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장' 외진 동네 장수..둘러볼 곳도 무진장이네

2013. 7. 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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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여행

전북 장수 남덕유산 토옥동계곡과 양악마을, 장안산 덕산계곡

'무진장'(無盡藏). '덕이 넓어 다함이 없음'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엄청나게 많다'는 이 말 뜻과는 관계없이, 전북 내륙 산간 오지로 꼽히는 세 고장 무주·진안·장수를 함께 이를 때도, 흔히 앞 글자를 따 '무진장'이라 표현한다. 보고 느끼고 먹고 즐길 거리가 무진장 많은 고장들인데, 이 중에서 여행지로 가장 덜 알려진 곳이 장수군이 아닐까 싶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니, 장수군 역시 둘러볼 곳이 무진장인 고장이다. 싸리재·집재·솔재·비행기재…, 이름도 정겨운 높은 고개들 넘나들며, 차갑고 근사한 계곡들과 따뜻하고 인정 많은 마을들을 둘러봤다.

토옥동 상류계곡장수쪽 오르는 길 험하지만크고 작은 소와 폭포 이어져깨끗하고 아름다운 청정 골짜기

"요렇게 멋지고 깨끗한 골짜기도 참 드물 것이오." 전북 장수군 북동쪽 끝, 계북면 양악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오두인(74) 양악마을 노인회장이 차분한 말투로 남덕유산 자락 토옥동계곡의 청정함에 대해 설명했다. "요짝(하류)으론 마자믄 댐이 생겨갖고 망가져부렸지만, 위쪽으론 깨끗한 쏘가 엄청나게 많아요." 마을 사무장 장미순씨도 말했다. "가마소에서 끌어온 물을 지금도 우리 마을 식수로 쓰니까요."

토옥동계곡은 남덕유산(1507m)과 삿갓봉(1410m) 사이로 깊숙이 뻗은, 비교적 덜 알려진 7㎞ 길이의 골짜기다. 웅장한 규모는 아니어도, 20여개의 지류와 크고 작은 소, 폭포가 이어지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위골짜기다. "새색시를 태운 가마가 떨어진 곳"이라는 가마소(각시소), 골짜기의 가장 큰 폭포인 지추골 폭포(큰폭포·높이 15m)가 이름 높다.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1986년 댐을 막아 양악저수지를 만들면서 댐 하류 계곡은 "바위 바닥이 파여나가고 물이 말라" 경관이 볼품없어졌지만, 지금도 상류 쪽은 오염원 없는 청정 골짜기다. 산이 험하고 가팔라 등산객 출입을 금지해온 덕에 청정 물길이 유지돼 왔다.

토옥동계곡 물길을 따라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터널이 이어지는데, 오를수록 길은 가팔라지고 좁아져 길을 잃기 쉽다. 남덕유산은 거창·함양 쪽으론 경사가 완만하지만, 서북쪽인 장수 쪽으론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이다. "함양 쪽에서 넘어온 등산객이 다시 돌아가는 걸 못 봤어요. 녹초가 돼 택시 타고 가지. 그만큼 험해요."(오두인씨)

산이 깊고 험한 만큼 아픔도 많이 깃든 골짜기다. 삼국시대엔 백제·신라의 경계를 이루며 영토다툼 격전장이었다. 수림이 울창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골마다 숯가마가 들어섰고, 광복 뒤까지 대량 벌목이 자행됐다. 을사늑약(1905년) 때는 호남 일대에서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이 왜병들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한국전쟁 땐 빨치산 활동 거점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창으로 갈 땐 월성재를 넘어 걸어다녔다고 한다. "거창 읍내 가려면, 하루 한두번 다니는 버스 기다렸다 타고 가는 것보다 월성재로 걸어가는 게 빨랐어요. 읍내까지 네시간 반이면 닿으니까."

계곡 아름답고 숲 울창해도, 지금은 안전상 등산로를 폐쇄해 산행이나 트레킹을 할 수는 없다. 다만, 계곡 들머리(송어양식장 주변) 물길에 들어가, 찬물에 손발 담그고 물소리 들으며 쉬는 것은 허용된다(수영·취사 금지). 덕유산국립공원 쪽은, 안전시설 보강 뒤 2015년 토옥동 등산로를 개방할 예정이다.

토옥동 경치의 시작은 본디 양악저수지 댐 밑 용연정과 용소 일대부터였다. 명주실에 돌을 달아 던지면 실꾸리 두세개가 들어갔다는 깊은 소가 용소인데, 지금은 탁한 물만 고여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용소엔 "커다란 뱀장어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댐이 생긴 뒤 다 사라졌다." 한자이름 빽빽이 새겨진 용소 바위 위엔 마을에 세거하던 동래 정씨들이 지은 정자 용연정이 있고, 그 옆엔 주변(현 저수지 댐 왼쪽 앞)에 있던 심방사 절터의 탑으로 추정되는 아담한 양악탑(고려말 5층석탑·유형문화재)이 서 있다. 탑은 본디 논 가운데 세워져 있었는데, 1970년대 초반 주민들이 현 위치로 옮겼다. 옮길 때 "맨 밑 기단석은 파낼 수 없어 논바닥에 그대로 뒀다"고 한다.

