자]

굴업도 덕물산 좀팽나무 언덕에서 '박명숙댄스씨어터' 무용수들이 '또 하나의 시선'을 공연하고 있다.

ⓒ 심혜진

5월의 어느 주말, 마감시간을 넘긴 기사를 정신없이 쓰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민운기 '스페이스 빔'(인천 동구 창영동 7) 대표였다. 굴업도에서 춤 공연이 열리는데 취재를 하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생각을 해보겠노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굴업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핵폐기장, 두 번째는 골프장이다. 내게 굴업도는 '문제의 섬', '접근 금지의 땅'이었다. 다른 신문사 기자에게 전화를 해보니, 그는 안 간단다. '그래, 그곳은 갈 수 없는 곳이야' 당시 내 정서는 이랬다. 그런데 딱 불편한 그 마음만큼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 한 번은 그곳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후자 쪽이 내 마음의 51%를 차지했다.

6월 21일 오전 8시 40분, 인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옅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이번 굴업도 춤 공연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대표 김원)이 주최한 것이다. 숙소와 배표 예약 때문에 몇 차례 통화했던, 박민영 실행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멀리서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일행 중 아는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1박2일을 함께할 이들이다. 명함을 돌리며 멋쩍은 인사를 나눴다

배 탈 시간이 됐다. 1차 목적지는 덕적도다. 굴업도 주소는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이다. 1시간 20분 동안 이동한 후 덕적도에서 다시 굴업도 가는 배로 갈아타야 한다. 배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내 잠이 쏟아진다. 30분 전 마신 멀미약 때문이다. 잠결에 본 바다는 환하고 잔잔했다. 주위가 부산스러워 눈을 뜨니 사람들이 짐을 챙기고 있다. 내릴 때가 됐나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선착장을 빠져나왔다.

굴업도도 처음이지만, 덕적도 역시 처음이다. 다음 배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박민영씨가 서로 인사를 나누자며 일행을 모은다. 눈치를 보아 하니, 몇몇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다. 무용수들은 선 자세부터가 다르다. 나 말고 다른 매체 기자들도 있다. 한 부부는 일곱 살 아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첼로 연주자도 있고, 여행사에서 온 이도 있다. 참가자 구성이 정말 제각각이다.

굴업도를 지키겠다고 나선 이유

배 시간이 남아 김원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 대표의 본업은 건축가인데, 그는 환경운동으로도 잔뼈가 굵다. 그는 굴업도 땅을 사들여 골프장으로 만들려고 한 씨제이(CJ)그룹과 이를 방관한 인천시를 강하게 비판했다. 환경을 보전해야 할 곳이 있다면 어디든 함께 할 거라고 했다. 내가 굴업도에 가보지 않아서일까? 흔한 것이 골프장인데, 굴업도는 왜 안 된다는 걸까. 문화예술인들이 굴업도를 지키겠다고 나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머리로 짐작을 해 본다. 1990년대 중반 굴업도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정부가 방사성핵폐기물 처리장을 이곳에 건설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덕적도 주민들은 이를 결사반대했다. 정부는 덕적면 주민들에게 지역발전기금으로 500억 원을 지급하고, 덕적면을 관광단지로 집중 개발할 것임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덕적면 주민과 인천시민은 굴업도를 지켰다. '돈'으로도 안 통하는 뭔가가 굴업도에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궁금할 뿐이다.

오전 11시 20분, 다시 배에 올랐다. 굴업도 가는 배는 두 종류다. 주변 섬을 여기저기 들러 돌아가는 완행 그리고 바로 굴업도로 가는 직행이 있다. 하루는 완행, 하루는 직행 이렇게 날짜마다 다르다. 이날은 다행히 직행이 운행되는 날. 배에 오르자 다시 잠이 쏟아진다. 1시간을 달려 드디어 굴업도에 도착했다. 멀미는 다행히 하지 않았다. 굴업도 서인수 전 이장이 트럭을 몰고 마중을 나와 있다. 짐칸에 올라탔다. 울퉁불퉁한 땅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르막을 오르는 사이 언뜻언뜻 굴업도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서 전 이장이 운영하는 굴업도민박에 짐을 풀었다. 그의 아내가 차려주는 밥도 먹었다. 쌈 채소와 된장국과 게장, 나물이 상에 가득했다. 재료는 모두 굴업도에서 직접 채취한 것이란다. 든든히 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오후 2시가 돼 첫 탐방을 시작했다. 연평산에 오를 거라고 했다. 누군가 '풀밭을 지나니 긴바지를 입고, 강한 햇볕에 대비해 손수건이나 스카프로 목 뒤를 가려주는 게 좋다'고 알려준다. 수문출판사 이수용 대표다. 그는 산과 자연, 환경을 주제로 한 책을 만들어온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참가자 중 고령에 속하는 그가 직접 굴업도 곳곳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문출판사 이수영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굴업도 곳곳을 설명하고 있다.

