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기자의 클로즈업(closeup)] 물리학도서 생물물리학도 변신.. 하버드 의대 오승은 박사

김신영 기자 2013. 6. 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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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태평양서 답 찾아 자맥질하는 수능 첫 만점 '천재소녀'

대한민국 공부의 역사에 전설로 새겨진 이름이 있으니 '오승은'이다. 1998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400점)을 받은 서울 한성과학고의 여학생 오승은은 단정한 미소를 띠고 모든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 등 국가 주관 대입 시험 30년 역사상 첫 만점자이자 여성 최초의 전체 수석이었다. 석 달 후 오양은 자신의 필기를 정리해 7권짜리 책 '오승은의 수능노트'를 냈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도 오승은처럼'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 책을 사주면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독촉했다. 오양이 인터뷰에서 "오답 노트를 만들며 공부했다"고 말하자 너도나도 오답 노트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모두가 '오승은'이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인터넷에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비튼 '오답 헤는 밤'이라는 패러디 시(詩)가 유행했다. 'S대, 나는 오답 하나에 씁쓸한 말 하나씩 불러 봅니다. 수능 만점을 맞은 오승은… 이런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오승은양은 3년 6개월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유학을 떠났다. '오승은의 수능노트'로 번 돈이 유학의 밑천이 됐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박사 오승은'의 소식이 들려왔다. 영국 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 지난 3월 성장판 연골 세포가 뼈를 길어지게 하는 원리를 밝힌 오 박사의 논문이 실린 것이다. 논문에는 그가 하버드대 의대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많은 이는 '과학자가 된다더니 결국 의사가 됐다'고 수군거렸다.

지난달 29일 통화한 오승은(33) 박사는 "의사가 된 것은 전혀 아니고 지금 하는 공부가 물리학에서 아주 멀지도 않다. 2010년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하버드대 의대로 옮겨 물리적 방법으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생물물리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답이 없는 문제를 푼다는 게 참 어려워요. 하지만 어려운 건 도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죠."

오 박사의 연구는 수련의(레지던트)와 의사 시험을 거쳐 의사 면허를 받는 통상적인 '의사 수업'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속한 연구실은 의대 안의 시스템 생물학과 소속이고, 이를 이끄는 마크 커쉬너 교수는 의사가 아니라 생화학자다. "저는 세포나 효소 같은 생명체 안의 작은 단위가 서로 어떻게 작용하고, 이들이 모였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연구해요. 좀 어려운가요? 몸 안에서 일어나는 '나비 효과'를 연구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는 요즘 매일 아침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최근에 생긴 취미예요. 새 소리를 듣고 이름을 맞혀보는 거죠. 지난해 9월 연구소와 가까운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했고, 처음 보는 새가 많아 이름이 궁금해졌죠. 인터넷 조류 도감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백과사전에서 앎의 즐거움을 배우다

―우주의 법칙보다 생명의 신비에 더 끌렸나 봐요.

"사실 생물학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서점에서 우연히 생명체 발생 과정을 그린 '발생학 도해(圖解)'를 본 기억이 나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중학교(신동중) 때도 점을 찍어 가며 동·식물 도해를 그리는 것이 참 재미있었죠. 고등학교 땐 생물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지금 생각하면 '원래 생물학을 하려고 했었나 봐'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그럼 제가 질문을 잘못 했네요. 왜 대학 갈 때 물리학을 선택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제일 어려워한 과목이 물리였어요. 다른 과목은 수업 꼼꼼히 듣고 열심히 하면 시험 문제를 거의 다 맞혔거든요. 그런데 물리는 꼭 틀리는 거예요. 아리송한 부분들이 이해가 갈 때까지 붙잡고 씨름하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과목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됐죠. 그러다 보니 애정을 더 갖게 됐고, 결국 그쪽(물리학)으로 가게 된 것 같아요."

―보통 반대로 생각하는데요. '어떻게든 피해가자' 하고요.

