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서 돈이 나온다".. 이런 곳도 있군요

2013. 6. 29. 18: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오마이뉴스 > 와 < (사)생명의숲국민운동 > 은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 편집자말 >

조상들의 미(美)적 감각과 풍류가 느껴지는 덕동마을 숲.

ⓒ 김종성

바닷가에 자리한 도시 포항은 울릉도에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있고, 명소 죽도시장에서는 초대형 물고기 개복치와 고래고기를 볼 수 있다. 그런 포항에 의외로 청정 숲들이 숨어 있어 놀랐다. 포항의 속살이라고 할 만한 북구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거기에는 경상북도 수목원과 기청산 수목원이 있고, 이름도 흥미로운 '여인의 숲'이 있다.

이번에 필자가 찾아간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1리의 '덕동(德洞) 마을 숲'도 그런 곳 중의 하나. 300여 년 전 조상들이 만들어 후손에게 선물한 숲으로, 멋들어진 정자와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천과 수련이 피어나는 연못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조상의 은덕과 마을 숲을 잘 가꾸어온 후손의 노력으로 '2006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이 실시한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덕동마을로 들어갔다. 동네 슈퍼가 버스 터미널을 겸하는 기계면과 기북면의 작은 소읍들이 정겹다. 맛이 달기로 유명한 경북사과가 시골길 도처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마을, 세 개의 숲을 품다

마을 어귀에서 손님을 맞이해 주는 송계숲.

ⓒ 김종성

매년 마을 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나무에 새끼줄이 묶어져 있다.

ⓒ 김종성

덕동마을 들머리 앞 버스 정류장 겪인 작은 정자가 참 보기 좋다. 더불어 마을의 물줄기 용계천의 청명한 물소리가 손님을 반긴다. 나처럼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팔다리를 걷고 개천에 들어가 다슬기 잡기에 여념이 없다. 개천의 다리 위를 건너자마자 덕동마을 표지석과 함께 나타나는 너른 소나무 숲. 마을 어귀에 있는 이 숲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 송계(松契)숲으로 불린다.

덕동마을은 3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특이하게도 각기 개별성을 지닌 세 개의 숲(송계숲, 정계숲, 도송숲)이 있다. 그 중 마을 초입의 송계숲이 제일 넓다(1600여 평). 수백살 먹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마치 한국화 화폭에서 옮겨온 듯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가지를 틀고 서 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새다.

잘생긴 소나무들을 쳐다보며 숲 사이 길을 조금 걷다보면 나무 기둥에 웬 새끼줄을 묶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말로 '포스'가 한껏 느껴지는 이 나무는 덕동마을의 당산나무다. 매년 양력 8월 보름에 이 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당산나무는 세월의 온갖 풍상을 겪어낸 노련한 어르신 같다. 주위의 소나무들이 마치 당산나무를 호위하는 경호원처럼 보인다.

폐교된 덕동 초등학교를 지키고 서있던 소나무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 김종성

송계숲엔 덕동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1992년에 폐교되었고 지금은 포항전통문화체험관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말을 맞아 체험관에 견학 온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덕동 초등학교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담장을 대신했던 숲 속의 초등학교는 개구쟁이 아이들과 함께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을까.

학교는 사라졌지만 소나무들은 여전히 초병처럼 듬직하게 서 있다. 포항시가 운영하는 덕동마을 전통문화체험관은 아이들에게 서당체험, 전통음식, 전통공예, 택견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숙박도 가능하다.

송계숲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면 별장 같은 정자 용계정(龍溪亭: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43호)과 어울렸다 해서 이름 지어진 정계(亭契)숲을 만날 수 있다. 덕동마을과 숲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그 역사와 유래가 안내 게시판에 자랑스럽게 설명되어 있다. 덕동마을의 솔숲은 300여 년 전 마을 뒤편의 자금산 중턱에 조성한 여강 이씨의 문중 어른이 묻힌 묘터에서 용계천의 물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됐다.

묘지에서 물이 내려다보이면 복과 재물이 빠져나간다는 풍수에 따라 물을 가리기 위해 심어진 것이다. 아무리 땔감이 모자라도 조상의 묘를 위해 심어놓은 소나무에 손을 댈 수 없었을 터. 결국 풍수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믿음과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수 백년의 세월 속에서 솔숲을 지켜온 셈이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한껏 어우러진 숲

방문객 누구나 시인이나 묵객의 기분이 들게 하는 용계천가의 별서 용계정.

