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한 점이 얼굴로, 조선시대 메이크업 [전통 화장법의 재해석②]

2013. 6. 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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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뽀얀 얼굴에 복숭아빛 뺨과 붉은 입술, 짙고 풍성한 눈썹과 머리. 조선시대의 화장법은 한 점의 수묵화를 보는 듯 운치있고 아름답다. 살구, 코랄, 장미색 등 자연으로부터 온 컬러가 유행하고, 피부 표현에 집중하는 최근의 트렌드와도 많이 닮았다.

이러한 세태에 한방 화장품, 창포 샴푸 등이 큰 인기를 끌고, 한 방송에서는 '황진이 메이크업'을 주제로 전통 화장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전통 화장법의 매우 일부분일 뿐 실제 조선시대에는 훨씬 더 다양한 화장법이 존재했으니, 이를 통해 현대적으로 더욱 다양하게 응용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조선시대 화장법을 알아보기 앞서 미의 기준을 살펴보면 매우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요염하고 음란하게 단장한다는 뜻의 '야용'이라고 부르며 미천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귀족 집안의 여인들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화장을 하지 않거나 색채를 배제한 화장을 했다. 하지만 이는 덕의 기준일 뿐, 미의 기준은 붉은 색감이 강조된 화려한 기생의 화장법으로 여성의 미에 대한 관점이 매우 이중적이었던 것. 상류층은 꾸미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음에도 여자들의 미에 대한 욕심은 끊을 수 없었으니, 상류층 여인들은 피부 관리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목욕과 세안 후에는 현대 스킨 개념의 미안수를 사용했다. 수세미 덩굴을 절단해 뿌리를 담궈둔 물이나 수박, 토마토, 당귀, 창포, 복숭아 잎, 유자를 달인 물을 화장수로 사용했다. 피부를 희게 만들기 위해 좁쌀을 끓인 후 따듯한 상태에서 바르기도 했고, 응달에 말린 무잎을 삶은 물을 바르기도 했다.

현대의 에센스, 팩과 같은 개념의 화장품도 따로 있었다. 옛 여인들의 백과사전이라는 '규합총서'의 면지법에는 '겨울에 얼굴이 거칠고 터진 데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봉한 뒤 4~7일 두었다가 바르면 피부가 트지 않고 옥과 같아진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달걀과 술, 달걀과 살구씨, 마늘과 꿀 등의 조합을 에센스나 팩처럼 사용했다. 참깨, 들깨, 살구씨, 복숭아씨, 목화씨, 유채꽃 씨, 보리 등의 분말이나 기름을 비슷한 용도로 바르기도 했다. 여름에는 복숭아 잎을, 가을에는 오말유 잎을, 겨울에는 유자씨를 우려 사용하면 귀신을 쫓거나 튼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는 등 주술적, 치료적으로도 사용됐다.

피부 관리를 기본으로 '분' 단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메이크업이 시작된다. 분은 분꽃의 열매를 곱게 빻아 쌀, 기장, 조, 조개껍질 태운 것, 흰 돌가루, 말린 칡가루의 분말 등을 섞어 만들었다. 그 형태는 파우더, 파운데이션의 지금과 마찬가지로 분말, 고형, 액상 등 다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은 발림성이 좋지 않았다.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분을 바르기 전 명주실을 꼬아 얼굴을 훑어 잔털을 제거하기도 하고, 분을 물에 개어 바르고 한숨 자고 일어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현대의 페이스 왁싱, 화장을 한 후 효과적인 흡수를 돕는 진동 파운데이션과 같은 구조를 이때부터 시행해왔다는 점이 놀랍다. 후에 기존의 분에 납을 화학 처리한 연분이 등장했는데, 효과는 좋았으나 꾸준히 사용하면 얼굴이 푸르스름해지고 건강에 좋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다.

눈, 볼, 입술에 사용했던 붉은 염료인 '염지'는 전통 메이크업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벽화 등을 통해 선사시대, 삼국시대부터 계급적, 주술적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지는 홍화 꽃잎을 찢어 물을 뿌리고 말리는 과정을 9번 정도 반복해 체로 내려 만든다. 이 가루를 환약처럼 보관하다가 화장시 기름에 개 사용했다. 이렇게 만든 연지는 화장용 도장, 작은 누에 고치솜 또는 손가락으로 찍어 발랐다. 당시 홍화 가루가 귀해 서민들은 붉은 고추, 붉은 흙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짙고 또렷한 눈썹 또한 미의 기준이었다. 짙고 가늘며 곡선형의 눈썹이 유행했고, 규합총서에 열 가지 눈썹 모양이 소개된 것으로 볼 때 눈썹 화장에도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목화, 꽃을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갠 것, 보리깜부기를 솔잎을 태우는 그을음에 갠 것을 사용했다. 간편하게는 굴참나무, 너도밤나무의 끝을 태워 아이브로 펜슬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머릿결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백, 아주까리, 수유씨, 배추씨, 살구씨, 깨 등의 기름을 머리에 발랐다. 이들은 냄새가 은은하고 머리카락의 엉킴을 방지해 줘 한 달에 한 번 정도 머리를 감았던 당시 여성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유지해줬다. 또 오랫동안 검은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한련초, 오디, 호도 껍질, 옻나무, 재 등으로 모발을 일시적으로 검게 염색하기도 했다.

세안부터 메이크업까지 모든 화장품에 향료가 첨가되지 않기 때문에 재료의 좋지 않은 향으로 인해 단장 후 향수를 뿌리기도 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것 중 하나가 백단향으로 이는 지금의 한방 화장품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안식향, 난초사향, 장미수 등도 널리 사용됐다.

우리 피부에 맞게, 우리 이목구비에 적합하게 그러면서 다채롭게 발전해 온 전통 화장법. 마케팅에 포장되고 근원이 의심될 정도로 빠르게 쏟아지는 화장품과 비교했을 때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전통 화장법만의 장점은 높게 평가될 만하다. 특히 최근 과거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화장품 업계의 해답 또한 이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싸고 새롭고 수입된 화장품을 치켜세우기 전, 전통 화장법을 돌아보고 이를 개발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찾는 지름길일 수 있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영화 '미인도' 포스터, 드라마 '황진이' 방송화면 캡처][ⓒ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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