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간이역에 있는 우물물은 어떤 맛이 날까?

2013. 6. 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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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경원선의 간이역들과 어울리는 아담한 열차가 동네안으로 들어온다.

ⓒ 김종성

서울에서 경기도 연천군의 신탄리역을 거쳐 얼마전 새로 생겨난 강원도 철원군의 백마고지역까지 이어진 기찻길 경원선은 작은 기차모양도 귀여운 데다 점점 사라져가는 옛 간이역의 정취가 남아 있어 좋은 곳이다. 게다가 역무원이 없는 무인 간이역들도 있어 쓸쓸하면서도 달콤 쌉싸름한 기차 간이역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경원선을 몇 번 타보다 보니 정겨운 간이역들을 중간 쉼터로 삼아 기찻길 옆 농로와 개천가, 마을길, 찻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여러모로 즐거운 자전거 여행이 되겠구나 싶었다. 모내기가 한창인 초록의 농촌풍경, 경원선을 따라 흐르는 황새들이 노니는 풋풋한 개천 차탄천, 오일장이 열리는 간이역 주변의 작은 소읍 동네, 심심하면 나타나는 군부대 차량과 군인들까지….

열차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다 가까이에서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 지난 2일 경원선 기차에 애마 자전거를 싣고 달려가 보았다. 얼마 전 경원선 백마고지역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남한 최북단 기차역이었던 신탄리역에서 기찻길 따라 차탄천 따라 남하하여 한탄강역이 있는 한탄강을 건너 초성리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경원선 간이역 여행을 위해서.

우물 '신탄정(新炭井)'이 있는 간이역

편안함과 정겨움이 묻어나 기차 여행의 기분이 나게 해주는 경원선 열차의 좌석.

ⓒ 김종성

신탄리역안에 있는 우물 신탄정, 시원한 이 물맛은...

ⓒ 김종성

수도권 전철 1호선 동두천역에서 내리면 아담한 경원선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겉모양은 도시의 전철과 비슷하지만 팔걸이가 있는 편안한 의자와 푹신하고 앉기 편하게 자리한 열차 안 의자들의 이색적인 구조는 기차 여행의 기분을 나게 해 좋다. 아마도 지금은 사라진 통일호나 비둘기호의 모습이 남아 있지 싶다. 기차 삯도 천원으로 저렴하다.

창밖의 풍경 또한 전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경치가 펼쳐진다. 풋풋한 시골 내음이 날 것 같은 전원과 키 작은 마을들, 시원하게 뛰어들고 싶은 한탄강, 기차와 나란히 달려가는 군부대 차량과 그 속에 탄 앳된 얼굴의 무표정한 군인들이 내내 눈길을 머물게 한다.

경원선의 종점은 얼마 전 새로 생겨난 백마고지역. 서울 땅보다 넓다는 철원평야가 펼쳐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위치한 남한 최북단에 있는 무인 간이역으로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철원에 열차가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나와 애마 자전거는 백마고지역 전 정거장인 신탄리역에 내렸다. 새로 만든 백마고지역은 아쉽게도 무미건조(?)한 요즘 전철역사와 다름없어 이번 간이역 여행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철원읍 대마리에 백마고지역이 생겨 좀더 북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경원선 기차여행.

ⓒ 김종성

작은 안마당에 역무원이 가꾸어 놓은 넝쿨과 뜰이 있는 신탄리역은 아담하고 포근한 간이역의 전형이랄 수 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맨 먼저 반기는 건 '신탄정(新炭井)'이란 나무 팻말이 있는 우물. 더운 날씨다 보니 승객들이 세수를 하거나 물을 마시며 들렀다 간다. 자전거 물통도 채울 겸 물을 마셨는데 시원한 물맛이 어째 익숙하다.

국민학교 시절 수업이 다 끝난 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땀흘리며 축구를 하고 벌컥 벌컥 마시곤 했던 수돗가의 물맛이다. 수돗물이 나오는 우물이었다. 수돗물이라고 얘기를 해도 동네 몇몇 주민들이 물통을 가지고 물을 뜨러 온다고 머리가 희끗한 역무원 아저씨가 웃으며 말해준다.

신탄리역은 철원평야와 북녘 땅이 발아래 펼쳐지는 고대산(831m)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철원읍에 생겨난 백마고지역에 이어 옛 철원역과 월정리역도 복원을 추진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경원선과 이어진 금강산 전기철도(철원역-창도역-내금강역, 116km)도 복원하여 기차를 타고 금강산 여행을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차근차근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다보면 비로소 통일이 찾아오리라. 혼자 꿈꾸면 그냥 공상 일 뿐이지만 여럿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지 않은가.

뉴 호프 타운 (New Hope Town)이라는 뜻의 신망리(新望里)역

신탄리역에서 대광리역, 신망리역, 연천역 사이엔 마을, 개천, 농로 옆을 지나는 도보 겸 자전거 도로가 나있다.

ⓒ 김종성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 경원선 기차길 옆 초록의 농로길로 모심는 기계 이양기가 지나간다.

