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먹거리 Why? 파일] 여럿이 숟가락 집어넣는 共用반찬 추방을.. 침을 나누는 건 人情이 아닙니다

2013. 7. 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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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한정식이 왜 절대 다 먹지 못하게 차려지는지 그 연원을 밝혔다. "음식 쓰레기 양산하는 한정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았다.

한정식은 음식을 하도 많이 주어 다 먹지 못하는 것이니 적게 주면 되겠다 싶을 수도 있겠으나, 보통 식당에서도,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음식을 차리지 않는 식당에서도 음식 남기는 일이 흔한 것을 보면 양을 줄이는 것만이 관건은 아니다. 먹을 만큼 내놓은 음식도 남기는, 참으로 기묘한 일이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1인용 음식과 공용 음식이 동시에 존재한다. 밥과 국은 보통 1인용으로 차려지고 나머지 반찬과 일품요리 등은 공용이다. 식판을 쓰는 단체 급식소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의 간이 식당, 그리고 일부 선진적(!) 식당 외에는 대부분 이런 상차림을 낸다. 가정에서도 보통은 이런 상차림이다.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먹는 것이니 공용 음식이 놓이는 것에 거부감은 없다. 부부와 피붙이란 그런 것이다. 막역한 친구나 연인끼리도 괜찮다. 그런데 밥이란 꼭 그런 사람들과만 먹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그냥저냥 지내는 사람들과도 밥을 먹어야 한다. 밥맛 떨어지는 사람과 밥상 앞에 마주 앉아야 할 때도 있다.

사실, 바깥에서 같이 밥을 먹는 이들은 그냥저냥 지내는 사람일 때가 더 많다. 이들과 밥을 먹을 때면 공용 음식은 고통의 음식이 된다. 겉으로는 마치 가족끼리 밥을 먹는 양 편안한 표정을 짓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일단은, 누가 먼저 어떤 음식에 손을 대는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젓가락질을 하는 음식이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젓가락 안 댄 쪽으로 내 젓가락을 디밀 수 있다. 그러나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이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멸치볶음에다 그 짓을 하였다 하면 재수 옴 붙은 날이 되는 것이다.

국물 있는 음식은 더 난감하다. 하나뿐인 물김치에 누군가 숟가락을 꽂았다 하면 다른 이들은 물김치를 포기하여야 한다. 공용 음식에 아예 욕심을 내지 않는 이들도 본다. 제 앞에 놓은 밥과 국, 다행히 김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한 끼 먹고 만다. 그렇게 서로 눈치 보며 음식을 먹다 보면, 공용 음식은 아무리 적게 나온다 하여도 반드시 남게 되어 있다. '다 내 음식이야' 하며 공용 음식을 싹싹 끌어다 먹는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것이나, 내 주변에서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공용 음식을 차리는 것을 두고 전통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한민족 특유의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상차림'이라고 말한다. 이는 왜곡이다. 조선 유교의 것을 전통이라 하면, 독상이 전통이다. 유교에서는 남녀가 유별하고 장유에 순서가 있었다. 남녀노소가 한 상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사랑, 안방, 건넌방, 부엌 등 제각각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밥상을 받았다. 잔칫날에도 그랬다. 손님들은 독상 하나씩 받아서 먹었다.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공용 음식을 차려 먹는 풍습은 유교 질서가 본격적으로 물러나는 한국전쟁 이후에 퍼졌다. 가정에서 이러는 것은 화목을 위해 좋은 일이다. 가정의 상차림에 머물렀어야 할 이 풍습이 외식 시장에서 번창하게 된 까닭은 근대적 의미의 외식 서비스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한국이 농업 사회에서 급작스럽게 산업사회로 변화할 때에 지금의 식당 상차림이 고정화하였는데, 집에서 하는 방식 그대로 음식을 낸 것이 탈이었다. 집 밥과 식당 밥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치고,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식당에서 앞의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을 두고 음식 쓰레기라 하는 것은 그 음식에 침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공용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침 묻은 음식을 나누는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음식 쓰레기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럼에도 공용 음식을 낼 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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