"글쎄요…. 시간을 들이다 보니까 정(情)이 들어서 좋아하게 됐나 봐요. 물론 정 들 때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이 어렵긴 하죠. 그런데 사실 고등학교 때 어려웠던 열물리·통계물리는 대학 가서 아무리 해도 어렵긴 하더라고요, 하하."

―유학 간 지 이제 거의 10년이죠. 뒤돌아 보니 한국 교육은 어땠던 것 같아요?

"한국 교육의 특징은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모든 과목을 다 배워야 한다는 점이죠.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릴 때는 제한 없이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앎의 즐거움을 배웠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때 가장 좋아한 책이 백과사전이었어요. 어린이용(用)이 아니고 성인용이었는데도 오빠(현재 현대자동차 연구원)와 저는 화장실에까지 가져갈 정도로 백과사전을 좋아했어요."

―그 두껍고 글씨가 깨알 같은 백과사전을요?

"백과사전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요즘 어린이들 인터넷 서핑 좋아하죠? 비슷해요. 인간의 본성에는 호기심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정보통신 용어 중에 '정보 중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무언가를 알게 되는 재미는 분명 중독성이 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백과사전을 뒤적뒤적 했죠. 눈에 띄는 것 있으면 읽어보고 그 설명 중에 또 모르는 게 있으면 백과사전에서 다시 찾고…. 그런 식이었어요. 인터넷 서핑하면서 서너 시간 뚝딱 보내는 것과 똑같죠."

중학교 사회 선생님을 지낸 오 박사의 어머니 이우인(62)씨는 아이들 어릴 때 백과사전을 사준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는 "아이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에 방문 판매 온 사람에게 어린이용 백과사전을 샀다. 당장 읽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고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샀는데 애들 아빠가 '어린 애들 읽지도 않을 텐데 이런 걸 샀다'고 핀잔을 줘서 조금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편견을 금세 깼다. 서른두 권짜리 백과사전을 뒤지더니 마구 읽었다. "우리의 잣대로 으레 '아이들은 이럴 거야'라고 속단했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거죠. 취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서일까요. 그냥 그대로 백과사전을 흡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어른들은 잡지를 봐도 본인들이 흥미 갖는 것만 찾아서 보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니었어요. 전부 다 훑었죠." 이씨는 오 박사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어린이용 백과사전을 성인용으로 바꿔줬다. 남매는 백과사전을 읽고 또 읽고, 닳도록 읽었다. 이씨는 "승은이가 조금 박식한 면이 있다고 하면 백과사전에서 흡수한 지식 덕을 봤을 것이다. 그때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섣불리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뭐하러 남을 이겨요? 새로운 걸 해야지"

올해 7월로 미국 유학 10년을 채우는 오승은 박사는 "미국 교육의 힘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즐기라고 끊임없이 가르쳐주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스타일' 중에서 그것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경쟁에 집착하면 마음에 병이 생길 수 있거든요. 결과가 좋을 수가 없죠."

―적어도 공부에서는 '마음의 병'을 겪을 틈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저도 당연히 그런 경험을 자주 겪죠. MIT에서 박사과정 들어가면서 특히 그랬어요. 옆에 있는 연구원이 연구비도 잘 따고 나보다 좋은 결과물도 내놓고 하면 초조하고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경쟁심을 동기로 삼아서라도 애를 쓰면 일시적으로나마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해요. 그런데 잠시뿐이에요. 결과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점점 커져요. 힘이 안 나죠. 그게 바로 마음의 병이에요. 남들 하는 걸 보면서 조바심을 내봤자 즐거움이 동력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오래갈 수도, 잘할 수도 없더라고요."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요?

"제가 몸담고 있는 하버드 의대 '커쉬너연구소'의 마크 커쉬너 교수님은 연구 방향을 설정할 때 이렇게 접근하세요. '지난 30년 동안 생물학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연구 분야가 뭐지? 남이 하는 연구 말고, 너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도록 해.' 그러니까 남들보다 잘하는 것을 하려고 들지 말고, 남들과 완전히 다른 것을 하라는 가르침이죠.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바로 저 연구? 내가 더 잘할 수 있거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쟁하는 심리가 발동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아무리 잘해봤자 결국은 남과 비슷한 걸 하게 되고 말아요. 저는 미국에서 '남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곧 '나는 남과 차별되는 것을 한다'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오 박사님 소식이 들리면 꼭 따라나오는 얘기가 '노벨상'인데, 어떠세요?