ⓒ 김종성

용계정 주위의 산책로와 그늘 풍성한 노거수들.

ⓒ 김종성

정계숲 사이를 흐르는 용계천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 나만의 아지트로 삼을만 하다.

ⓒ 김종성

특히 정계숲은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경영해왔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 용계정과 용계천에 형성된 마을 숲으로 지형을 잘 살린 역사문화 경승지다.

우리 조상들의 미(美)적 감각과 멋들어진 풍류가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더운 날 멀리서 찾아온 외지인도 정자 앞 용계천 가에 발을 시원하게 담그고 앉아 그 옛날 용계정에서 묵어 갔다는 시인이나 묵객이 되어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논과 밭 사이를 평범하게 내려오는 하천인 용계천은 덕동마을에 이르러 절경을 빚어낸다. 용계천을 끼고 고색창연하게 서 있는 용계정은 숙종 14년인 1687년에 세워져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용계정이 이렇듯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모두 마을 주민들의 정성 덕분이다.

원래 용계정 옆에 서원인 세덕사가 세워져 서원의 면모를 갖추게 됐는데, 조선 말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게 된다. 이때 마을 주민들이 밤을 새워서 단 하루 만에 세덕사와 용계정 사이에 담을 세워 세덕사만 철폐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이자 민속전시관 관장님의 말씀에 따르면"여름날 불을 끄고 정자 대청에 누우면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용계천 물소리가 밝은 달빛과 어우러져마치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왜 이 정자를 지키려 했는지 알 것도 같다.

한 여름에 오면 빨갛게 피어난 백일홍이 참 예쁘다는 배롱나무, 느티나무, 거대한 산신령같은 은행나무, 노환으로 옆으로 드러누운 향나무 등이 내려주는 그늘 사이로 용계정 주변을 여유롭게 거닐었다. 말이 정자지 따로 '포서'라고 하는 관리 가옥이 있을 정도로 큰 용계정은 관리상의 이유로 아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용계정 아래로 흐르는 용계천가는 그런 아쉬운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신발을 벗고 물장구치며 쉬어가게 해주었다.

마침 아이들과 함께 놀러온 사람들이 개천가 모래밭에 앉아 한가로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심이 깊지 않은 맑은 물에 송사리와 다슬기가 훤히 보였다. 귀여운 손녀와 마주 앉아 물놀이를 하던 할머니는 "이 마을은 포항 사람들도 잘 모른다며 남들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매년 이렇게 식구들과 나들이 나온다"고 했다. 정말 나만의 아지트로 삼기에 딱 좋은 곳이다.

연못과 용계천 사이의 이채로운 섬솔밭(도송숲).

ⓒ 김종성

도송숲 산책로에 있는 멋진 자태의 회나무와 밑의 옛 우물터.

ⓒ 김종성

도송숲의 나이많은 소나무마다 마을 주민인 관리자의 이름이 붙어있다.

ⓒ 김종성

정계숲을 산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마을 숲인 도송(島松)숲 또는 섬솔밭을 만나게 된다. 이름대로라면 섬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인데 용계천과 연못사이에 놓인 작은 솔밭이 멀리서 보면 정말 섬처럼 생겼다.

금방이라도 개구리 소년 왕눈이와 아로미가 나올 것 같은 섬솔밭 앞 연못의 이름이 범상치 않다. '호산지당(護山池塘)' 숲과 정자와 연못에까지 그럴듯한 고유이름과 한시까지 지어 놓은 것이 문사(文士)의 마을답다.

산강수약축사지(山强水弱築斯池) 산이 강하고 물은 적어서 못을 만드니

동학풍광부유기(洞壑風光復有奇) 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

적제경영성숙지(積歲經營成宿志) 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

장래여경야응기(將來餘慶也應期) 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

이 연못은 주변의 소나무 숲과 멋들어지게 어울리기도 하지만 물이 마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수구(水口)막이 역할도 하고, 풍수 지리적으로 산강수약(山强水弱)인 마을의 약점을 보완한단다.