>>> 장수 여행 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 대전 비룡분기점~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나들목에서 나가 19번 국도 따라 장계·계북으로 가다 지소삼거리(주유소)에서 좌회전, 양악마을로 간다.

먹을 곳

장수군청 앞 농특축산물 로컬푸드직매장의 '장수한우명품관'(063-352-8088)은 무항생제 장수한우를 저렴하게 사서 구워먹을 수 있는 깨끗한 식당. 암소 꽃등심(1++ 등급) 600g이 3만8000원. 토옥동계곡 양악송어장(063-353-1215)의 송어회·산천어회, 산서면소재지 산서보리밥집(063-351-1352)의 보리밥(사진)·묵국수.

묵을 곳

야외수영장이 딸린 리조트 '타코마 장수촌'(063-353-8200) 성수기(7~8월)·주말 12만원부터(13평형), 비수기·평일 9만원부터. 양악마을 체험관(063-352-3313) 가족방 8만원부터. 방화동가족휴가촌 오토캠핑장은 당일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나무데크 사이트 30곳 등 텐트 50동 가능. 데크 1일 대여 1만5000원.

또다른 볼거리

대성전 건물이 창건 당시(조선 태종) 모습 그대로라는 읍내의 장수향교(대성전·보물 272호)가 눈길을 끈다. 향교 외삼문 앞에 세워진, 정유재란 때 향교를 목숨 걸고 지킨 관리인을 기려 세운 '충복 정경손 수명비'와 박석(호박돌)들이 드러난 대성전 마당이 인상적이다. 논개 생가 마을이자, 집마다 돌널 지붕을 얹어 민속마을로 꾸민 장계면 대곡리의 주촌마을, 장수읍 두산리의 논개사당, 천천면 장판리의 타루공원(타루비), 산서면 사계리 정상윤 가옥, 오산리 오메마을 권희문 가옥, 번암면 노단리 장재영 가옥 등 고택들도 볼거리다. 승마를 배울 수 있는 장수승마체험장도 있다.

여행 문의

장수군청 문화체육관광사업소 (063)350-5557, 장수문화원 (063)353-5301.

용연정도 용소도 양악탑도, 삭막한 댐과 고속도로 다릿발, 제방길·용수로 등 회색 시멘트 구조물에 둘러싸여 한없이 초라한데, 더럽고 후텁지근한 물가 숲에선 매미들이 종일 징징대며 투정을 부리고 있다.

양악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한글학자 건재 정인승(1897~1986) 선생이다. 용연정을 세우고 토옥동 경치를 즐기며 소요했던 정기수의 손자다. 정인승은 <큰사전> 편찬중이던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붙잡혀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양악마을엔 돌담이 아름다운 그의 생가가 남아 있고, 그 옆엔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기념관 전시실 들머리에 적힌 "말과 글을 잃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영영 사라지고 만다"는 그의 어록과, 전시 물품 중 하나인 청자·한산도 담배 은박지 뒷면에 깨알같이 적은 한글 관련 메모들이 눈길을 끈다.

90가구 190여 주민이 사는 양악마을은 유래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백제 초기에 이미 백이현이 있었고, 통일신라 땐 양악소가 설치돼 큰 마을을 이뤘다. 양악소는 조선 고종 때까지 이어지는데, 지금도 마을 곳곳엔 관아가 있던 동헌 터, 감옥이 있던 옥터거리, 장이 서던 장터거리, 2층 건물이 있었다는 이층거리 등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양악마을에선 토마토 따기(9월까지), 오미자 따고 선별하기(8월 말~9월), 사과·머루 따기(9월 중), 황토 천연염색과 한지 캐릭터 만들기(수시) 등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인삼 캐기 체험도 진행했으나 일부 체험객들 욕심 때문에 "인삼밭이 순식간에 쑥밭으로" 변하는 걸 본 주민들이 행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마을회관 옆엔 취사 가능한 숙박시설도 마련돼 있다.

장수군 내의 다른 바위계곡으로, 장안산군립공원의 덕산계곡이 있다. 역시 저수 댐(용림저수지)이 들어서며 경관이 훼손되고 물빛도 탁해진 모습이지만, 나무 탐방로를 따라 울창한 숲길 산책을 즐길 만하다. 용림저수지와 방화동휴양림·가족휴가촌(오토캠핑장) 사이의 물길인데, 댐이 있는 상류 쪽으로 올라갈수록 물빛은 흐려진다. 큰용소·작은용소 등이 볼만하다.

장수/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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