"저는 제 입으로 한 번도 노벨상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미국인들도 한국 사람처럼 노벨상 얘기를 자주 하나요?

"워낙 (노벨상을) 많이 타서 그런지 노벨상 노벨상 하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 야망을 품은 사람은 있겠죠. 하지만 국가나 학교 차원에서 노벨상을 거론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어요. 노벨상같이 다른 나라 재단이 주는 상을 통해 학문적 가치를 평가하지도 않고요."

―미국인들은 그럼 과학자들에게 무엇을 바라나요?

"미국은 아주 오랫동안 세계를 주도해서인지 노벨상보다는 과학과 기술을 통해 주도권을 지키는 데 훨씬 더 관심이 많아요. 미국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건 막강한 국력이에요. '선도적인 과학기술을 통해서 국력과 가치 창출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에 천착해요. 우리나라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이죠."

◇놀이처럼 공부…"한글을 거꾸로 썼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때는 없나요?

"대학 시절 내내 '수능 첫 만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잖아요. 어쩌면 지금까지도요. 사람들이 자꾸 '오승은이 물리를 계속 하나 보자' 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요. 서울대 입학한 다음에도 제가 물리학과 그만두고 재수해서 의대 갔다, 법대 갔다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어요. 역설적이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물리를 그만두나 지켜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물리 공부를 하지는 않겠다.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꼭 물리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공부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도 대학 시절 내내 물리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오승은 박사와 나누는 대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재미'와 '즐거움'이었다. 어머니 이우인씨도 오 박사가 공부에 성공한 이유로 '재미있게 해서'를 들었다. 이씨는 "승은이는 한 살 위인 오빠가 있는 덕에 오빠옆에 끼어서 배웠다. 재미로, 덤으로 공부하다 보니 승은이가 (오빠보다) 훨씬 즐겁게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글이건 수학이건 저는 승은이보다 한 살 위인 아들을 자연스럽게 먼저 가르쳤지요. 오빠가 배우는 걸 옆에서 보고 승은이는 흉내를 냈어요. 밥상에 앉아서 오빠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으면 승은이가 그냥 건너편에 앉아 놀듯이 따라 배우는 식이었죠. 오빠 야단맞을 때 되면 쓱 다른 데로 가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하도 건너편에서 배우다 보니까… 어느 날은 승은이가 한글을 거꾸로 쓰고 있더라고요, 하하."

이씨는 딸이 의대에 갔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다고 했다.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딸이 유학 가기 전 엄마는 넌지시 물은 적이 있다. "의대 애들은 큰 항아리 여섯 개에 든 물을 먹어치우면(6년 공부) 되는데, 너는 지금 태평양에 들어가서 뭘 잡아야 할 줄도 모르면서 자맥질하고 있는 거 아니니? 너무 힘들지 않아?" 당시 오 박사는 "엄마, 표현 진짜 좋은데?"라며 웃고 말았단다. 이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밥을 굶는 시절도 아니고…. 우리 아이 세대는 돈 많이 벌 수 있는 공부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해주는 것이 맞는 듯하다"고 말했다. 오 박사의 아버지 오형환(67)씨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일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를 수석 합격하고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과 국가전문행정연수원장 등을 지냈다. "그렇죠, 우리도 승은이 마음 알아요. 사실 항아리 물 퍼먹는 것보다는 자맥질이 재미는 훨씬 더 있겠죠, 하하."

오 박사의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선생님들도 그를 '재미있어서, 궁금해서 공부하던 아이'로 기억했다. 한성과학고 3학년 때 학년 주임이었던 송도찬 교사는 "승은이는 음악도 좋아하고 가끔은 딴생각하듯 창 밖도 자주 내다보는 아이였지만, 자기가 궁금한 것은 이해가 될 때까지 파고드는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무회의 때 선생님들이 승은이를 예로 들면서 '아이들이 딴 짓 해도 혼내지 맙시다'라고 결의를 한 적도 있었죠."