ⓒ 심혜진

날파리들, 새끼 뱀 두 마리...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증거

햇볕은 강하게 내리쬐고 섬이라 더욱 습했다. 이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날파리다. 몇 마리가 자꾸 눈앞을 맴돈다. 나중엔 손을 휘젓기도 귀찮아 그냥 뒀더니 눈꺼풀에 척 달라붙었다. 육지 날파리보다 훨씬 단단한데다 잘 떨어지지도 않아 한참 눈을 깜빡이며 애를 먹었다.

연평산으로 가는 길은 언덕을 몇 개 지난다. 무심코 길을 걷다 화들짝 놀랐다. 발아래에 새끼 뱀 두 마리가 죽어 있다. 아마 차에 깔린 모양이다. 이 대표가 "생태계가 살아있는 땅이란 뜻이다. 낯선 야생동물을 만나면 반가워해야 한다"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패총도 만나고, 슬픈 전설을 가진 바위섬도 만났다. 모래밭엔 개미지옥도 있다. 개미지옥은 개미귀신이 파놓은 깔때기 모양의 구멍이다. 여기에 개미가 빠지면 헤어나지 못해 결국 개미귀신에게 잡아먹힌단다. 이것도 전설인 줄 알았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명주잠자리 애벌레를 개미귀신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땅을 파놓은 것이라 한다.

한참 가다보니 동섬과 서섬을 잇는 모래언덕이 나왔다. 이 모래언덕을 목기미해변이라 부른다. 목기미해변을 가운데로 왼쪽과 오른쪽은 바다다. 양쪽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처음 보는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는데, 저만치서 '풀썩'하고 물고기가 뛴다. 숭어다. 해변을 지나 풀이 가득한 곳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저 멀리에서 사슴이 언덕을 내달린다. 이 대표는 "사슴이, 우리가 오는 걸 보고 미리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말 아는 게 많은 것 같다. 풀이며 곤충, 나무의 생태와 지형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수첩에 받아 적자니 놓치는 게 많아, 그대로 녹음해 두고 싶다. 그의 이야기론, 곳곳에서 만나는 대나무는 섬 생태에 대단히 중요하단다. 바닷바람이 실어오는 염분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는 사실 아까시 나무인데, 이것이 산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도 오해다.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 내 산이 벌거숭이가 됐을 때, 오히려 이 나무를 심으면 번식도 잘 되고, 뿌리에 혹박테리아가 살아 땅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한다. 게다가 이 잎은 초식동물의 중요한 먹이거리가 되고, 노란색을 띠는 줄기는 최고의 목재로 쓰인단다. 어쩌다 이런 오해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또 굴업도에 식물종이 다양한 이유는 섬을 둘러싼 바다의 수심이 깊어 계절마다 섬 곳곳의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추운 고산지역에서 나는 참나물과 온대지역에서 자라는 이팝나무가 모두 이곳에서 자생하고 있다.

굴업도 모래언덕.

ⓒ 심혜진

굴업도에서 가장 큰 습지. 사구 사이에 있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의 식수원으로 이른 아침엔 사슴들이 물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 심혜진

섬 바람과 모래, 바다와 하늘을 만나는 춤

굴업도 코끼리바위.

ⓒ 심혜진

그의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새 코끼리바위에 왔다. 이곳에서 첫 공연이 열린다. 잠시 코끼리바위에 앉아 공연을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유라 무용단의 '누구를 기다리는가'와 박은성 무용단의 '그 사이'가 연달아 공연됐다. 무용수들의 얼굴이 땀으로 젖었다. 섬을 지나는 바람과 모래와 바다와 하늘을 온 몸으로 만나는 듯한 그들의 몸짓이 부러워 나도 눈을 감아 보았다. 파도소리도 들었다.

박은성무용단 '그 사이'

ⓒ 심혜진

코끼리바위를 떠나 세 번째 공연이 열리는 덕물산 좀팽나무 언덕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좀팽나무 두 그루가 한층 누그러진 햇살 속에 초저녁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풍경을 배경으로, 멀리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무용에 문외한인 내 마음이 그들의 동작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미묘한 느낌이다. 모르겠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오후 6시가 되자 공연이 모두 끝났다. 해변을 지나 다시 트럭을 타고 민박집으로 왔다. 밥 한 공기와 국 한 대접을 다 비우고 나서, 꽃게 8kg을 또 해치웠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더운 날씨 속에 탐방이 깨나 힘들었는지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정도 되기 전에 잠자리에 누웠다.

몇 시나 됐을까? 한참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거실에서 서 전 이장의 성토하듯 내뱉는 목소리가 들렸다. 씨제이 때문에 이곳 주민들이 반으로 나뉘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굴업도에서, 앞으로도 예전처럼 그저 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하소연은 굴업도에 몰아치는 거센 파도에도 묻힐 기세가 아니었다. 굴업도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다음 회에 계속).

좀팽나무 언덕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 심혜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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