수련과 노랑 붓꽃이 예쁘게 피어있고 나비와 잠자리들이 노니는 연못가의 도송숲 산책로도 걷기 좋다. 그런데 숲의 나이 많은 소나무들에 저마다 흰색 훈장 같은 게 붙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소나무 한 그루마다 관리자인 마을 주민 이름이 붙어 있던 것. 소나무를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덕동마을 만의 일대일 관리시스템을 만든 셈이다.

도송숲 길을 한바퀴 걷다보면 흡사 양팔 벌린 사람처럼 양쪽으로 가지를 길게 벌리고 서 있는 독특한 자태의 회나무와 그 아래 우물터가 눈길을 끈다. 일명 회정(회나무 우물)으로 350여 년 동안 덕동마을의 생명수였다고 한다. 동네 아낙들이 머리에 물항아리를 이고 물을 길어 오가는 모습을 절로 상상하게 한다.

울창한 솔숲을 두고, 경관이 수려한 천변에 정각을 짓고,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자연과 벗하는 것으로 학문을 쌓았던 선비들의 마을. 그런 마을의 모습이 덕동마을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300년 된 숲의 재산을 관리하는 장부, 송계부

민속 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 마을 숲 관리 장부, 송계부.

ⓒ 김종성

덕동마을의 오래된 고택들, 후손들이 살고 있다.

ⓒ 김종성

송계숲, 정계숲, 도송숲 이렇게 세 곳의 숲을 거닐고 나서 꼭 가보아야 할 데가 있다. 용계정 정자 맞은편에 있는 민속전시관이 바로 그곳이다. 마을 주민이자 여강 이씨의 후손이기도 한 여든 살이 넘은 이동진 관장님이 부인과 운영하고 있다(입장료 없음). 집성촌 대대로 전해 내려와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고문서, 생활용구, 농기구 등 600여 점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200년이 넘은 사주단자, 마을의 내력을 담은 고문서, 손 모양을 그려 서명을 대신한 1880년대의 노비문서도 있다. 뚜껑이 있는 놋쇠 요강, 당제 제례복, 일제 강점기 때의 마을 측량 지도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유물들 중 '송계부'라고 하는 누렇게 바랜 장부가 눈에 띈다. 송계부란 다름 아닌 마을 숲 관리 장부다.

"숲은 마을의 수입원이었지. 널나무를 해서 내다 팔아 회갑연·결혼식·마을잔치도 하고, 명절에 제사 비용으로도 쓰고, 귀한 손님 접대하느라 쓰기도 하고. 이런 모임이 바로 송계(松契)야."

숲은 사랑방이자 정자였고, 거기서 돈이 났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늘 숲에 의지해 살았다. 소나무계는 숲에 부속된 논과 밭에서 나온 소출로 소나무를 관리하고, 남은 돈으로 마을 잔치도 베풀었던 일종의 대동계였다. 장부에는 1950년 이전 기록은 소실되었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지출내역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민속 전시관은 주말에만 운영하지만 관장님께 미리 전화를 하면 평일에도 와볼 수 있단다.

현재는 계 소유로 논 두마지기와 밭 여섯 마지기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나무계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칠순 잔치, 매년 양력 8월 15일 마을 어귀에서 지내는 당제도 여기서 나온 비용으로 처리한다.

덕동에는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돌아올라 가면 뒷산 아래에 오래된 문화재급 고택이 여러 채가 있다. 이삼백년 동안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고택들로 애은당(愛隱堂), 사우당(四友堂), 덕계서당(德溪書堂)등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한다. 경상북도 민속자료와 근대문화유산들로 보존되어 있다.

작은 마을에 울창한 솔숲이 세 곳이나 있고, 용계천의 바위 벼랑 위에 정자를 비롯해 고풍스러운 한옥과 돌담이 운치를 자아내는 덕동마을. 주민들과 마을 숲과의 인연은 수백 년의 세월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ㅇ덕동마을 대중교통편 ;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앞 700번 시내버스 - 기계면 버스환승센터 하차 - 오덕1리 덕동마을행 버스 (08시 35분, 12시 05분, 15시 출발) ㅇ기타 문의 : 기북면사무소 054-243-7006

오마이뉴스 아이폰 앱 출시! 지금 다운받으세요.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