대학에서 오 박사를 가르친 김두철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현 고등과학원 장)는 "재기 발랄하고 귀엽다는 인상이 많이 남아 있다. 공부벌레 타입은 아니었고 즐겁고 명랑하게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어서 앞으로 어떤 기발한 연구를 할까,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초인적 천재도 힘 모으는 사람들 못 이겨요"

오 박사는 전화 인터뷰 시간을 잡는 이메일에 한국 시각과 미국 시각을 뒤바꿔 써서 보내는 실수를 했다. '천재도 실수를 하는구나' 싶은 머쓱한 통쾌함이 느껴졌다. 그는 "이메일 답장을 보내기로 하고 잊어버린다든지, 스케줄 관리를 잘 못해 일정이 엉킨다든지…. 일상생활에서 깜박깜박하는 일은 자주 있다"며 웃었다.

―평생 '천재' 소리를 듣다 보면 부담되지 않나요?

"어머, 사실 저는 별로 천재 소리 듣는 타입은 아니에요. 천재 아우라가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있죠. 하지만 저는 성실한 여학생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아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는 특히 '아무리 잘난 사람도 남과 더불어 하는 사람을 못 이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천재들에게도 협동이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그럼요.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한 명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잖아요. 아무리 초인적 두뇌를 가진 천재가 있다고 해도 결국 시간이라는 제약은 못 넘죠. 우리 연구소에는 물리학, 컴퓨터공학, 수학, 화학, 생물학을 하는 연구원들이 모여 있어요. 다른 분야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스템 생물학'이라는 연구를 하는 거예요.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지 않고는 좋은 연구를 하기가 어려워요."

―'인생 협력자'는요?

"아, 결혼요? 일부러 안 한 거 절대 아니에요! 인연을 아직 못 만났는지….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하."

오 박사는 인터뷰를 하면서 자주 웃고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두 가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공부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하다. 무언가를 정의(定義)한다는 활동이 과학자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평생 공부가 직업이었잖아요. 혹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을 때는 없어요?

"예술, 특히 미술이나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그림은 워낙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조금 배웠고 미국에서도 대학원 다닐 때까지는 취미로 아크릴화를 그렸어요. 참,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일 외에 사회적으로 가장 귀하게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을 고르라면 기업가를 꼽고 싶어요."

―좋은 기업가만 있는 건 아닌데요.

"정확히는 벤처사업가라고 해야겠네요. 그들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투자자를 찾고 그 돈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기업을 키워가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벤처기업인이야말로 사회의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설을 세우고 연구비를 타고 연구원을 모아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지금의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에요."

―10년째 유학 생활이죠. 힘들 때는 어떻게 견디나요.

"한국인 유학생 성경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진로나 생활에 대해서는 '그레이스 미션센터'의 최대성 목사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목사님이 과학자 출신이시라 제 고민을 잘 알고 계시죠. 저는 살아가는 데 멘토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정신이 맑다면 자기의 생각만으로 100% 바른 판단을 하겠지만 사람이 늘 그럴 수 없잖아요."

―과학과 종교는 친하게 지내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저에게는 종교나 과학이나 비슷한데요? 연구를 할 때 보통 어느 정도 직관에서 시작하거든요. 실험하기 전에 '자연현상은 이거다'는 느낌이 와서 연구에 돌입하는 거예요. 그런데 직관으로 세운 가설을 부정하는 결과가 나오면 실험 결과에 순복할 수밖에, 방법이 없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잖아요. 맞는 길인 줄 알고 가다가 거대한 섭리에 맞닥뜨리면 멈추어 생각해야 할 때가 있지요. 자연 그리고 신(神)이라는 진리 앞에서 내 '느낌'이라는 건 미약한 존재라는 거죠. 과학과 종교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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