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속 구미호, 40년 캐릭터 변천사 살펴보니..

2013. 6.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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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서 소수자로.. 이젠 친구

[동아일보]

《 여우는 예부터 영악하고 교활한 동물로 통했다. 구비문학으로 전해 내려오는 130여 편의 여우설화에서 여우는 둔갑술을 쓰며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대부분의 여우는 인간세상에 내려가 사람 행세를 하다가 발각돼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비운을 맞는다.

수많은 여우설화 중에 구미호 이야기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가 예쁜 여인으로 변신해 인간의 간을

빼먹는다는 극적인 설정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구미호 설화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다. 40여 년의

세월을 거쳐 변화하고 있는 구미호 캐릭터를 살펴본다. 》

1990년대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 동아일보DB

○ 2000년대 이전의 적대적 구미호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식인' 구미호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구미호는 '전설의 고향' 같은 공포물에만 존재했다. 구미호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00일(길게는 10년) 동안 인간과 함께 살거나 인간의 생간 100개를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구미호가 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구미호가 인간으로의 탈바꿈에 성공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스토리도 없다. 대부분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숲 속에 영원히 은둔하러 떠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인간과의 적대성도 강하다. 구미호를 요물로 여겨 아무 이유 없이 죽이려는 사냥꾼이 등장하거나 인간에게 자식을 잃은 구미호가 무서운 복수의 화신이 되어 인간 세계를 위협한다. 설사 인간을 믿는 '착한 구미호'라 할지라도, 인간의 배신으로 인해 신뢰는 곧 분노로 바뀐다. 짧게는 100일에서 길게는 10년간 인간이 되기 위한 구미호의 노력을 인간이 하루아침에 짓밟아 버리기 때문이다.

2000년대 KBS '구미호외전'의 김태희. 동아일보DB

○ 2000년대에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

21세기 초반 드라마의 구미호는 강력한 괴물에서 이종(異種)의 소수자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맞는다. 이 시기의 드라마 속 구미호는 인간사회에 공존하지만 함께 섞이지 못하고 때로는 탄압받는 약자로 나타난다. 과거 구미호 공포물의 근간을 이뤘던 '인간 vs 구미호'라는 선악구도에서 벗어나 공존하지만 받아들이기는 싫은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는 시기다. 역시 이 시기에도 해피엔딩은 없다.

이 같은 패턴은 1999년 여름 이후 제작이 중단됐다가 2008년 부활한 '전설의 고향'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2008∼2009년에 제작된 '전설의 고향-구미호 편'에는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구미호가 나온다. 인간들은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여우구슬을 얻거나 가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구미호를 살육한다.

'퓨전 구미호'도 등장했다. 2004년 KBS '구미호외전'은 현대사회에 사는 구미호족과 그들을 소멸하려는 'SCIS'라는 단체의 대립을 그렸다. 구미호족과 인간 남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인간세상에 살고 있는 소수자로서 구미호를 조명했다.

200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던 시기. 구미호의 변화도 시대적인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MBC '구가의 서'의 이승기. MBC 홈페이지

○ 2010년대 들어서는 친구 또는 능력자

퓨전 구미호의 연장선상에서 2010년 이후 귀엽고 엉뚱하거나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구미호 캐릭터가 등장한다.

2010년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배우 신민아는 엉뚱하고 애교 많은 여자친구 구미호로 나온다. 심지어 고기를 사먹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형편이 어려워진 남자친구를 먹여 살리는 생활력 강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그려졌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며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맞은 드라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구가의 서'에서도 반인반수(半人半獸) 구미호 청년 이승기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의리파다. 가족처럼 지냈던 인간들을 잊지 못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엄청난 괴력을 정의로운 곳에 쓰기도 한다.

공포물에서 퓨전극으로 넘어오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구미호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맹목적으로 인간이 되는 길을 택했다면 최근 구미호는 사랑하는 인간과 함께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품는다. 구미호는 더이상 괴물이나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친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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