ⓒ 김종성

신탄리역에서 남쪽으로 신망리역, 연천역까지 도보 혹은 자전거 라이딩하기 좋은 길이 생겼는데 바로 평화누리길이다. 김포에서 DMZ 부근 임진강변을 따라 이곳 연천군까지 이어진 길이란다. 덕분에 한탄강을 향해 흐르는 차탄천과 농촌 들녘이 펼쳐진 농로길을 따라 여유롭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언제 봐도 착한 눈망울로 금속말 탄 여행자를 쳐다보는 소들이 사는 축사, 이양기에 벼를 가득 실은 이양기가 오며 가며 한창 모내기로 분주한 논과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일하고 있는 밭들을 지나간다. 도시인의 눈엔 정겹고 이채로워 사진에 담고 싶은 풍경이지만 따가운 햇볕아래 일하고 있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강원도 철원군만큼이나 넓은 경기도 연천군의 농촌 들녘엔 모내기용 물이 가득 들어차 주변의 산등성이들과 농로의 전봇대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쌀농사에도 많은 물이 들어가는 구나 실감이 든다. 평생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던 큰 외삼촌이 나이 들어 퇴직을 하고 이사 간 아파트에 살면서 화장실에서 큰일을 본 뒤에도 물을 안내려 외숙모와 사촌들의 원성을 사던 일이 떠올랐다. 농부에겐 금보다 귀한 게 물이다.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은 5리터 남짓이다. 생활용수까지 따지면 150리터 정도라고 한다.1킬로그램의 쌀을 얻기까지는 2천~5천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자그마치 2만 4천 리터, 즉 24톤의 물이 필요하다. 커피 1킬로그램을 만들려면 역시 20톤의 물이 들어간다.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는데 이처럼 엄청나게 많은 물이 들어간다. 미국 사람은 하루 4백 리터 정도 쓴다니 서구식 생활을 하면 매일 자기 체중 1백 배의 물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

이 평화누리길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인기인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달리기도 하고 길도 물어보면서 심심찮게 마주쳤다. 길옆엔 흰 옷 입은 황새들과 개천가에 빠질 수 없는 낚시꾼들이 진을 치고 있는 차탄천이 흐르고 있어 무더운 초여름 날씨를 덜 덥게 해주었다. 개천가에 생겨난 작은 모래톱에 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며 쉬어 가기도 했다.

역 대합실을 작은 책방으로 꾸민 정다운 무인 간이역 신망리역.

ⓒ 김종성

정겨운 간이역의 정취가 남아있는 경원선.

ⓒ 김종성

자전거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 언덕길 하나 없이 편안하게 달리다보면 시골 간이역을 연상하게 하는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 대광리역과 신망리역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신망리역 대합실에 있는 서고와 책들. 1시간에 한 번꼴로 오는 경원선 기차를 이용하는 주민들 혹은 나 같은 여행자를 위한 작은 도서관이다. 서고 뒤 열린 후문 밖으로 까만 차양을 친 인삼밭이 펼쳐져 있다. 경기도에 이런 간이역이 남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역 게시판에 붙어있는 글을 읽다가 신망리 동네 이름과 관련한 이채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망리의 옛 이름은 '웃골'이었고 일제 강점기 때는 웃골을 한자어로 바꾼 '상리(上里)'였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강원도 철원처럼 본의 아니게 공산주의, 자본주의 두 체제를 경험하게 된 동네다. 굳이 소설이나 영화속의 장면이 아니어도 서로 대립하는 두 체제 속에서 겪었을 주민들의 고통이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러다 6.25 전쟁 때 수복되어 1954년 미군이 전쟁 피난민을 위해 세운 정착촌이 생겨났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뉴 호프 타운 (New Hope Town)이라는 뜻의 신망리(新望里). 전쟁의 아픈 역사가 담긴 동네요 기차역이라는 생각에 대합실 나무 의자에 앉아 책도 읽고 지나가는 경원선 기차를 바라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신망리역은 역무원 대신 아주머니들이 간이역을 돌보고 있다.

급수탑이 남아있는 연천역, 정겨운 오일장

초록의 풀들이 6.25 전쟁의 총탄 흔적을 감싸주고 있는 연천역 급수탑.

ⓒ 김종성

수제 메주를 보고 진귀하다며 사진을 찍는 나를 더 신기해하던 연천읍 오일장터 상인들.

ⓒ 김종성

이제 연천역을 향해 가는 길, 일찍 찾아온 여름 날씨 탓에 물통이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배고픔보다 더한 게 갈증. 마땅한 가게나 슈퍼도 안보여 아무 집이나 들어가 물을 부탁하려다 길가에서 훈련 중인 군인들과 마주쳤다. 마침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앳된 얼굴의 군인들에게 얻어 마신 음료수 한 병 덕분에 살았다.

화려한 분수가 물을 뿜는 도시풍의 번화한 거리가 나타나는 연천역은 역 구내에 있는 높은 급수탑이 명물이다. 과거 증기 기관차가 다닐 때 쓰이던 시설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옆에 있는 급수정(給水井)과 함께 한국 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 위에 초록의 풀들이 상처를 감싸주듯 가득 뒤덮고 있다.

연천역 또한 위도 상으로 38선 이북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 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다. 승강장 서쪽에 한국 전쟁과 관련된 군용 물자를 남쪽으로 수송하기 위해 1948년에 설치한 화물용 승강장이 남아 있다. 2017년 안에 연천역까지 복선 전철화 될 예정이라고 하니 역과 주변의 풍경이 많이 바뀌겠다.

연천역에 들릴 땐 오일장이 열리는 매 2일이나 7일 날 가면 좋겠다. 집에서 손수 만든 수제 메주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아담한 장터가 정겹게 펼쳐진다. 좋은 곰팡이가 슨 메주의 모양이 재미있어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 여행자를 더 신기해하며 웃는 상인들도 정답다.

이어 다음 편엔 경기도 연천군에서 제일 큰 동네 전곡읍에 있는 전곡역과 한탄강이 흐르는 한탄강역을 지나 초성리역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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