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에 위안부 전시실.. 시민 "위안소 존재 알고 충격"

일본 도쿄 2013. 6. 2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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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日 양심들이 설립.. 日시민들 방명록엔..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골목길을 따라 4~5분쯤 걸어가면 기독교 단체들이 입주한 '아바코 빌딩'이 나온다. 이 건물 2층 115㎡(약 35평) 작은 공간에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이 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양심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본군 성노예(강제 동원 위안부) 관련 전시 시설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붉은색 벽이 10개국 위안부 피해자 155명의 얼굴 사진으로 가득했다. '기억의 문을 연 여성들'이라는 제목이 적힌 안내문에는 "편견과 중상모략을 우려해 침묵하던 여성들이 피해 체험을 공개 증언한 것은 기적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전시실 안에는 일왕 히로히토(裕仁),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지도부 9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설명문에는 "(이들은) 위안소 제도의 존재를 승인·관여한 만큼, 강간과 성노예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대형 지도에는 일본군이 전쟁 당시 설치했던 수많은 위안소가 촘촘하게 표시돼 있었다.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62) 관장은 "일본에 수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전시물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망언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실을 통해 성노예 문제를 처음으로 접한 일본인들의 충격은 방명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종군간호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를 모르면서 스무 살까지 살았다' '일본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을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가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전시실에서 만난 대만 유학생 딩차오주(27)씨는 "일본 시민 단체가 이런 시설을 운영하는 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997년 거의 모든 교과서에 실려 있던 종군위안부 기술이 2002년 이후부터 대부분 삭제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전시물도 있었다. 위생병으로 전쟁에 참가한 노무라 모리아키(野村盛明)씨 등이 위안소 관리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전시돼 있는 등 가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재판 자료도 있었다.

도쿄 한복판에 2005년 성노예 전시실이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작고한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출신 시민운동가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씨 등 양심적 일본인들의 헌신 덕분이다. 마쓰이씨는 2000년 도쿄에서 개최한 '일본군 성노예제를 단죄하는 여성 국제 전범 법정'을 통해 수집한 피해 여성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할 곳을 찾았다. NHK 프로듀서로 위안부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이케다 관장은 "당시 국제 전범 법정에서 수많은 증언과 자료가 확보됐지만, 일본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면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쓰이씨가 2002년 세상을 떠나면서 전 재산과 관련 자료를 기부했고 시민 모금 운동을 통해 전시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일부 극우파가 매춘부 전시관, 매국 시설 등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전시실은 회원 1100여명이 내는 기부금과 입장료 등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매년 500만엔 안팎 적자가 나고 있다. 적자가 쌓여 결국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전시실 운영위원인 니시무라 유미코(西村由美子·63)씨는 "장소가 비좁아 많은 자료가 창고에서 잠자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시민 단체와 협력해 지역 순회 전시회도 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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